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로 Aug 12. 2024

[미식일기] 고향의맛, 강릉

그런데 대한민국이 아닌, 베트남인들의 내 고향 쌀국수

대한민국의 최대 성수기인 7월 말과 8월 초가 지나고 가을의 문턱이라는 입추를 지났건만,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연속적인 폭염과 열대야를 기록한 강릉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관광지로서의 열기도 식지 않았는지 방학과 휴가가 끝나지 않은 대학생과 관광객들의 인파가 강릉으로 몰려드는 일은 끝없이 이어진다. 곧 있으면 단오 다음으로 제일가는 강릉의 최대 지역 축제 중 하나인 '강릉야행'이 있을 예정이라, 관광객들의 축제가 끝나면 지역민들의 축제가 이어짐은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관광객들과 축제들이 생기고 사라지고는 관계없이 무더위에 취약한 김고로는 이쁜 그녀가 선호하는 여름 계절 메뉴 중 하나인 '냉짬뽕'을 먹으러 따라다니며 처음 가보는 중화요릿집을 방문하여 '냉정과 열정 사이'가 아닌 '냉짬과 열짬 사이'를 다니며 냉짬뽕과 뜨끈한 짬뽕들을 탐방해 보았지만 썩 김고로의 취향은 아니었기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평일 오후, 김고로의 휴일.


김고로는 문득 시내와 시장, 강릉의 월화거리를 오가며 눈도장을 찍어놨었던 아주 친숙한 이름의 베트남 식당을 떠올린다.


식당의 이름은 무려 '고향의 맛', 아무런 설명 없이 누군가 이런 말을 듣는다면 배우 김혜자 선생님께서 광고하시던 '고향의 맛, 다시 X'를 떠올리며 한식 밥집이나 한정식집을 생각할 테지만, 그 '고향'이 한국인들의 고향만 있지는 않기에, 강릉도 생각보다 다문화적이고 다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이기에 외국인들의 '고향의 맛'임이 함정이다. 강릉에는 태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과 동유럽 등,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들보다는 적은 수이지만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포남동에도 베트남 쌀국수, 반미, 디저트와 음료를 파는 큰 가게들이 메밀소바 장인의 '오무라안'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강릉 사람들에게 동남아 음식들이 생소하지는 않다.


기억하기로는 가게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고, 적어도 몇 달 전에 생긴 작은 식당인데 왜 이름을 '고향의 맛'이라고 했을까? 그만큼 베트남 사람들이 베트남 본토에서 먹던 음식을 그나마 덜 한국식으로 만들어서 그러한 이름을 했을까? 김고로는 노포나 '신'포나 따지지 않고 맛이 좋으면 가는 '미식'가이기에 이쁜 그녀의 손을 잡고 강릉 월화거리로 향했다.


일요일이 지난 월요일이지만, 월요일까지 휴일을 하기로 한 관광객들과 방학이 한창인 대학생들이 가득 찬 버스를 함께 타고서 월화거리에 도착하여 시장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양손에 닭강정, 마늘빵, 짬뽕빵등 다양한 시장의 먹거리를 들고 배회하거나 나무그늘에 앉아서 간식을 즐기시는 분들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서 강릉시장 근처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 월화거리 공원을 마주 보고 있는 붉은색 바탕에 큰 노란 글씨로 '고향의 맛'이라고 쓰고 커다란 반미와 쌀국수 사진을 걸어놓은 작은 집. 베트남식 쌀바게트 샌드위치인 반미를 포장으로 가볍게 가져갈 수 있도록, 붉은 어닝 아래에 분식집처럼 벽이 없이 가게 안이 훤히 보이게 뚫려있고 그 밑으로도 노란색과 빨간색 바탕의 메뉴소개를 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2명이세요?"


"네, 둘이요."


식당의 열린 문을 지나서 들어가니 왼쪽은 바로 베트남식 음료와 반미를 제조하는 꼭 한국식 김밥집의 김밥 제조공간과 같은 카운터 겸 반미제조대가 있고 바로 안에는 2~3평 정도 되는 길쭉한 부엌, 사장님의 어머니로 보이시는 분께서 쌀국수를 삶는 큰 냄비, 육수가 끓는 냄비 등 2~3개의 냄비들 앞에서 분주하게 다니면서 쌀국수를 삶고 육수를 부어 요리 중이시다. 형광등의 주광색 불빛 아래에서는 고수와 레몬, 고추 등 베트남식 향신료의 은근한 냄새가 퍼져 나와 중간에 식탁 5~6개를 두고 6팀 정도가 옹기종기 앉을 수 있는 작은 홀을 뒤덮는다.


