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차의 고장에서 날아온 흰 올빼미가 물어온 푸딩은 진한 달콤함
김고로가 시로울에 처음 방문한 시기는 지난 3월이었다. 2023년 말, 코로나19의 여파로 이미 상권이 많이 죽어버린 대학로이지만, 여전히 유동 인구가 많은 대형 프랜차이즈 잡화점과 경양식 브랜드 식당 옆에 비어있던 자리를 누가 빌리게 되었는지 김고로는 그리 관심이 있지 않았다.
강릉 시내 대학로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곧잘 가는 장소이기는 하지만 그곳에 좋아하는 밥집이나 음식은 있지도 않을뿐더러 자주 가는 디저트 집인 달떡 젤라토는 중앙시장 근처였으니까.
우연히 친구와 함께 들린 시로울에서 맛이 좋은 말차를 마시게 된 이쁜 그녀는 김고로에게 대학로의 어느 건물 2층에 품질 좋은 말차를 판매하는 곳이 있다고 추천했고, 이쁜 그녀의 추천을 받은 김고로는 당연히 그녀를 따라 방문했던 것은 당연지사.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를 좋아하더라도, 집에서 일하는 재택근무를 하게 된 이후로 더더욱 밖으로 나가는 일이 드물어져 버린 김고로이지만 그래도 가끔 나들이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물론 식도락을 위해서 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이쁜 그녀는 말차를 좋아하니 맛있는 말차를 파는 가게에 김고로와 함께 또 가고 싶었나 보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중앙 시장 근처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거리의 달떡 젤라토에 마실을 나온 김에 시로울에도 들리자며 함께 흰색 올빼미가 반기는 카페로 향했다.
일본인 헤드 바리스타와 한국인 바리스타가 함께 운영하는 카페이기에 일본어와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통유리로 된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무로 된 따뜻한 느낌의 식탁과 의자들,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만화영화의 어느 한 장소를 옮겨놓은 듯한 푸근한 공간들과 실제로 만화영화가 조용히 음소거된 채로 상영 중이다.
카페 입구의 바로 옆에는 바리스타님들이 일본어와 영어, 한국어로 메뉴와 설명, 그리고 직접 그리신 듯한 파스텔 톤의 음식 그림이 손님들의 시선을 끈다. 널찍하게 뻗은 하얀색 인조대리석 바 위로 큰 에스프레소 머신과 그 너머의 디저트 조리용 오븐들. 그림으로 된 메뉴판 옆에는 냉장 디저트 전시대가 반짝인다, 그리고 그 반짝이는 조명만큼이나 환한 미소를 장착한 사장님의 응대.
"안녕하세요, 어라.. 최근에도 오시지 않았었나요?"
바리스타님이 밝게 웃으며 두 번째로 방문한 손님이 재방문을 하는 손님인지 여쭈신다, 솔직한 이쁜 그녀는
"아뇨, 최근은 아닌데요..."
틀린 말은 아니다, 3월의 첫 방문 이후에 다시 방문한 시기는 4월 말, 5월 초 정도였으니까. 이쁜 그녀의 답에 바리스타님이 머쓱해하자, 옆에 있던 김고로는
"아뇨 아뇨, 최근 맞죠. 지금 아직 봄이 안 끝났고 지난번에 왔을 때가 3월이었으니까 최근 맞습니다, 허허."
두 번째로 보는 손님이 넉살 좋게 웃으면서 바리스타님의 아는 척을 받아주자 잠시 어색할 뻔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화기애애해진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제 마음을 알아주시네요. 무엇으로 도와드릴까요?"
"호지차라테, 말차라테 따뜻하게 하고요... 음, 말차푸딩 부탁드립니다."
"네에, 편하신 곳에 앉으시면 가져다 드릴게요."
마침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영혼들의 여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소녀가 기억을 상실한 꽃미남 백룡을 만나고 결국엔 가족 상봉을 하고 악덕 고용주에게서 탈출하는 그 만화'가 스크린에서 나오고 있었기에 안쪽의 소파와 같은 큰 자리에 앉을까 싶었던 김고로,
"고로야, 바에도 앉을 수는 있어. 좌석이 2개 있거든."
레스토랑이든 카페든 주방과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앉기를 선호하는 김고로,
"그래? 그럼 오늘은 바에 앉자."
방금 전에 기분 좋게 상호작용을 했던 남자 사장님과 조금 더 가까운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김고로는 이쁜 그녀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저녁 시간이 되지 않은 늦은 오후, 가게가 가득 찰 정도로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손님들의 출입이 잦고 회전율도 좋아 보인다, 적어도 김고로의 눈에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찾아오기는 하는구나.'
김고로는 주문 이후에 금방 나온 말차라테와 호지차라테에 코를 박고서 냄새를 맡는다. 구수하면서도 은은한 달콤함 그리고 말차와 호지차 특유의 가열된 찻잎 냄새가 후각 세포 깊숙이 들어온다.
