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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Feb 03. 2024

[미식일기] 전주익산, 서울

이거 왜 맛있지? 백순대, 고소함의 미궁 속으로

김고로가 현재 고용되어 있는 회사는 연차라는 개념보다는 '방학'이라는 개념으로 1주일이 조금 넘는 긴 휴가가 주어지는 회사다, 고객들이 가장 적은 여름과 겨울의 어느 한 시기를 매년마다 정해서 전 직원들에게 휴가가 주어진다. 그 덕분에 작년에는 누님이 거주하시는 호주 애들레이드에 식도락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고, 올해 겨울에는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오랜 지인인 Y형님과 바리스타로 일하는 (이전 글들에서도 곧잘 등장한) 곰군을 만나러 서울로 1박 2일 식도락을 다녀오기로 했다. 평일 낮에 출발하는 여행이지만 새해 첫날 이후의 한 주간이다 보니 생각보다 서울과 강릉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찍 기차를 예매해야 했고 Y형을 만나기로 한 신림역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서울로 식도락을 가게 될 때 재미있는 점은 워낙 사람도 많고 땅도 넓은 도시이기 때문에 그만큼이나 상권도 다양하게 형성이 되어있고 맛있는 음식점도 많다, 노포도 많고 새로운 점포들도 많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곳이기 때문에 그 동네에 놀러 갔을 때 무엇을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신림동에서 맛있는 음식을 찾다 보니 처음 걸려 나오는 음식은 바로 '백순대'였다. 창자 속에 넣을 것이 많이 없어서 동물의 굳은 피를 채워서 고소한 맛을 내던 피순대와는 다르게 찹쌀순대와 곱창, 면사리와 채소 등을 소금, 후추 등의 향신료를 넣지만 재료들의 있는 그대로의 색을 변하지 않고 하얗고 심심하게 철판에 볶아먹는 백순대만을 파는 '원조민속순대타운'이라는 커다란 거물에서 신림동의 백순대의 명맥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이전에 많은 언론매체나 '백 선생'님도 다녀갔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음식이기도 한 곳이고 이 동네의 명물이라고 생각해, Y형을 만나기 전부터 형에게 연락을 하며


"형, 신림동에 백순대 유명하던데요. 거기 가실래요?"


"오, 좋지! 백순대 먹자고."


Y형과는 원조민속순대타운에서 백순대를 먹기로 했다. 이전에 서울의 어딘가에서도 백순대볶음이 유명한 곳이 있어서 먹은 적이 있었고, 수원의 남문시장에도 백순대가 유명한 곳이 있어서 백순대볶음을 먹었던 기억은 어언 십 년도 더 된 일로 느껴진다. 그때의 그 추억을 되살려 백순대의 맛이 보고 싶은 식도락가 김고로의 마음이다. 서울역에서 내려 신림으로 가는 새로운 지하철 노선이 생긴 것도 모른 채 2호선을 타고 빙빙 돌아서 신림역에서 내려 Y형과 반갑게 인사한 김고로, 서로의 근황 얘기를 하면서 숙소에 빠르게 짐을 정리하고 신림동의 주요 상권인 '별빛거리'라는 곳으로 나온다. 알고 보니 신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동네였다. 주변에는 보라매공원과 병원이 있고 신림1동, 2동 등 숫자로 같은 동의 구역을 구분할 정도였다니, 사실 Y형의 거주지는 S대가 있는 관악산 자락이어서 신림동이라고 말씀하신 건데 (강릉에서 올라온 비수도권 거주자는 어디가 어디서 가깝고 한 지리를 잘 모른다) 김고로는 '신림'이라고 하니 신림역 근처에 숙소를 무턱대고 잡았던 것, 아마 서울대 근처라고 하셨으면 더 가까운 곳으로 약속을 잡았을 텐데, 그것이 살짝 미안했지만 백순대가 서로에게 위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순대타운으로 입장했다.


