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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Aug 18. 2024

[미식일기] 쌍동통닭, 원주

구관이 명관, 변치 않은 옛날 통닭의 품격

이쁜 그녀와 김고로는 서로의 엇갈리는 직장 근무 일정과 휴일 일정으로 인하여 제대로 된 여름휴가를 가지 못했다, 긴 휴가를 가질 수 있었던 작년은 김고로의 친가가 있는 부산으로 다녀올 수 있었으나 올해는 둘 다 서로 다른 일정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긴 여름휴가를 가질 수는 없었다. 항상 여름에는 물놀이를 즐기면서 자라온 이쁜 그녀이기에 바닷가는커녕 계곡물에 발 한번 담가보지 못하는 여름을 보낸다는 게, 이쁜 그녀로서는 믿기지 않는다.


김고로도 여름휴가를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아니다, 다만 김고로는 물놀이를 그다지, 이쁜 그녀만큼 좋아하지는 않을 뿐이다. 그에게 물놀이라고 해봤자 차가운 물에 손, 발을 담그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시원한 음료수로 목을 축이는 행위로 만족이기에. 하지만 마침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적어도 일본이라는 나라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옴을 기념하는 공휴일이 생겼기에 그는 이때를 기회 삼아 강원도 내에서 1박 2일의 짧은 휴가를 계획했다. 만만찮은 비용과 시간 투자가 그로 하여금 하루의 고민을 하게 했지만 결국 그다음 날 아침, 갑자기 결정한 그의 마음을 툭 내뱉는다.


"가자, 원주. 안 가면 후회하겠어."


"결국 가는 거야? 좋아, 알겠어."


그렇게 시작된 김고로의 식도락과 원주가 슬로 힐링 관광지로 자랑하는 뮤지엄 산을 방문하기 위한 원주로의 휴가는 막을 올렸다. 원주에 도착한 밤에는 강릉의 단골집이었다가 원주로 이사 간 '어바운드 피자(구 스퀘어피자)'의 디트로이트식 피자와 각종 튀김들을 포장하러 가서 사장님과 반가운 인사와 담소를 나누고 새벽까지 배부르게 먹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원주의 관광객들을 편하게 실어 나르는 원주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서 뮤지엄 산에 방문하여 안도 타다오 건축가의 작품들도 감상하고 명상 시간도 가지며 이쁜 그녀와 즐겁고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늦은 점심의 끼니부터 김고로가 원주에 온 식도락의 목적 중 하나인 쌍동통닭을 태장동에서 방문할 수 있었다.


"1970년대에 이곳으로 이전하고 나서는 계속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가, 작년에 리모델링을 하셨다고 하더라고."


"호오... 그래서 오래된 집인데도 깔끔하구나."


겉에서는 대충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창고에 불투명한 유리와 시트지로 통유리를 붙여놓은 일반적인 '밥집'으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정면에서 튀김 가마솥에서 닭을 튀기는, 사장님의 아드님으로 보이는 직원분과 타일, 형광등으로 된 주방을 제외하면 무게감 있는 원목으로 겉을 꾸민 내부 장식과 검은 의자들, 생맥주 기계와 벽에 걸린 큰 텔레비전, 음료수와 치킨무가 담겨있는 큰 냉장고등이 보여 옛날 감성을 갖춘 호프집의 분위기가 난다.


"몇 분이세요?"


"네, 두 명이에요."


"드시고 가세요?"


"네네, 먹고 가요."


"저기 편안한 곳에 앉으셔요~"


"닭 한 마리만 주세요."


"네~"


쌍동통닭에서는 자리에 앉아서 닭을 몇 마리 먹을 생각인지만 파악해서 주문하면 된다. 최신 유행을 따르는 치킨집들과는 다르게 메뉴는 '후라이드 치킨' 외에 음료수와 주류 밖에는 없다. 가격도 요즘 치킨집들의 가격을 생각하면 거의 비슷한 수준이지만 한 마리치고 어마어마한 양이 나오는 쌍동통닭의 소문은 이미 유명하기에 그 누구도 가격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냉장고에서 방금 주문을 받으셨던 사장님이 커다란 흰색 음식보관통을 꺼내시고는 국자로 치킨무와 무국물을 그릇에 옮겨 담으신다. 옆에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배달용 치킨무가 따로 쌓여있는데, 홀에서 손님들에게 내어주는 치킨무는 직접 담근 치킨무이지만 배달 및 포장으로 드리는 치킨무는 위생 및 편의상 팩으로 포장된 치킨무를 드리는 모양.


