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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자들의 방(3)

by Josephine Feb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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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꽃의 짓밟힘


그녀의 일기장



햇살이 뜨거운 어느 여름, 나와 남자친구는 소개팅으로 만났어.

그때 난 긴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고, 무릎 위로 오는 캐주얼한 원피스를 입고서 그를 카페에서 기다렸지.


저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남학생을 보았어.

그는 살짝 앞머리를 정중앙으로 가른 단정한 헤어를 하고 있었어. 베이지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어.

등엔 귀여운 백팩도 메고 있었지.

그는 환한 미소와 함께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왔어. 마치 운명의 사랑인 것처럼...


그는 나와 같은 대학교의 다른 학과 학생이었어.

우린 서로 첫눈에 반했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귀게 되었어.


그는 너무 자상했어. 

항상 아침에 모닝콜로 나를 기분 좋게 깨어주고, 아침, 점심, 저녁은 무얼 먹었는지 매번 물어봤어.

친구들과 약속이 있으면 모임 장소까지 나를 데려다주었어. 약속이 끝날 때쯤은 근처에서 기다려서 나를 집 앞까지 바래다줬지.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강의 시간이 끝난 후 그는 날 기다리고 있었어. 그때 친한 남자 선배가 나에게 말을 걸었어. 그 선배와 얘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웃었나 봐.


그 장면을 멀리서 남자친구가 지켜보고 있었어.

"희진아! 강의 끝났어???"


남자친구가 부르는 소리가 저 멀리서도 들렸어. 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어. 그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지. 얼른 그에게 달려갔어. 그는 제법 근엄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어.

"희진아... 있지... 앞으로는 다른 남자와 얘기하지 마...."

"왜...??"

"그냥...."

"어... 알았어."


속으로 남자친구가 선배를 질투를 한다고 생각했어. 나름 귀엽다고 생각도 했지.

그 뒤로 우연히 선배들과 몇번 더 얘기하게 되었어. 그 모습을 본 남자친구는 나에게 자꾸 화를 냈어. 결국 그 자리에서 내 폰에 있는 남자들 연락처를 모두 지워버렸어.


그날 이후 남자친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가 걱정되고 궁금하다는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문자와 전화를 하기 시작했어. 친구들과 있으면 항상 영상 통화를 해야 했어. 몇 시까지 집에 들어오라며 내 일과를 간섭하기 시작했어. 


동기들 모임이 있는 날이었어. 같이 길을 걷다가 남자친구에게 모임에 대해 얘기했어. 그는 이내 기분이 안 좋아지더니, 갑자기 나에게 불같이 화를 냈어.

"도대체 거기 어떤 놈을 만나러 가는 거야!!!"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전공 책을 나에게 던졌어.

"왜 이래??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친목모임이야!"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아아아아악!!!"


남자친구는 갑자기 날 폭행을 하기 시작했어. 

갑작스러운 폭행에 놀란 난, 본능적으로 도망가기 시작했어.

저 멀리 카페가 보이자 난 안으로 뛰어가 카페 사장님께 신고해 달라고 사정을 했어.

처음에 그분은 난처해하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경찰에 신고를 했어.

그 사이 남자친구는 카페로 뛰어 들어와 분위기를 파악하더니, 바로 나에게 잘못했다며 싹싹 빌었지.

"한 번만 용서해 줘.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 그러니깐 경찰이 오면..."


얼마 뒤 신고받은 경찰이 도착했어. 내 옆에서 계속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 남자친구를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어. 결국 단순 연인 간의 말다툼이라고 얘기하고선 경찰을 돌려보냈어.


불행스럽게도 남자친구 행동은 변하지 않았어. 오히려 더 심해졌지.

그 뒤로 사소한 말다툼이 있으면 심한 분노를 표출하며 바로 폭행으로 이어졌어.


이번엔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몰려왔어. 바로 경찰을 불렀어. 경찰이 처벌을 원하냐는 물음에 남자친구 보복이 무서워 결국 포기했어.


며칠 뒤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어.

그런데 남자친구는 헤어지면 '죽어버리겠다'라고 하면서 날 협박하기 시작했어.

진짜 그 순간 남자친구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이후 남자친구는 스토커처럼 가끔 집 앞에 있었어.

어느 날이었어. 난 학교를 가기 위해 집 밖을 나섰어. 그는 내 집 앞에서 몰래 기다렸다가, 나를 쫓아와서 몇 번만 다시 만나 달라고 애원했어. 만나는 동안 노력하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어.

난 두려움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자리를 피했지.


그 뒤로 난 수많은 악몽에 시달렸어. 수면제 없이는 잘 수가 없었어.

자상했던 남자친구가 괴물이 되어서 돌아왔어. 그의 얼굴과 목소리가 이젠 너무 무서워.

살고 싶어.... 정말 너무 무서워. 언제 그 괴물이 또 날 따라다니며 위협할지 몰라.... 모든 게 후회돼....

그 괴물은 나를 헤어 나올 수 없는 지옥 속으로 밀어 넣을 것만 같아.

'이러다가 죽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어.


그날도 어김없이 몇 번만 만나 달라는 문자와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리기 시작했어. 너무 괴로웠어.

이젠 문자 소리와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공포가 밀려올 지경이야....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황급히 짐을 챙기고 부모님 집으로 피신하려 했어.

서둘러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서려 현관문을 연 순간...


온몸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어....


바로 그 괴물이 현관문 앞에 서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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