북카페 점원의 일상이야기
가게에 구아바나무 한그루가 있다. 작년 가을에 잎이 모두 말라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추운 겨울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올해 봄이 되었다. 주위에 다른 나무나 꽃들은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데 이 구아바나무는 통 소식이 없었다. 바짝 마른 나뭇가지 그대로인 채.
열대수종이라고 하더니 겨울 추위를 버티지 못하고 얼어 죽은 줄 알았다. 온통 푸른빛 사이에 마른 갈색이 보기 싫어 치워 버릴까 고민하던 어느 날, 화분에 물을 주던 사장님이 뭔가 변화가 있다고 했다. 군데군데 좁쌀만 한 티눈이 보인다고. 그게 5월 말. 옆에 다른 녀석들에 비하면 늦어도 한참 늦었다.
시간이 지나 날이 더 더워지고 비가 흠뻑 내리던 날, 티눈이 기지개를 켜고 파란 잎을 쑤욱 내밀었다. 그러더니 쑥쑥 자라 앙상했던 가지 곳곳에 푸른빛이 돌았다. 그제야 제대로 생명력을 뿜어내는 나무 모습이 되었다.
세상 이치는 참 오묘하다. 그리고 생명체들의 생명력은 정말 놀랍다. 그 작은 나무조차도 자신이 언제 잎을 틔워야 하는지 안다. 옆의 다른 녀석들이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울 때, 같이 기지개를 켤 욕심이 들련마는 꾹 참고 기다린다. 옆의 꽃잎이 다 떨어져도 꼼짝하지 않는다.
지금은 나의 때가 아니야.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비로소 기지개를 켠다.
구아바나무가 그럴진대 우리네 인생은 어떨까? 사람마다 잎이 나고 꽃을 피우는 시기가 다 다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작은 꽃을 여러 번 피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늦지만 정말 아름답고 화려한 꽃을 피우기도 하고.
가게 문연지 일 년이 다 되었다. 일 년 정도 열심히 운영하면 자리 잡을 줄 알았는데, 갈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자영업자들이 IMF 때보다 더 힘든 요즘이라고 한다. 하지만 경기 탓만 하기에는 내가 게으른 것 같고, 그렇다고 내 탓만 하기에는 억울하기도 하다.
점원이 옆에서 지켜본 가게 사장님은 정말 진심을 다하고 있다. 본인이 하고 싶어서, 본인이 원했던 모습을 최대한 담아내어 운영하는 가게. 어찌 진심을 다하지 않을 수 있으랴. 점원으로서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 내고, 그것들을 실행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기대했던 성과는 나지 않고.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어쩌면 남들보다 늦게 피는 구아바나무처럼 아직 때가 아닐 수도 있다. 긴 인생여정에서 마주한 또 하나의 언덕길. 그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 시간들이 모여, 마음근육을 단련시키고 삶의 지혜를 찾게 해 줄 것으로 믿는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책이 있고, 커피가 있고, 찾아주시는 아름다운 손님들과 주고받는 소소한 행복이 있는데. 그것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가게문을 활짝 연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