순대타운은 1층부터 3층(혹시나 3층 위에 더 점포가 있다면 알려주길 바란다)으로 이루어진, 오직 순대와 돼지부속이라는 단일메뉴를 취급하는 점포들이 바둑판의 선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 계단으로 층을 올라가면 콘크리트와 철제 난간으로 이루어지고 하얀 벽을 보이는 예스러운 건물의 내부와 공간의 곳곳에 약간의 어두움을 남기는 누런 조명, 곳곳에 쌓여있는 식재료를 담았던 상자와 음료를 담는 플라스틱 박스들이 우리는 맞이한다. 그렇게 우리는 '전주익산'이라는 곳을 목표로 해서 올라가고 있었는데 2층을 잘못 열어서 2층 문을 열어주신 어느 사장님께


"식사하시게?"


"엇, 여기가 아니네요, 죄송합니다."


라고 하며 아쉬움만 남겨드리고 우리의 목표인 '전주익산'이 있는 3층으로 향했다. 2층과 마찬가지로 3층도 거의 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점포 사장님들의 선의의 경쟁이 과열양상을 띠고 있는 풍경이었다.


"여기, 여기! 순대 드시게!"


"백순대 잘 볶아드려요!! 자자! 여기 앉으세요~!!"


백순대철판에 술 몇 병을 걸칠 것처럼 보이는 성인 남성 2명이 3층의 유리문을 열고서 공간에 들어서자 물에 던져진 떡밥을 향해 달려드는 물고기 떼처럼 달려드는, 치열한 삶을 오늘도 살아내시는 사장님들, 손님 한두 명이 그들에게는 중요한 하루하루의 매출의 기회겠지. 그래도 우리는 가기로 했던 곳이 있기 때문에 거절을 뜻하는 은근한 미소를 보이며 인파를 헤치고, 이미 찾아오는 고객들이 많기에 호객 행위라는 것은 하지 않는 전주익산집으로 무사히 안착했다.


'내가 이런 호객 행위의 장면을 어디서 또 봤었더라, 광안리회타워하고 자갈치시장의 회타워에서 봤던 것 같은데.'


김고로의 친가가 존재하는 부산의 광안리와 자갈치의 수산시장에 횟감을 구매하러 가면 상인들은 서로 방해를 하지 않지만, 고객에게 횟감을 판매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외치며 호객을 하는 모습으로, 삶을 살아내는 모습이 신림동의 백순대볶음 상인들과 겹쳐 보였다. 나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에는 그 모습들이 참 귀찮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일일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열심히 더 사람들이 또 어디 있을까.


사장님께서 안내해 주신 자리로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니 신림동 혹은 이 순대타운 건물은 지금도 이름을 얘기하면 다 알만한 어느 젊은 트로트 가수와 관련이 깊은지 그 트로트가수의 포스터와 활동사진등으로 3층의 내부가 꾸며져 있었고 그 외에 방송에 나왔던 모습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테이블마다 커다란 철판과 가스관 등이 함께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앉아서 백순대볶음을 주문하니 자동으로 앞에 놓이는 철판과 음식들, 그리고 그 위에 커다란 은색의 스테인리스 쟁반..?


철판으로 덮여있다고 해서 당황하지 마시길, 이게 다 맛있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걸 왜 올려주나 했더니 음식을 더 뜨겁게, 열을 고루 전달해서 볶는 용도군요."


"그렇지 뭐, 우리 오래간만에 봤으니 맥주나 한잔 가볍게 짠 할까. 옆에 양념장이랑 간도 나오네."


"네, 좋지요. 작년 여름에 뵙고 또 몇 개월 만이네요, 하하."


Y형과 나의 인연은 10년 전의 속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주에서 속초로 일을 하러 온 그와 이미 속초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살고 있던 나는 어느 청년협회의 모임에서 만나게 되어 지금까지 연을 이어오고 있다. 원래 서울 사람이지만 원주에서 오랫동안 대학교도 다니고 일도 하던 그는 이제 다시 서울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원주에 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국밥집인 '강릉집'을 소개해준 사람도 Y형이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작년 여름에 호주로 여행을 가기 전에 이쁜 그녀도 함께 3명이서 시청광장 근처에서 만나 차 한잔을 하고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를 보러 갔던 때였다.


