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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Dec 26. 2023

내가 궁금한 건 그녀의 얼굴이었다

비만의 원인

 “두 손을 들어 저처럼 이렇게 해 보세요.”     


 의사인 나부터 두 손을 들어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을 20대 젊은 여자에게 보였다. 끝내 미루다 한 해가 다 끝나갈 무렵 숙제처럼 건강검진을 하러 온 김보람 씨(가명)는 뜬금없는 나의 요구에 속으로 황당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맨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우리 병원은 종합병원인 관계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무래도 젊은 여자에게 다짜고짜 마스크를 내려달라고 하기에는 서로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얼굴 대신 그녀의 손등을 보여달라고 한 것이다. 진료실이라는 공간과 하얀 가운과 검은 청진기가 효과가 있었는지 그녀는 약간 갸우뚱하면서도 나를 따라 했다.      

 ‘음.’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김보람 씨는 어디가 아프거나 궁금해서 온 것이 아니라, 건강검진으로 온 것이라 굳이 내가 뭔가를 할 의무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젊은 그녀가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추운 겨울이라 환자도 환자지만 연말이라 건강검진으로 온 사람도 많아, 내게는 시간이 없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 했다.  


나는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야 했다.  


 “혹시나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의사니까, 바로 물어볼게요. 혹시 생리 규칙적으로 하세요?”


 하얀 마스크 위로 약간 가무잡잡한 피부의 김보람 씨의 미간에 주름이 진다. 그래도 그녀는 크게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뇨.”

 20대 초반의 김보람 씨가 3평 남짓한 내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 내가 놀란 것은 그녀의 꽤나 큰 덩치였다. 오뚝이 같은 배와 허리에 하얀 마스크 옆으로 보이는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두꺼운 목이 인상적이었다. 날이 추워서 옷이 두꺼워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녀가 내민 건강검진 문진표에 적힌 각종 숫자를 감안했을 때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키는 나보다 15센티 이상 작았지만, 체중은 20킬로가 허리둘레는 30센티가 컸다. 심각한 비만이었다.      

 살을 빼는 다이어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비만인지다. 스트레스, 우울증, 폭식부터 무수히 많은 요인들이 있다. 의사로서 가장 쉬운 것은 약을 처방하는 것이지만, 제일 어려운 것은 근본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그녀를 괴롭히는 비만을 일으키는 용의자가 떠올랐다. 거뭇거뭇한 수염이 난 얼굴을 보면 확실하지만, 20대 젊은 여자에게 뜬금없이 마스크를 벗어보라고 하기에는 무례할 수 있어 나는 그녀의 손, 더 정확히는 손등을 보자고 했다. 여자인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남자인 나보다 검고 굵은 털들이 많았다. 고 안드로겐혈증, 즉 과도한 남성호르몬 분비로 인한 ‘다모증’이었다. 다모증을 확인했으니, 이제 결정적인 증거 하나만 찾으면 된다. ‘불규칙한 생리나 무월경.’ 그래서 나는 생리를 규칙적으로 하는지 물어본 것이었다. 어디가 아파서 온 것이 아니라, 단순히 건강검진을 하러 온 그녀였기에 나의 질문들이 황당했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

 “제가 이런 질문을 한 건, 의심되는 질환이 있어서 그래요. PCOS라고, 다낭성 난소 증후군입니다, 이 질환이 있으면, 여자분이 체중이 많이 나가고, 몸에 털이 많고, 생리가 불규칙하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생리를 안 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귀찮은 걸 안 해서 편안해하시더라고요. 근데 무월경이 오래되면 불임이나 난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낭성 난소 증후군에서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게, 단순히 내가 많이 먹고 적게 써서가 아니라, 호르몬 문제거든요. 100% 확실하지는 않지만, 산부인과 진료를 꼭 받아보셨으면 해요. 맞으면 산부인과에서는 생리를 규칙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호르몬제를 쓸 거고, 때에 따라서는 당뇨약 중에 하나인 메폴민을 쓰면 체중도 감소하고, 당뇨도 예방할 수 있거든요.”     


 나는 아예 바탕화면에 구글을 띄운 채 검색을 하여 자료를 보여주면서 길게 설명했다. 그러자 끝까지 듣고 있던 김보름 님이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산부인과 가보려고 했어요.”     

 “꼭 가서 진찰받으세요.”     

 나는 20대라는 꽃다운 나이에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그녀가 안타까웠다. 그녀가 제대로 치료받고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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