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감자전, 바삭한 닭똥집, 달콤한 두루치기, 알코올 삼위일체
김고로는 알코올섭취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청량하고 시원한 맥주와 막걸리의 달콤함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무더운 여름날 저녁에 선풍기를 선선하게 돌려놓고는 얼음 넣은 맥주잔으로 냉기와 탄산감을 가볍게 털어마시는 매력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하지만 이미 언급했다시피 음주를 즐기지는 않는지라 요리류가 곁들여지는 '이자카야'는 곧잘 가봤어도 본격적으로 술을 줄지어 마시는 '소주방'이나 '포장마차'를 가본 적은 없다. 적어도 가까운 시점까지는 말이다.
"오늘은 그림 모임 사람들이랑 같이 한잔하고 오기로 했어."
이쁜 그녀는 몇 달 전 조직한 그림을 함께 그리는 주홍색 채소 모양의 모임의 사람들과 친해졌다. 이제는 서로 만나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먹고, 같이 차도 마시고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는 친목 모임으로 활용한다.
"그래? 어디서 마시고 올 건데?"
"저기 위에 효주실내마차."
"효주.. 실내마차?"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몇 번 갔었던 삼산감자탕집 근처, 강릉모루도서관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입구에 낡은 간판만을 보이는 허름해 보이는 실내 포장마차이다. 건물의 외관에서 보이는 분위기로 보아서 이 동네에서는 상당히 오래 세월을 버텨온 술집으로 보이지만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갈 생각도 안 했었다, '술집'이니까.
"나도 가도 돼? 오늘 퇴근하고서 바로 갈게."
이쁜 그녀의 모임에는 그리 참여하는 일이 없는 김고로가 묻자,
"거기 노포 술집이라 궁금해서 그러는구나, 그래."
"응, 고마워. 오래된 술집들은 이유가 있을 테니까, 안주가 어떤가 싶어서."
김고로가 갖고 있는 '포장마차'라는 곳에 대한 기억은 아주 어릴 적, 수원에 살던 초등학생 김고로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서 수원의 '원천유원지' 입구 쪽에 즐비하게 서있던 주황색 천막 포장과 내부의 백열전구로 밝힌 마차 안에서 기계우동을 먹었던 기억.
오늘날의 강릉에 사는 김고로는 그러한 술집 포장마차를 보는 일이 드물다,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에서는 사정이 많이 다르겠지만. 강릉에는 오히려 이자카야나 실내포장마차가 많아서, 주로 그런 곳에서 술을 마시는듯하다.
김고로는 월요일에 쌓여있던 일들을 마치고서, 재택근무로 인하여 대충 입어놨던 옷을 조금 '대외용'으로 바꿔 입고는 강일여고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국 어디나 폭염이듯, 강릉도 찜통더위였지만 주말보다는 시원한 태양 아래서 김고로는 효주실내마차로 즐겁게 향했다.
낡은 알루미늄과 강화 플라스틱 새시에 불투명한 유리창, 판자로 된 외벽에는 술집에서 주문이 가능했었던 메뉴들의 이름들이 시트지로 붙어있고 환기구가 주전자의 줄기와 입처럼 위로 뻗어 나와있다.
드르륵
김고로가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앉을 수 있는 식탁은 좌식 4개와 입식 2개, 입구의 바로 오른쪽은 아주머니분들 3분이 화구와 전처리대와 싱크를 오가며 주방 일을 하는 열린 주방에 술과 음료들이 담긴 냉장고가 연이어 붙어있다. 둥근 2인용 식탁이 주방 근처에, 사각형 식탁이 벽에 붙었고 좌식 테이블은 4개.
덥고 조용한 바깥세상과는 다른 시끌벅적하고 웃음이 왁자지껄 가득한 '효주실내마차'라는 다른 차원의 세계가 김고로의 눈앞에 펼쳐졌다.
"어, 오셨다."
"와서 앉아, 우리 먼저 시켜서 한번 먹었어."
김고로가 한두 번 정도는 만나거나 지나쳐서 얼굴이 낯설지는 않은 이쁜 그녀의 지인들이 이쁜 그녀와 함께 앉아 맥주와 소주로 이미 술자리를 시작하고 있는 모습.
그 옆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분들의 팀, 남녀 혼성으로 모임이 많은 안주를 시켜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고 입식 테이블에는 2명씩 앉아 조용하게 술을 마시고 있다.
