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치에서 주문진으로 온 횟집, 칼칼한 남쪽 매운탕이 시원하게 '지리'고
시작부터 이야기를 미리 하지만, 김고로는 수산물보다는 소, 닭, 돼지 등을 좋아하는 '육고기'파다. 바다의 비린맛이 조금도 남지 않은 신선하고 활력 넘치는 생생한 바다맛만을 가진 수산물을 좋아하며 특유의 향이나 식감이 있는 다른 수산물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쁜 그녀가 좋아하는 멍게나 게 등은 아쉽게도 김고로의 기피 대상. 날것으로 먹는 요리 중에서 초밥과 참치회는 그럭저럭 좋아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김고로가 그리 즐기는 음식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김고로가 좋아하는 횟집이 한 군데 정도는 있다, 강릉에. 지난겨울, 김고로가 이쁜 그녀에게 방어를 먹여주고 싶어 찾은 주문진 중앙시장의 회골목에서 찾은 '부산자갈치횟집'은 사장님의 솔직함과 그 매운탕 실력에 김고로가 반해버렸다. 제철 재료를 좋아하지만 수산물에 대해서는 지식이 많이 짧은 김고로이기에 부산 자갈치에서 횟집을 경영하다 주문진으로 올라오신, 횟감과 수산물에는 잔뼈마저 굵으신 사장님은 당시 김고로가 11월에 멋모르고 찾던 비싼 방어보다는 수입 어종이라도 조금 더 저렴한 부시리가 훨씬 맛있다고 추천해 주시며 연을 시작했다.
실제로 당시에 사장님의 추천을 받아서 먹은 부시리회가 굉장히 맛이 좋았고 회를 뜨고 남은 부수재료로 끓인 칼칼하고 시원한 매운탕이 김고로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김고로는 그 이후 회를 먹고 싶을 때에는 꼭 이 주문진에 있는 부산 출신 사장님이 운영하는 횟집에 오게 된다.
처음 부산자갈치횟집 방문 시, 매운탕을 주문할 때 홀에 계시던 직원분께서
"매운탕에 라면 사리 드릴까요?"라고
여러 번 물어보시기에, 매운탕을 한입 먹기 전까지는
"아뇨, 괜찮아요."라며
한사코 거절하던 김고로, 매운탕의 국물을 한번 맛보니 목구멍을 탁 치면서 식도를 싹 쓸고 내려가는 그 칼칼함과 시원함에 반해,
'와, 이건 무조건 라면 먹어야 된다. 이래서 라면 사리 물어보셨구나'하고 자신의 무지함과 직원분의 말을 따르지 않음에 반성하며
"여기 라면사리 2개만 주세요!"라고 외친 김고로였다. 그 이후 부산자갈치횟집 사장님과 직원분들께 큰 신뢰를 갖게 되어 김고로에게 '강릉에서 회는 부산자갈치횟집이다'라는 공식이 생긴다.
그 이후 김고로의 친구들과 겨울 대방어를 먹으러 갔을 때에도 사장님의 친절과 솜씨는 변함이 없으셨고, 김고로가 이사를 한 이후 어머니가 멀리 부산에서부터 집들이를 오시자 수산물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김고로는 주문진으로 다시 향했다.
어머니, 이쁜 그녀와 함께 주문진 작은 다리에서 내려 중앙시장의 회골목으로 들어간 김고로, 예약한 시간에 살짝 늦게 도착했지만 김고로를 기다리고 있던 부산자갈치횟집 사장님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그를 반긴다.
"삼촌, 어서 와요. 오늘은 뭘로 해드릴까?"
"뭐가 들어와 있죠?"
"음, 오늘은... 여기 자바리도 있고... 광어, 양식 가자미, 돌돔, 줄돔도 있고..."
그날 수족관에 들어와 있는 물고기들과 어떤 맛이 나고 가격은 어떤지 김고로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시는 사장님, 김고로는 주로 남해와 제주도에서만 잡힌다는 자바리에 관심이 쏠린다. 물론 외국어종과 교합을 통해 나온 '대왕자바리'라는 양식 자바리 종도 있기에 수족관에 있는 녀석이 자연산인지 양식인지는 모르지만, '양식'이면 '양식'이라고 말해주시는 사장님이 그런 말은 없었기에 자연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오늘은 이 자바리 어떻습니까, 이거 살도 쫄깃하고 뼈가 굵은 어종이라 남은 걸로는 매운탕보다는 지리가 훨씬 맛있어예. 국물도 뽀얗고 시원합니더."
"오, 그래요? 그러면 오늘은 자바리로 먹을게요."
"네에, 그러면 자바리로 하겠습니다."
횟집 사장님의 안내를 받아 미리 준비된 예약석으로 들어가는 찰나 작은 주방에 있던 매운탕, 지리를 끓여주시는 직원분이
"삼촌, 이거 지리에다가 매운 땡초 조금만 넣어도 될까요? 훨씬 맛있는데."