"호오, 차향이 끝내주네. 초당에 있던 말차로의 말차도 훌륭했는데 멀어서 아쉬웠거든."
"응응, 우리는 가까운 여기로 오면 되겠다."
후루룹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호지차와 말차의 특유의 텁텁함보다는 진한 보리차에 비교될 수 있을만한 구수함과 찻잎의 고소함이 달콤함에 섞여 우유거품처럼 입안에 차오르고 그 뒤에 아주 미세한 쌉쌀함. 개인적으로 맛이 좋은 말차와 호지차는 혀로 받아내는 맛보다는, 나의 코가 차의 향으로 가득 차냐 아니냐로 구분하게 된다. 한 모금을 머금었을 때, 그 차의 풍미가 나의 머리를 잠식하는 그 즐거움.
"차가 좋아. 향과 맛이 진해."
"응, 나는 진한 말차가 좋아."
우리의 대화를 들으시던 바리스타님은,
"우리 일본인 헤드 바리스타의 고향이 가고시마인데요, 거기가 차로 유명해요."
"오, 그래요?"
김고로가 실제로 일본 가고시마의 차와 그 기후에 대해서 찾아보니 근처에 화산이 있어 화산토가 땅에 많이 포함되어 있기에 좋은 차가 생산되기에는 최적이라는 글이 있었다. 일본 자국 내 녹차 품평대회에서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기에, 한국에서 '녹차'하면 '보성'하듯, 일본에서 '녹차'하면 '가고시마'인듯했다.
시로울의 말차라테와 호지차라테까지 맛보고 나면 시로울의 메뉴들에 대해서는 큰 신뢰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 김고로는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물론 녹차와 말차 계열의 음료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국한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굳이 말차가 아니더라도 커피를 이용한 다양한 음료들과 디카페인 음료들은 물론 케이크와 푸딩 등의 후식 메뉴도 있으니 말차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시로울의 매력을 즐기기에는 충분하다. 그중에서도 호불호가 거의 없는 디저트 음식인 커스터드 푸딩에 말차를 넣어 만들어낸 달콤한 말차푸딩은 김고로가 시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 시즌 메뉴이기에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푹
푸딩이 전체적으로 부서지지는 않도록 탱글거리는 단면에 숟가락을 강하게 밀어 넣어 생크림에서부터 아래의 말차시럽까지 퍼올린다. 그리고 숟가락에서 푸딩이 넘실거리며 떨어질까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가는 김고로.
말차의 구수하면서 향긋한 풍미를 찰랑거리는 품에 간직한 채 푸딩의 부드러운 우유맛이 먼저 입안으로 들어와 으스러지면서 밑에 깔려있던 텁텁함과 약간의 쌉쌀함과 부드러움으로 말차 무스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설탕이 갈색으로 그을려 구워진 캐러멜이 말차가루와 만난 달콤한 말차캐러멜 시럽이 혀를 촉촉하고 꿀처럼 감싸며 탱글거리는 부드러움에 이은 말차와 캐러멜의 향기를 혓바닥과 그 미뢰에 깊숙이 심는다.
"와, 이 말차푸딩 엄청나네."
"달달하면서 말차맛도 진해서 좋아."
김고로는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디저트도 달콤한 케이크류나 초콜릿류보다는 시원하고 과일맛이 더 강한 셔벗류를 더 선호한다. 하지만 이렇게 쌉쌀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원재료의 달콤한 파괴력이라면 김고로를 굴복시킬 수 있다.
가벼운 생크림의 질감으로 시작하여 찰랑거리면서 어금니 사이에서 부스러지는 푸딩과 우유의 은근한 고소함과 달콤함이 쌓이고, 그 뒤로 쌉쌀하지만 조금 더 높은 수준의 달콤함이 단맛과 말차맛의 균형을 잡아주는 듯하다가 다시 말차 시럽이 강한 캐러멜과 수분감 있는 달달함으로 입안을 덮어버린다.
쌉쌀함과 달콤함의 균형을 잡은 맛보다는, 원재료의 풍미와 단맛의 강렬함으로 혀를 휘어잡는 전략은 손님들에게 '시로울의 말차푸딩'을 뇌리에 각인시키기에 충분하다. 김고로의 경우, 말차푸딩을 먹고 있노라면 내가 이렇게나 달콤한 푸딩과 말차를 좋아했었나 싶을 정도로 숟가락을 놓기가 어려워진다.
"말차푸딩은 이전에 먹어본 적이 없어서 여기에서 처음 먹는데, 앞으로도 계속 먹겠어."
"응, 그리고 강릉에서는 우리가 알기로 여기밖에 파는 곳이 없잖아."
김고로는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카페가 계속 존재하는 한 앞으로 이쁜 그녀와 함께 곧잘 오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음료와 디저트를 즐기며 바리스타님들과 조금씩, 가볍게 나눴던 수다도 김고로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김고로는 그래서, 앞으로도 시로울에 자주 방문하게 될 것 같은,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