"뭘로 마실래요? 맥주?"
"네, 맥주요."
김고로가 앉음과 동시에 미리 주문해 놨던 닭똥집볶음이 식탁에 등장한다. 이전에 김고로가 집에서 요리했었다가 수분이 너무 많아져버린 닭똥집 요리와는 다르게 바삭하게 튀기듯 볶아진 닭똥집은 먹음직스러운 갈색의 표면이 살랑거린다.
바삭
와드득
건조하거나 축축하지 않다, 잘 튀겨진 닭요리처럼 바삭바삭하게 닭똥집이 씹히면서 쫄깃하고 탱글거리며 어금니 사이를 구른다. 닭똥집이라는 재료 특성상 육질이 튼튼하니 오랫동안 씹으며 고소한 맛이 으스러지는 닭똥집 조각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김고로는 옆에 함께 누워있던 큰 마늘 조각도 집어서 입으로 가져간다, 닭똥집만큼이나 잘 구워(튀겨) 졌다.
아삭아삭
맵지 않고 살짝 익은 밤의 질감처럼 사각거리는 큰 마늘 편. 닭똥집을 하나 더 집어서 함께 씹으니 풋풋한 마늘의 향기가 고소한 닭똥집의 식감과 어우러진다.
"으음...!"
김고로는 생각했다, 여기서는 어떤 음식을 주문해도 맛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어려운 요리인 닭똥집의 간과 식감을 거의 완벽하게 하셨다면, 이 집에서 주로 내놓는 기름으로 지지는 탄수화물이나 매콤하게 볶아내는 단백질 요리도 이와 비슷한 품질을 기대할 수 있다.
"닭똥집 훌륭하네요. 이렇게 바삭하게 내놓는 닭똥집은 처음 먹어봐요."
김고로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닭똥집을 한입씩 하면서 맥주잔을 차례로 채우고는 '건배'가 이어진다. 짭짤한 바삭함에 상쾌한 간지러움이 이어지니 환상이다.
'더운 날에 환상적인 식감이군.'
김고로는 닭똥집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자, 메뉴판을 보며 다음 안주를 물색한다.
"여기 감자전 4장이요!"
"감자전 하나 더."
주변을 잠시 돌아보니 모든 테이블에서 감자전을 먹고 자주 주문하고 있는 장면을 보는 김고로. 처음 가는 식당을 갈 때는 주변의 손님들의 테이블을 훑어보라고 했던가, 김고로는 옳은 선택을 했다. 식탁에 감자전과 더불어 돼지두루치기가 있는 모습을 보고는,
"우리 감자전에 두루치기 먹자. 두부김치 말고 두루치기."
"그래, 시키자."
김고로는 잠시 주방과 손님들이 앉아 있는 주변을 돌아본다. 주방에서는 잠시 담소를 나누시며 주문이 없는 동안 쉬고 계시다가, 주문이 오자 바쁘게 움직이시는 아주머니분들과 가득 들어차서 주문은 쉬지 않고 나갈 생각이 없는 손님들.
"우리는 여기서 가까운 동네에 사니까 다행이지, 고로 오기 전에 한 팀이 왔었다가 만석이어서 돌아갔었어."
"다행이네. 나 여기 정말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술은 잘 안 마시니까 올만한 이유가 없었어서."
"그래, 이렇게 다 같이 술 마실 때 한번 와보면 좋지."
주방에서 불질하는 소리와 기름과 감자전 반죽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몇 분 나더니 김고로 일행이 주문한 안주가 금방 등장한다.
감자전이 군데군데 갈색의 먹음직스러운 그을림이 묻었다, 하지만 모서리 부분과 중심 부분까지 상관없이 불의 손길이 고루 묻었기에 모든 곳이 잘 익었고 어느 관광객이 몰리는 관광지의 가판대와는 다른 조금 더 두터운 두께의 감자전. 어디를 먹어도 바삭하고 쫄깃할 예감이라 김고로의 기대감이 상승한다.
바사삭 사사삭
모두와 공평하게 맛있는 감자전을 나눠먹기 위해 이쁜 그녀가 젓가락을 신속하게 움직여 감자전을 한입 크기의 조각으로 찢어서 나눈다. 김고로와 다른 사람들은 조각으로 나뉜 감자전의 아름다운 자태를 참지 못한다.