"암요, 좋지요."
칼칼하고 매운 초록색 땡초를 넣기 좋아하는 경상도의 식습관이 처음부터 끝까지 배어있는 횟집이라 김고로의 마음에 더 든다, 무엇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추천해 주는 사장님과 직원들의 손님 응대 방식도 김고로를 기쁘게 한다.
넓고 커다란 접시 위에 회가 둥글게 펼쳐 나오고 가운데에는 적은 양 나오는 뱃살이 꽃봉오리처럼 모여 나온다. 횟집에서 기본으로 내어주는 반찬을 먹던 김고로 일행은 회에 바로 젓가락을 가져간다. 김고로는 우선 회에 간장만을 살짝 찍어서 맛을 본다.
우적우적
방금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신선한 생선이라 살이 쫄깃하고 탱글 하며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까지 입안에 스며든다. 훌륭한 회다. 간장을 찍어 먹으니 생선 육질의 은근한 단맛과 풍미가 살아난다. 그렇게 몇 점 먹던 김고로는 2점 정도를 한 번에 집어 횟집에서 내어준 막장에 회를 쿡 찍어 크게 다시 한입 한다.
우적우적
알싸한 다진 마늘이 듬뿍 들어간 '막장', 주문진 중앙시장 일대에서는 다진 마늘, 고추, 쌈장, 참기름을 섞어 만든 장을 회와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내어주는데 회의 풍미와 이 막장의 다채로운 맛이 회를 더 먹도록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알싸하고 매콤하며 고소한 냄새가 회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회를 잘 먹게 만든다, 씹으면 입안에서 튀어 오르는 기분까지 드는 자바리회가 쫀득하기까지 하다.
가운데에 모여 있는 뱃살을 먹으니 역시 생선의 건강한 지방이 모여있기에 그런 걸까, 지방 특유의 고소함과 꼬독꼬독한 식감이
오독오독
공깃방울이 터지는 것과 같은 소리와 식감을 자랑하며 어금니 사이에서 치아와 함께 협주를 시작한다. 달착지근하며 감칠맛이 넘치는 막장과 함께 마늘과 고추가 회에 깔끔함마저 더해주니 회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김고로도 회로 배를 채울 만큼 넉넉히 회를 먹는다.
김고로 일행이 회를 거의 다 먹고 빈 그릇을 발견한 홀의 직원분이 주방에서 계속 덥히고 있던 지리를 가져다준다. 미나리의 산뜻한 향과 구수한 사골향과도 같은 지리의 국물 냄새가 식탁을 가득 메운다. 보글보글 끓는 지리를 각자 그릇에 덜고서 김고로는 국물부터 맛을 본다.
후루루룩
"캬아, 지리도 정말 훌륭해."
육고기와 뼈로 끓인 국물처럼 고소하고 깊은 맛이 난다, 회를 뜨고 남은 부위에 남아있는 살점과 뼈로 끓였기에 비슷한 맛이 나는 걸까. 거기에 미나리와 무, 콩나물, 대파가 어우러져 해장국과 같은 시원함이 올라온다. 개인적으로 지리보다는 매운탕을 더 선호하지만, 이렇게 시원하고 깊은 지리라면 문제없다.
회를 썰고 남은 머리, 꼬리 그리고 뼈 사이에서 자바리의 살점을 골라먹는 재미도 좋다, 이전에 먹었던 방어나 부시리보다 살결이 더 부드럽고 미끈한 식감을 뽐낸다. 뜨거운 육수에 자신이 가진 육즙을 거의 다 내주었지만 그래도 자바리 특유의 훌륭한 식감은 다르게 유지되어 씹힌다, 쫄깃한 듯하면서도 육즙에 녹아내리는 육질.
잔가시도 거의 없고 뼈가 굵은 편이라 뼈를 발라먹기에도 편하다, 자바리. 쉽게 휙휙 걷어낸 뼈를 옆에 제쳐두고 크게 집은 살에 국물과 미나리, 콩나물을 함께 적셔서 혀에 올린다.
시원하고 구수한 육수가 입안에 퍼지면서 부드럽고 상쾌한 시원함이 그 중간을 가르고 목구멍으로 들어간다. 아, 생선으로 끓인 맑은 국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날 것으로 만든 생선이나 맑게 끓인 생선 요리를 선호하지 않는 김고로는 다시 새로운 미식의 문을 두드리는 기분이다.
생선으로 끓인 뜨거운 국물에 술을 곁들여 드시기 좋아하시는 분들의 마음이, 그 미식의 세계가 이런 것일까. 회나 매운탕에 대해서는 깊은 조예가 없는 김고로는 이제야 발을 들인 분야이기에 그저 맛있기만 하다.
다음 계절이 되면 또 제철 생선을 먹으러 오겠다는 인사를 사장님들께 건네고, 김고로는 다시 주문진의 골목으로 귀갓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