"향신료 냄새 좋아, 꼭 동남아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향긋하니 좋다, 어떤 사람들은 안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싱가포르에 여행 갔을 때, 머물렀던 리틀 인디아에서 맡은 향기의 향수를 떠올린 이쁜 그녀는, 무더위에 찡그렸던 얼굴을 살며시 펴기 시작한다. 주변을 보니 2~3팀 정도가 앉아있는데 2팀은 베트남분들, 1팀은 우리와 같은 한국인이지만 외지에서 온 관광객분들로 보이셨다. 벽에 걸린 큰 텔레비전에서는 연결된 인터넷 영상 플랫폼을 통하여 베트남 아가씨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오고 베트남에서 오신 유학생 혹은 거주민으로 보이시는 분들이 홀을 보시는 베트남인 사장님과 베트남어로 살가운 얘기를 나누신다.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음식으로 운영하는 식당의 장점은, 그 식당에 잠깐 들어가서 밥을 먹으면서 해외여행에서 현지 식당에서 밥 먹는 기분을 낼 수 있음이 아닐까.


"여기 소고기 쌀국수 2개랑, 반미는 반으로 갈라서 하나요."

"네~"


주문을 받으신 사장님이 냄비가 끓는 부엌에 베트남어로 쌀국수의 주문을 넣으시고 반미를 만드시다가 우리를 보시며,


"반미에 고수 드세요?"라고 물으신다, 한국인들이 대부분은 고수를 잘 못 먹지 못함을 잘 아시겠지. 하지만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동남아의 향신료를 상당히 좋아해서 태국 음식점인 '스왓띠'를 가도 고수를 남기지 않고 먹는다.


"네! 고수 넣어주세요~!"


이쁜 그녀가 반미에는 고수가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담아 사장님께 정확한 요구사항을 관철한다, 사장님은 밝게 고개를 끄덕이며 반미 제조를 계속하신다. 주문을 기다리며 주변을 보니 벽을 노란색으로 칠하고 메뉴판의 배경은 빨간색이라 식당 자체만으로 밝은 분위기, 그리고 베트남의 국기를 식당 장식으로 그대로 표현하려는 본인들의 고향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집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들어왔을 때 이미 한 팀의 주문이 밀려있던 터라 살짝 시간이 걸렸지만 역시나 면요리인지라 반미가 제공되고 나서 다 먹을 때 즈음 쌀국수도 이어서 나온다.


반으로 갈라서 나눠달라고 말씀드리니 정확하게 이행해 주신 사장님

빵이 바로 구워져 나오거나 데워져 나오는 빵은 아닌지라 습기를 살짝 먹어 약간의 바삭함과 약간의 눅눅함으로 부드러워진 밝은 쌀바게트 사이에 상추와 고수가 가득, 거기에 붉은색으로 익혀진 살짝 매콤 달콤한 돼지고기와 간고기가 함께 꽉 들어찬 반미. 여태까지 먹어봤던 반미와는 다르게 마요네즈와 스위트칠리소스가 함께 들어갔다.


와사삭


상추, 고수, 다져진 조각 돈육이 함께 빵과 쫄깃하게 씹히면서 입으로 들어오니 고수의 풍미가 코를 확 덮쳐서 이국적인 향기와 함께 입안에서는 묵직하고 쫄깃한 고기에 부드럽고 달콤한 마요네즈의 맛이 혀를 덮는다, 식욕이 확 올라온다.


돼지고기는, 살코기, 간고기와 지방이 함께 섞여있고 그 외에 고추를 비롯한 향신료들이 가득하다, 양파와 고수, 상추 등 채소들도 빼놓으면 섭섭한 맛.

반미 안의 채소와 고기가 부드럽게 씹히면서 바삭한 겉면이 다른 쫄깃한 질감으로 다른 식감을 주는 맛이 매력적이다, 매번 올 때마다 사 먹고 싶은 맛이다. 바게트 사이에 속을 쌓아놓기보다는 둥글게 김밥처럼 쌀바게트에 속을 채우고 말아서 먹는 간식이다, 그리고 함께 들어간 고소하고 달콤한 소스가 입맛을 계속 끈다.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묘하게 계속 끌리는 맛이다. 덕분에 순식간에 반미는 위장의 어두운 구덩이로 사라지고, 각자 쌀국수를 탐닉하기 위해 젓가락을 들었다.