김고로는 주변을 쭉 둘러본다, 원주에는 예전에 미군 부대가 있었기에 원주에는 후라이드 치킨이라는 음식이 전파되었고 90년대 초반에는 쌍동통닭이 있는 골목을 중심으로 치킨 골목이 조성되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쌍동통닭만이 해당 골목을 지키고 있다. 다만, 미군부대와 그 식문화의 영향으로 '원주 치킨'이라는 한국의 치킨 스타일이 되었고 '원주의 3대 통닭집'이 있으며 그 원주 치킨의 여파는 경북의 대구까지도 영향을 미쳐 대구에도 원주식 치킨을 한다고 하는 치킨 집이 있을 정도다.


쌍동통닭에 대한 여러 신문기사가 있다, 현재 사장님의 아버지 되시는 1대 사장님이 치킨집을 하게 되고 재료를 구해오기 힘들었다는 얘기와 치킨집 이름이 '쌍동통닭'인 이유, 치킨무가 쌍동통닭에서 처음 개발된 절묘한 반찬이라는 사실과 이에 대한 일화 등등... 시장 통닭이 조각 통닭으로 바뀌게 된 효시가 '쌍동통닭'이라는 현수막도 걸려있는 등 '치킨무'의 원조이기도 하기에 우리나라 후라이드 치킨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 치킨집임을 잘 알 수 있었다. 적어도 '후라이드 치킨'이라는 메뉴 하나로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무시하지 못할 일이다.


쌍동통닭의 치킨무에서는 동치미의 맑고 시원한 맛이 난다, 김고로가 치킨무의 국물을 들이켠 집은 이곳이 처음이다.

와삭와삭


치킨무가 나오자 마침 허기가 져서 시장했던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곧바로 포크를 들고서 치킨무로 직행한다. 달콤하지만 인위적이지 않다, 부드럽고 깊은 청량함이 느껴지는 치킨무다. 이전에는 치킨무가 이런 맛이었던 적이 있나?


"치킨무가... 동치미 맛이 나는데? 잘 익은 동치미 맛."


"신기하게 상큼하다, 무가 진짜 맛있어."


가만히 먹다 보면 치킨무만 두, 세 그릇 먹을까 봐 김고로는 치킨무 먹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더 달라고 하면 더 주시겠지만 그래도 메인 요리인 치킨을 많이 먹을 생각이니까. 그래도, 치킨무를 직접 맛보니 벽에 붙어있던 신문기사에서 봤던 '임신한 임산부가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치킨무 통으로 달려가서 국자로 퍼서 벌컥벌컥 들이킬 정도였다'라는 이야기에 신빙성이 더해진다.


"치킨 나왔습니다."


사진으로는 양이 가늠이 되지 않는다, 실제를 영접하면 그 양에 놀라게 되리라고 자신한다

"감사합니다, 와아, 이게 한 마리야?"


"치킨 양이 엄청 많은데, 남는 치킨은 포장해서 가야겠다."


노릇노릇하게 황금빛이 나는 쌍동통닭의 치킨이 막 나온 터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빠르게 다리 하나를 집어 그릇에 가져와본다. 큰 닭은 아니다, 한 마리라고는 하지만 작은 닭을 두 마리는 더 튀긴 양으로 보인다. 외관적 느낌은 이전에 집 앞에서 노부부 사장님들께서 튀겨주시던 '참피온 후라이드치킨'과 비슷하다.