"사는 건 좀 어떠세요? 준비하고 있는 것은 잘 되어가세요?"


"그냥 그렇지 뭐, 매일마다 공부하고 시험 날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 오늘도 너랑 만나고 나서는 다시 집에 가서 공부하다가 자야지."


잘 삶아진 고소한 간과 들깨, 고추가 들어간 양념쌈장


그가 그 목표한 것을 위해서 다시 걸어가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기쁘다, 그건 그렇고, 백순대 철판볶음에 곁들임 반찬으로 나오는 삶은 간을 들어서 일단 그대로 먹어본다. 얇지만 새하얗게 삶아진 간의 밝은 맛은 담백하면서 고소하다. 돼지부속의 냄새도 없고 일반적인 분식집에서 썰어주는 삶은 간보다는 더 가볍고 고소한 맛이 좋다. 함께 올려진 청양고추를 얹어서 들깨와 막장, 고추가 섞인 양념장에 콕 찍어서 다시 한번 씹어본다.


쫄깃쫄깃, 서걱서걱


쫄깃한 간의 식감과 씹을 때마다 가루처럼 부서지며 입안에서 맴도는 돼지의 피가 묻었던 부속의 고소함과 묵직한 맛이 입안에 맴돌고 그 잔여미가 쌉쌀하고 시원한 맥주와도 잘 어울린다. 따로 시킬 수 있으면 한 번에 좀 많이 시키고 싶지만 그렇게 먹으면 철판볶음을 다 먹지는 못하겠으니 참는다. 돼지부속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간을 먹을 때의 장점은 간이 가끔은 순대보다 더 맛있다는 것이고, 단점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참 신기한 게, 백순대철판볶음은 이렇게 스테인리스 철판을 위에다 이렇게 올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죠."


"모르는 사람이 오면 당황할 수 있겠지. 자, 받아."


우리는 간 한 조각에 시원한 맥주를 한 잔 곁들이며 오래간만에 만난 회포를 간으로 풀기 시작했다. 잘 삶아진 간은 간이 간간하니 식전에 심심한 입을 풀어줄 정도로 딱 맛이 좋다. 철판에서 지글지글 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고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홀을 보시는 직원분께서 오셔서 덮어놨던 철판을 열고 슬쩍슬쩍 볶아주시면서 우리의 식사를 위한 조리에 박차를 가하신다. 점심을 먹은 이후로 아직 제대로 된 식사는 하지 않은 우리의 식욕이 그 모습만 봐도 점점 올라오기 시작한다. 더 맛있는 먹이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맹수와도 같은 우리였다.


백순대철판볶음이 다 완성되기까지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삶은 간을 거의 다 먹어갔고, 간이 다 사라질뻔한 무렵에, 백순대볶음에 들어있는 양배추와 쫄면사리가 반투명해지며 다 익었음을 신호하자 우리의 철판을 돌봐주시던 직원분의


"자, 이제 드시면 돼요~"라는 말과 함께,


"넵!"


"들어, 들어."



'준비'자세를 하고 있던 Y형과 나의 젓가락들이 100m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철판을 달려 나갔다, 기본적인 재료인 순대, 곱창에 당근, 양배추, 대파, 부추, 양파, 쫄면사리, 떡사리 등이 들깨와 소금으로 조미가 된 모습, 그 가운데에 양념쌈장을 연못처럼 놓아두고 그 주변을 둥글게 철판볶음이 둘러싼 모습. 다양한 재료들로 이루어진 커다란 달걀프라이 반숙과도 같은 친숙한 모습. Y형과 내가 서로의 분량을 앞접시에 덜어주고 나서, 나는 일단 순대와 곱창부터 맛을 보기로 했다. 백'순대'철판볶음이니 순대의 맛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찹쌀순대, 어두운 핏빛이 나는 모습이지만 철판 위에서 들깨와 함께 볶아졌기 때문에 더 고소한 향이 스멀스멀, 모락모락 열기와 함께 나의 후각세포들을 깨운다.


쫄깃쫄깃


'일반적인 분식집의 순대와 그리 다를 것은 없는 맛인데. 흠, 무엇 때문에 이곳의 백순대가 유명한 것일까.'


