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장님 VS 뒷다리 잡는 점원

북카페 점원의 일상이야기

Jun 13. 2025

동네서점이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 점점 무르익어가는 우리나라입니다. 가장 큰 요인은 책 읽는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겠지요. 성인의 절반이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하니까요. 다음은 트렌드의 변화, 전자책입니다. 종이책처럼 부피가 크지도 않고 어디서든 편리하게 그리고 다양한 책들을 읽을 수 있으니 그보다 좋을 순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책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독서는 역시 종이책이지.

아날로그 감성과 슬로 라이프를 추구하는 멋진 분들입니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텍스트 힙 문화가 더욱 뜨기도 했죠. 그러나 그것은 잠깐, 이내 주춤하는 분위기입니다. 저희 가게에도 한강 특수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죠. 책 한 권 팔기 힘든 날이 많습니다.

이렇듯 어려운 환경에서 동네책방을 위협하는 가장 큰 경쟁상대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더욱 몸집을 불리고 진화하면서 동네책방을 막다른 코너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포기하시지!

하며 좌우 양 훅을 연달아 날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공도서관입니다. 동네책방이나 공공도서관이나 타깃 고객층이 똑같습니다. 바로 종이책을 선호하는 독자들. 그런 입장에서 보면 공공도서관은 독서인구 감소나 전자책 활성화와는 차원이 다른 절대적인 위협입니다.

전국에 공공도서관이 1,300곳쯤 된다고 합니다. 저희 가게가 있는 수영구에도 세 곳이 있습니다. 지난번 사장님과 함께 도서 납품차 수영구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쾌적하고 넓은 열람실에 미디어실, 강의실, 카페까지 갖추고 있더군요. 각종 문화행사도 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 운영에 필요한 전문인력과 막대한 국가 예산으로, 책은 무료, 대관 및 음료는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니, 이런 곳을 두고 굳이 동네책방을 찾을 일이 없지 싶습니다.

공공도서관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 및 동네책방과의 상생차원에서 관내 서점을 통하여 도서를 납품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말이 동네책방과의 상생이지, 결과적으로 동네책방을 절벽으로 밀어대는 꼴입니다. 공공도서관은 도서가 늘어날수록 경쟁력이 높아지고, 반대로 동네책방의 책은 팔리지 않으니까요. 동네책방에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한 손님이, 책구매대신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합니다. 저희 가게에서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는 손님들이 자주 보입니다. 분명히 사람들이 종이책을 보기는 하는데, 동네책방의 책은 팔리지 않습니다.

회원가입과 희망도서 신청이 늘어나니 정부에서는 더욱 고무되어 앞으로 공공도서관을 계속 늘려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부산에도 내년까지 여섯 곳이 더 문을 연다고 하네요. 반면에 동네책방은 더 가열하게 문을 닫겠지요.

공공도서관이 늘어나고 동네책방이 문 닫는 게, 출판업계나 글을 쓰는 작가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사람들이 책구매 대신 공공도서관만 찾는다면, 극단적으로 보면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도 공공도서관 수만큼만 팔리고 나면 책 수요가 끝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무튼 이런 악조건 속에서 동네책방으로 살아남기 위하여 가게 사장님은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점원이 보기에는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디어가 먹힐 때도 있고, 때로는 돈만 잡아먹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저 북케이크입니다. 이 북케이크는 꾸준하게 주문이 이어집니다. 종종 먼 타지에서도 주문해 주셔서 택배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다음은 스마트폰 파우치입니다. 누구나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 잠시라도 눈에 띄지 않으면 불안한 스마트폰. 이게 차분하게 독서해야 할 분위기의 최대 걸림돌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끝도 없이 확인합니다. 그래서 사장님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독서할 때에는 파우치에 넣어두세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참패입니다. 스마트폰은 이미 우리 몸의 일부가 되었으니까요. 잘 때도 들고 자는데, 그깟 독서한다고 스마트폰이 안 보인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아이디어는 참신하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 대신 다른 용도로 가끔 하나씩 팔리기는 합니다. 화장품 담는 주머니?!

다음은 우체통입니다. 이름하여 '온실우체국'. 혹시 옛날에 펜팔을 해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국군장병 위문편지도 있었고요. 완전 레트로 감성의 손 편지 주고받기. 슬로 라이프를 지향하는 저희 가게에 딱 맞는 컨셉이지 뭡니까?

어느 날 오후, 가게에 출근했더니 못 보던 우편함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사장님에게 물으니, 가게를 찾는 손님들끼리 펜팔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편지지에 자기소개를 하고 글을 써놓고, 봉투 겉면에 어떤 펜팔 친구를 원하는지 적어 놓으면, 다른 손님이 그중 맘에 드는 것을 골라서 가져간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이죠. 누구는 편지를 써놓고, 누구는 그것을 가져가고. 벌써 두 명이 편지를 써놓았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한 가지 걱정이 떠올랐습니다. 개인정보 문제입니다. 물론 저희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다 좋으신 분들이겠지만, 그분들의 신상정보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타인의 실명과 주소가 적힌 편지를 내어 준다는 게 꺼림칙하였습니다. 안 그래도 최근 개인정보유출 사건도 터지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험한 세상에 자칫 문제소지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었던 것입니다.

가게를 보는 점원입장에서 사장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어떻게든 손님들의 발걸음이 머물게 하고, 오신 손님들에게 작은 가치나 좋은 기억이라도 심어주려고 하는 사장님 마음. 온실우체국도 그런 마음에서 떠올린 거겠죠. 직접 쓴 손 편지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 만들기 프로그램.

좋은 생각이긴 한데, 개인정보보호 문제는 어떡하고? 가져가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타인의 실명과 주소를 그냥 넘겨도 되겠나?

그렇게 아이디어는 하나도 안 내면서, 아이디어 내고 열심히 일하는 사장님 뒷다리 잡는 직원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회사 다닐 때 제일 싫어했던 행동입니다. 대안도 없으면서 반대하기. 하지만 제 말을 듣고 사장님도 아차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온실우체국 프로그램이 바로 보류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