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보고 그 남자와 결혼에 패스하지 못해 어영부영 세월을 날리게 될 때 그 기간이 10년을 넘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결혼을 해야지 하면서 신경을 쓸라치면 옆에 있던 이단의 신도들은 그 생각을 잠재우고 잊어버리게 하기 위해 가스라이팅하며 시간을 낭비하게 했다.
남의 인생을 자신의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는 악랄한 것들은 지금도 널려있는 게 사실이다.이리 가운데 있는 순진한 양처럼 날 잡아잡슈~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이렇다할 사회적 스펙이나 뾰족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 자연인 상태의 나는 그저 남들에게 이용되기 쉬운 호구 천치였던 것 같다.가슴은 아프지만.
그런 나에게 기회가 된 것은 아이티의 지진이었다. 먼나라의 불행을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의 안위를 너무도 이기적으로 말하는 그 조직의 지도자의 발언에 나는 갸우뚱했고 그 조직에서 나왔다.
믿을만한 친지의 주선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유별난 시어머니, 낯선 환경 등 그 모든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나의 예민함이었다.
모든 사소한 것에 민감하고 평안이 없던 그 때 임신까지 더해져 나의 신혼은 암흑과 같은 시기였다. 나는 그때 알았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선하지 않다는 것을.
임신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던 때에 찍은 내사진은 지금도 불쌍해서 못보겠다.
그 때의 어리숙한 초보 주부는 몇년이 흘러 시어머니의 작고로 몇몇재산을 물려받고 지금의 위치를 누리고 있다.벌지 않아도 되는 올드머니를 가지고 적지만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