바사삭 바삭바삭



한 번에 부서지는 얇은 튀긴 옷은 아니지만 이로 한번 씹을 때바다 바삭바삭 부서지는 살짝 두께가 있는 단단한 튀김옷, 기본적인 옛날 통닭의 모습을 갖춘 모습. 옛날 시장식 통닭의 정석이다, 물론 통닭집마다 방식이 달라서 고소하며 얇은 튀김옷을 사용하는 곳도 있지만, 김고로가 어릴 적부터 먹었던 시장 통닭의 형태를 그대로 갖췄다. 한국의 현대적 치킨의 역사가 시작된 모습을 맛볼 수 있음에 감동이다. 속살을 씹어보니 기본적인 간은 느껴지지만 일반적인 후라이드 치킨을 먹을 때처럼 짭짤한 맛은 아니다, 오히려 평소에 먹던 치킨들보다 싱겁다는 느낌이고 바꿔 말하자면 닭의 육질과 육즙에 집중하여 치킨을 즐길 수 있다.


"속살이 연해, 뻑뻑한 가슴살도 뻑뻑하기보다는 쫄깃하다."


"그거는 맞아, 가슴살이 맛있네."


"마치 염지를 안 한 닭고기 같은 맛인데, 닭냄새가 안 나."


"그건 아마도 신선한 닭을 쓸 수 있기에 그렇지 않을까? 매일마다 손님들이 많이 오니까 회전율이 좋고, 재료의 회전이 잘 되니까 계속 신선한 닭을 전처리해서 바로 튀기는 거지."


가슴살이 뻑뻑하지 않고 쫄깃하다, 뻑뻑한 살을 좋아하지 않는 김고로가 맛있게 먹을 정도

예전에는 거의 휴일이 없이 매일 영업을 하셨었지만 1대 사장님의 쌍둥이 아들분 중 1분이 맡아서 2대, 3대의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지금은 1주일에 한번 월요일이 정기 휴일이다. 이전에는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 공휴일 상관없이 영업을 하셨다고 하니 원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는 치킨집인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바삭 바삭바삭


작은 조각들을 계속해서 먹어치우는 즐거움, 하나하나 치킨 조각들이 벗겨지고 부서지는 바삭하고 단단한 튀김옷 소리와 쫄깃하게 치아 사이에서 탄력 있게 튕기면서 사라진다.


"이전에 집 앞의 참피온 양념치킨에서 먹던 맛이라서 좋아. 그 맛을 더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 안 했는데."


"이 치킨은 다음 날 먹어도 맛있겠어. 튀김옷이 단단해서 눅눅해지지는 않을 거야. 그런데 이 단단한 튀김옷이 바삭해서 참 매력적이지."


주변에 있던 따로 나온 양념을 포크로 콕 찍어서 먹어본다. 가볍고 달착지근하며 매콤한 고춧가루로 맛을 낸 양념이다. 끈적하고 윤기가 나는 덮어먹는 스타일이 아니라 찍어먹을 때에 더 맛있을 양념.



과자처럼 부서지는 튀김옷 위로 달콤하며 콕콕 찌르게 매콤한 양념이 발리니 쫄깃한 가슴살이 더 맛이 좋다. 그뿐이랴, 얇게 옷을 입은 날개와 허벅지 살도 한결 한결이 눈에 보이는 살결로 갈라지면서 씹히니 닭고기의 육질로 식감의 즐거움을 느끼는 튀긴 닭이다.


"치킨이 맛있어서 더 먹고 싶은데, 배가 부르네."


"포장해서 내일 먹자."


우리가 치킨을 먹는 사이에 새롭게 튀겨질 생닭들을 실은 박스들과 새로운 치킨무들이 들어오고 배달과 포장을 위한 조미료들을 묶으시는 직원분들을 본다. 포장을 부탁드리니 노란 봉지와 예스러운 그림과 문구가 쓰인 비닐봉지와 집게를 건네주신다. 종이봉투와 비닐봉지를 보니 시장에서 갓 튀겨 나온 닭을 사 먹던 시절이 생각나 기분이 묘하다.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원주에 또 오게 되면, 또 와서 먹을 집으로 기억하며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잠시 차 한잔을 위해 개운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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