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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우육면관, 서울

진중하고 깔끔함, 고기맛, 로맨틱, 성공적 우육면

by 김고로


김고로의 6월은 미리 예정했던 일들은 아니지만 그의 의도와 알맞은 행사들이 서울에서 발생하는 덕분에 이런저런 이유로 그리 좋아하지 않는 서울을 방문할 일들이 많다.


한적하고 조용하며 여유로운 강릉에서 잠시 벗어나 사람과 차를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다양하고 수많은 서울을 오가는 일은 그리 환영스럽지 않은 일이나, 김고로가 좋아하는 미식을 한 숟가락씩 더하게 되면 꽤나 즐거운 일이 되기도 한다.


이번 김고로가 향하는 목적지는 광화문, 건강 검진을 예약해 둔 검진센터가 광화문에 있는 호재. 광화문은 종로와도 가깝기에 많은 골목 맛집들이 포진해 있는 동네이기도 하고 노포를 찾는 식도락가들이 곧잘 가는 단골집들이 많다. 하지만 김고로가 생각보다는 조금 더 고생스러웠던 검진을 끝내고서 찾아간 곳은 탄생한 지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중국식 우육면 전문점인 '우육면관'의 본점.


김고로가 일정을 마친 곳으로부터 더 가까운 광화문에 분점이 있기는 하지만 음식점들이 처음 시작한 뿌리 찾기를 더 좋아하는 김고로는 괜히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다. 그래도, 그래도 괜찮다, 오늘 점심은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는 '혼밥'이니까. 종로와 청계천 구경도 조금 할 겸 10분 정도를 걸어서 하늘을 찌를듯한 고층 건물 숲을 지나 셀 수 없는 사람들이 흐르는 군중의 하천을 지나 점심시간을 맞이해 골목길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아메리카노를 한 손에 쥔 다람쥐들, 간단한 샌드위치와 안주들을 가운데에 놓고 맥주를 들이켜는 현대적인 요정들을 지나 예상보다는 작은 입구를 가진 우육면관 본점에 도착한다.


기다란 현관문 크기의 정문과 아래 1/4 정도가 진갈색 페인트가 칠해진 나무로 막힌 똑같은 크기의 창문들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6개가 2층 건물에 나열되어 있다, 한 1층에 3개씩, 딱 균형 잡힌 이쁜 흰색 건물.


손님들은 그중에 1층의 가운데 문을 열고서 들어간다, 김고로도 그렇다.


"몇 분이세요?"


"한 명이에요."


"여기 바자리에 앉으실게요~"


길고 좁은 1층은 겨우 7명이 앉을 수 있는 좁은 바자리에 2명이 비좁게 앉는 자리 1개, 2층에는 아마도 2,3명이서 조금 더 넓게 앉을 수 있도록 식탁과 의자들이 여유롭게 배치되어 있겠지? 김고로는 생각한다.


이전에 서울에 사는 친구와 우육면관을 이미 방문했던 이쁜 그녀가


'거기 저번에 가니까 1층에서 만두를 빚고 있더라, 만두가 맛있을 거야, 아마도.'라고 얘기한 어젯밤이 기억나는 김고로. 만두는 8개가 나오는 1 접시와 업진살, 아롱사태, 양지가 달걀, 청경채와 함께 소복하게 담긴 '진'우육면을 주문한다.


"여기 만두 한 접시와 진우육면이요."


"네, 만두 반 접시요?"


아니요, 김고로는 만두 반접시로 만족하지 못하니 한 접시가 다 먹고 싶은데요.


"아뇨, 한 접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는 딱 3~40센티 정도 되는 너비의 기다랗고 낡은 황토색 빛이 감도는 탁자에 앉아 옆과 위를 둘러본다. 왼편에서는 두 사람의 일행이 현재 직장에 대한 평가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고, 오른편에서는 김고로와 마찬가지로 혼자 행복한 시간을 가지러 온 또 다른 식객이 정신없이 면에 '후루룩 후루룩' 집중하고 있다.