따로 담겨 나온 레몬을 쌀국수에 조금 짜서 넣고, 손질되어 나온 고수잎을 공평하게 반으로 나눠서 넣고 쌀국수와 함께 말았다, 쌀국수에 부재료들을 넣으면서 말다 보니 쌀국수의 양이 굉장히 많고 함께 들어간 양지와 차돌박이 등 쇠고기의 양이 일반적인 쌀국숫집들보다 더 많아서 감동이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동남아 음식에서 고수는 뺄 수 없는 존재임에 동의한다
고기완자는 없지만 두툼한 양지와 차돌박이가 그 자리를 메운다.


"생각보다 양이 엄청 많은데."


"응, 난 다 못 먹을 것 같아."


면을 섞다 보니 뜨거운 육수에 익어지기를 기다리는 숙주나물 한 줌, 양파 한 줌, 고추에 양지, 차돌박이 등 쇠고기가 한 주먹은 들어간듯한 푸짐한 양, 그렇지... 이 정도는 되어야 인심 넘치고 푸짐한 '고향의 맛'이라고 할 수 있겠지? 국물의 맛은 어떠려나, 궁금증이 이어진다.



국물이 굉장히 맑고 투명하다, 김고로의 생각은 일반적인 베트남 쌀국수 요리법처럼 살코기로 넣어서 육수를 낸 맛이겠지만, 고기를 얼마나 넣었느냐에 따라 국물의 맛이 좌우되는 법이다.


후루룩


"......!"


음, 달다! 고기 육수의 맛이 달다! 소고기 육수의 맛이 달콤하며 입안에 착 감기는 은은한 달콤한 맛이다, 첫 숟가락 이후에 두, 세 숟가락을 연달아 더 먹어본다. 은은하게 달콤한 맛이 혀에 착 감긴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음식이다 보니 인공적인 조미료와 감미료가 안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이 단맛이 고기를 많이 넣어서 우려낸 육수가 아니면 날 수 없는 단맛이라는 사실은 먹어보면 알 수 있다. 속초에서 베트남식 쌀국수로 유명해진 '매자식당'도 투명하고 맑은 육수이지만 고기를 맛이 넣어서 우려낸 달콤한 육수를 자랑한다, 고향의맛도 그 식당 이름에 걸맞게 그 쌀국수의 육수에서 고기의 달콤한 맛이 뿜어져 나온다.


가게에서 쓰이는 쌀국수야, 다른 가게와 크게 다른 점이 없기에 베트남 쌀국수가 입맛에 맞느냐 안 맞느냐를 결정하는 제일 중요한 요소는 육수이기에, 쌀국수의 육수가 오래된 노포의 갈비탕만큼 달콤하다면 그것은 내 취향이다, 더불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하는 끈적함은 덤. 찰랑거리는 쌀국수 뒤에 아삭아삭 씹히는 숙주나물과 양파, 고추, 그리고 이어서 쫄깃하게 어금니 사이에서 분쇄되는 쇠고기, 그 모든 재료들의 속에서 달콤하고 끈적한 쇠고기 육수가 계속 새어 나오고 입안을 달콤하게 적신다. 이 정도면 정말 '고향의 맛'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떠려나? 마침 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는 손님들이 들어온다.


젊은 베트남 청년들이 두세 명이, 한국 관광객 손님들이 나간 자리에 들어와서 앉고는 쌀국수를 주문해 베트남어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음식을 기다린다. 식사가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던 다른 베트남손님들, 사장님과 새로 온 손님들의 대화가 어울려 여기가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잠시 알 수 없는 시공간이 형성된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베트남 '고향의 맛'을 찾는 손님들의 쌀국수 주문, 그리고 잠시나마 즐기는 그들의 나라, 고향의 맛이다.


옆에 놓여있던 사테 (베트남의 Sa te는, 인도네시아의 Satay 양념과는 다른 베트남의 매콤한 양념이다) 고추 양념을 섞어 더 얼큰하고 매콤하게 즐길 수도 있다.

식사를 마쳤으니 다시 밖으로 나갈 시간이다, 동남아의 습도에는 얼마 미치지 않지만 후덥지근한 강릉의 무더위 속으로 걸어가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 강릉이 무더워지고 고향인 동남아만큼 후덥지근해지면 그들은 반가워할지, 질색을 할지 다시 궁금증을 떠올리며 김고로는 걸었다. 

작가의 이전글 [미식일기] 삼산감자탕, 강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