찹쌀순대를 씹으면서 잠시 고민하는 김고로, 이어서 작은 곱창조각도 씹어보지만 고소하고 짭짤한 돼지부속과 순대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무엇인가, 묘하다. '눈이 확 떠질 정도로 맛있는 맛!'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Y형과 나의 젓가락과 음식섭취가 끊이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상당히 배가 고픈 상태였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이 음식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함께 철판에 볶아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거 별거 아닌 맛인데... 맛있네요? 왜 맛있지?"


"계속 손이 가게 되는 맛이야. 받아, 짠."


"네네, 짠."


순대와 곱창, 반박할 수 없는 어울림, 그 한 쌍


순대와 곱창을 한입 하면서 짭짤하고 고소함이 남는 가벼운 그 맛에, 다시 청량하고 쌉쌀한 라거 맥주 한입에 깔끔해지는 입안.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손이 움직여 갖가지 채소가 뒤섞여있는 앞접시로 향한다.


사각사각 우적우적


영롱하게 볶아진 양배추와 양파, 당근이 입안에서 식감을 뽐내며 각자의 채수를 뿜으면서 달달한 맛이 혀 위에 흩뿌려진다. 그 사이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떡국떡의 식감이 어금니 사이에서 씹히며 쫄깃함과 견과류, 육류, 채소의 기름맛으로 혹시나 아쉬울 수 있는 싱거움과 든든함을 채워준다. 그리고 철판에 눌어붙듯이 볶이고 구워진 쫄면사리, 놓칠 수 없다.


오도독오도독 바삭바삭


"형, 이거 쫄면사리가 식감이 상당한데요."


사실 볶음음식에 가락국수사리가 아닌 쫄면사리가 들어있어서 철판에 다 눌어붙고 끊어지고 난리가 나면 어쩌려나 하고 걱정은 했는데, 기우에 불과한 것을 쫄면사리는 나에게 증명해 내었다. 적당히 철판에 눌어붙으면서 구워지고 기름에 튀겨진 쫄면사리는 쫄깃하면서도 탱글하고 겉면이 바삭바삭하면서 입안에서 부서지고 끊어지는 그 식감이 매력적이고 훌륭하다, 백순대철판볶음에서는 순대나 곱창이 아닌 이 철판에 구워진 쫄면사리가 주인공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정도이다.


잘 볶아진 백순대볶음과 깻잎으로 싸먹는 순대


이렇게 철판에 직접적인 젓가락질만 하면 금방 먹어버릴 것 같아서 먹는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일부러 깻잎에 순대를 올리고 양념쌈장을 곁들여서 싸 먹는다. 돼지고기와 잘 어울리는 깻잎과 들깨라서 그런지 들깨와 깻잎의 향이 코로 확 올라오다가 양념쌈장의 감칠맛과 약간의 매콤함으로 계속 먹었던 돼지의 맛과 견과류의 향에 찬물을 끼얹으며 지루함을 씻어낸다. 고기를 쌈 싸 먹는 것과는 다른 쫄깃하고 끈질긴 식감, 간이 강한 쌈장의 잔여미 이후에 다시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시면서 다시 백순대와 채소들을 집어서 고소함과 심심한 맛으로 입을 기름칠하고, 또 맥주를 한잔. 뜨거운 철판만큼이나 달궈져 버린 김고로의 입맛과 군침은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Y형과 김고로가 맥주를 한잔씩 걸치면서 쫄면과 채소가 아직 붙어있는 철판을 긁을 때까지,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형, 이거 3인분 시킬걸 그랬어요. 저는 나중에 숙소 들어가기 전에 한 끼 가볍게 더 해야겠네요."


"그래, 나는 또 공부하러 들어가 봐야 돼서 너랑 차나 한잔하고 가야겠는걸."


우리는 심심한 맛에 중독된 우리의 입맛을 아쉽게 '쩝쩝'거리면서 다시 신림동의 별빛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사를 다 마치고 건물을 나서는 우리를 보는 다른 점포의 사장님들의 시선이 백순대의 긴 잔여미만큼이나 길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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