위편을 보니 천장에 가깝게 붙어 반짝거리는 광고판에서는 이 가게가 어떻게 2018년에 창업이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중국과 한국의 여러 우육면집을 다녀본 후에 산동, 청도(그렇다 맥주로 유명한 그 '칭따오')에서 수십 년째 우육면집을 이어오고 있는 명인의 육수 조리법을 전수받아 온 우육면관의 이야기.


중국 남방에서만 살고 북방에는 올라가 본 적이 없는 김고로가 기억하는 우육면은, 김고로가 한국에서 경험했던 우육면과는 상당히 다른 우육면.


면은 중면처럼 가늘지만 쫄깃하고 라면처럼 구불거리며, 육수는 고수와 팔각을 비롯한 온갖 한약재와 허브맛이 강하고 표면에는 소기름이 맑은 기포를 형성하며 둥둥 떠다닐 만큼 기름진 고기맛이었기에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토의 맛을 더 사랑하는 김고로는 집 근처에 있었던 그 '느끼하다'라고 평가받던 우육면 집을 자주 갔었다,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그 맛이 좋았던 것 밖에는.


그리고,


"수교자 나왔습니다, 이건 수교자에 찍어먹는 장이고요, 맛있게 드세요."


가게의 직원은 8개의 옅은 핑크빛이 감도는 긴 타원형의 수교자 그릇 옆에 시큼하고 매콤해 보이는 만두장을 내려놓고 그 옆에는 우육면을 살포시 내려놓으며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우육면관에서 직접 빚는 수교자, 돼지고기의 담백하고 슴슴한 맛 사이에 새우가 들었다


검은 조리사복을 정성스레 차려입은 직원분들이 형광등의 백색광을 받아 검게 빛난다, 안쪽에 있는 부엌에서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조리기구들이 몇몇 보이니 그곳에서 면과 만두를 삶고 육수를 끓이는 곳인 줄 알겠다.


우육면관의 부엌 쪽을 잠시 바라보며 그들이 모르게 살짝 목례로 감사 인사를 한 김고로는 우선 국물을 떠서 마셔본다. 동네 한약방에 온듯한 푸근한 한약재의 냄새가 슬슬 올라온다, 씁쓸하고 고약한 약재의 냄새가 아니라 어릴 적 동네 한약원에서 피어 나오던 정겨운 향기.


쫄깃한 면발과 깔끔하고 가벼운 쇠고기 국물


후루룩


'오, 이렇게 깔끔하다고.'


아직은 뜨거운 기운이 남아있어서 그런가, 후각 세포들이 한약방에 가서 돌아오지 않아서 그런가, 입에서는 이게 쇠고기로 우려낸 그 육수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놀랍게 깔끔한 육수. 김고로는 다시 한번 육수를 마셔본다. 두어 번 정도, 더.


기름기가 거의 없는 듯 하지만 소고기의 깊은 맛, 가볍지만 진지한 쇠고기의 육수가 뒤끝 없이 딱 떨어지는 고가의 필터커피와 같다. 한국인이 싫어할만한 본토 우육면 특유의 기름진 쇠고기의 맛은 모두 걷어내고 그 빈자리를 매일마다 우직하게 끓여낸 뼈와 고기의 비율을 부드럽게 설계하고 짜 맞춘 쇠고기의 맛으로 채웠다.


'햐, 이거 놀람의 연속이군. 군더더기와 잡내는 모두 걷어내고 진심이 담긴 쇠고기의 맛이라.'


김고로는 가볍다 못해 청량하기까지 한 육수를 계속 마신다. 그리고 진하고 노란 면을 젓가락으로 들어 후루룹 삼킨다. 찰지고 쫄깃한 면발이다, 씹을 때마다 치아 사이로 기분 좋게 쩍쩍 들러붙었다 떨어진다.


'중국 본토에서 쓰는 가늘고 건조해서 뚝뚝 끊어지는 면보다, 이런 약간 더 쫄깃하고 굵은 면이 한국인들에게 더 입맛에 맞겠어. 국물과도 잘 어울리고.'