사각
쫄깃쫄깃
김고로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여태껏 전통시장의 감자전 가판대에서 사 먹던 감자전보다도 더 훌륭한 식감과 맛이다.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은 두껍지 않고, 얇지도 않은 적당한 감자전의 두께다. 감자전이 너무 얇다면 식감이 살지 않고 찢어진다, 너무 두껍다면 쫄깃한 감은 있지만 식감이 텁텁하고 씹기가 어렵다. 자로 재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감자전의 '적당한 두께'를 정의하기 쉽지 않기에, 이것을 오랫동안 실내마차를 운영한 경험과 '감'으로 오차 범위를 줄이며 조리하는 여사님들의 기술에 그저 감탄하는 김고로.
치아 사이에 달라붙으려다가 다시 튕기며 떨어지며 씹히고, 그 반죽 사이에서 고소하고 풋풋한 감자의 향이 피어오르고 바삭하고 단단하게 구워진 겉면이 씹히면서 부서져 쫄깃함과 바삭함이 섞여 고소하게 구워진 찰떡 먹는 기분이다.
한번 감자전을 더 끝낸 이후에도 감자전의 쫀득한 식감과 바삭함의 맛을 더 먹고 싶어서 한 장을 더 주문했었는데, 처음 나왔던 감자전과 식감과 맛은 같았기에 앞으로 감자전이 먹고 싶다면 굳이 시장에 가기보다는 효주실내마차에 오면 되겠다고 마음을 먹는 김고로였다.
감자전 옆에 대비되는 다양한, 주로 울긋불긋하지만, 색채로 화려하게 볶아져 나온 돼지두루치기에 눈길이 간다. 양념옷을 입은 김치와 돼지고기들이 여기저기 뒤섞여 무엇이 채소인지 고기인지 알 수 없지만 젓가락에 매달려 흐느적거리며 늘어진 모습이 먹음직스럽다.
헙
우적우적
매운맛? 아니, 은근하게 달콤한 맛이 입안에 장판처럼 깔리고 벽지처럼 도배가 된다. 설탕처럼 달콤한가? 아니다, 양파와 배추에서 흘러나온 채수의 달콤함과 약간의 설탕이 열기와 만나 캐러멜화 되며 피어오른 불맛의 달달함.
거기에 아직 더위를 먹고도 죽지 않은 양파, 김치, 양배추가 매콤한 고춧가루와 육즙 섞인 양념을 뒤집어쓰고 으스러지며 지루하지 않은 식감과 상큼함을 준다.
아삭아삭
채소와 옆에서 함께 씹히는 재료는 돼지고기, 껍질과 지방이 살코기와 함께 씹힌다. 탄탄한 지방과 껍질의 식감이 부드러운 살코기와 함께 살살 녹는다, 서로 다른 식감들이 상호보완을 하며 씹힐 때는 여성의 중저음과 남성의 고음이 만나서 화음을 만드는 기쁨의 소리가 입안에서 울려 퍼진다. 거기다가,
"이 양념이 매콤하고 달달한 맛인데, 달지 않아요. 설탕을 많이 넣은 달콤함이 아니라, 채수와 적당하게 넣은 설탕이 불과 육즙과 섞여 익으며 뿜어내는 향이 매력적이에요."
김고로가 돼지두루치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나누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한 젓가락씩 더 먹는다.
"그렇네, 여기 단맛이 참 괜찮다."
"그래서 두부김치에 나오는 볶음김치도 같은 양념을 쓰는구나."
"두루치기가 맛있으니 맥주만으로는 조금 아쉽죠, 막걸리도 한 사발 하실까요."
한 때는 맥주보다 막걸리를 더 좋아했었던 김고로, 20대 초반의 기억을 되살려 강릉막걸리를 양철사발에 담아 즐겁게 짠. 달콤하며 매콤한 두루치기가 통통거리는 식감으로, 막걸리가 부드럽게 남기고 간 발자국을 밟으며 좇아간다. 그리고 다시 막걸리의 우유와 같은 맛으로 혀를 달콤하게 덮는다.
효주실내마차에서 포장마차에서 지인들과 함께 술과 안주를 (특히 감자전과 두루치기와 닭똥집) 즐기는 매력을 알게 된 김고로, 동네 주민으로서 앞으로 곧잘 더 막걸리 한잔하러 가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