쫄깃하게 입안으로 말려 올라온 똬리가 풀어지고 씹히며 구수하고 진한 소고기의 육수가 따뜻하게 몸속으로 스며들어온다. 맑고 가벼운 고깃국물을 계속 먹다 보니 뜨끈한 냉면육수를 마시는 기분마저 든다.


국물과 고기 사이에서 잠깐 잊힌 아롱사태와 업진살, 양지들은 그 남아있던 약간의 지방마저 육수에 아쉬움 없이 내어주어 담백하게 육수와 어울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코기 사이사이 예의 바르게 앉아있는 매끄러운 비계 덕분에 김고로는 한 치의 뻑뻑함도 없이 부드럽게 고명으로 올라있는 고기들을 씹어먹을 수 있었다.



쫄깃한 고명들을 씹은 후에, 다시 탄력 있는 면발의 구수함 거기에 또 이어지는 깔끔하고 진한 쇠고기의 육수. 완벽한 균형이다.


젓가락과 다름 곁들임 반찬들이 있는 곳을 보니 쏸차이(갓으로 만든 중국식 반찬)를 넣어먹으면 감칠맛이 올라온다고 설명하고, 그 이후에 중국에서 배워온 라장(중국식 고춧기름)을 넣은 후 밥을 말아 얼큰하게 즐기라는 친절한 안내가 있다. 주인의 추천 식사법을 무시하고 넘어갈 김고로가 아니다. 스테인리스 통에서 쏸차이를 한 움큼 덜어서 반정도 남은 우육면에 털어 넣는다.


아삭아삭


새콤하고 고소하며 짭짤한 양념이 사각거리는 갓에서 뿜어져 나온다. 국물에 넣고서 다시 국물을 마시니 쏸차이에서 우러나온 양념 덕분에 깔끔한 감칠맛으로 국물이 변한다. 거기에 이전에 없던 아삭한 채소의 식감까지 더해져 3인조 밴드였던 우육면이 이제는 실내악 쿼텟으로 변한다.


갓으로 만든 중국식 반찬 쏸차이, 아삭하고 은은한 산미와 짭짤함이 입맛을 깨운다

쫄깃하고 사각거리는 면발과 국물을 계속 당기는 짭짤하고 산미 넘치는 감칠맛을 마시면서 면발과 남은 고명들을 모두 해치우고는 김고로는 라장을 3번 작은 찻숟가락으로 떠서 깔끔함에 이제는 매콤한 기쁨을 더한다. 고춧'기름'이지만 그 매콤함이 어디를 가겠는가, 쇠고기 육수에 고춧기름이 들어가니 국물만 붉지 않고 재료들만이 좀 많이 없을 뿐 육개장이나 다름없다. 김고로는 당연히 우육면관의 친절한 안내대로 밥을 주문해서 말아먹는다.


쇠고기 국물에 고춧기름, 이것이 중국식 육개장이 아니면 뭐겠는가.

고슬고슬한 밥알 사이로 아삭한 갓이 씹히고 매콤한 고춧기름과 고추씨, 고추조각이 코로 올라오는 중국식 고춧기름의 매캐함이 살짝 섞인 독특한 매콤함과 함께 아작거리며 더 작은 조각과 가루들로 부스러진다. 그렇게 정신없이 우육'국밥'을 퍼먹다 보니 내 그릇은 어느새 텅 비었다.


'아, 내 우육면, 내 육개장 어디 갔냐. 아 맞네, 내가 다 먹었지.'


쇠고기 우육면 하나로 세 코스를 먹고 나니 더운 여름날의 사람 많고 복잡스러운 광화문 한복판을 걸어도 든든하고 행복할 지경이다.


'이제 시원한 커피나 한잔 하러 가볼까.'


김고로는 지도 어플로 식사 중간중간 찾아놓은 필터커피 집을 찾아서 광화문 골목을 따라 느긋하게 걸으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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