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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단호박크림치즈컵케잌, 강릉

은근한 단호박의 단맛과 꾸덕한 크림치즈의 진한 포옹

by 김고로

수년 전, 김고로와 이쁜 그녀의 거주지 근처의 언덕에는 '구커피'라는 소박하고 아담하지만 향기가 아름다운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들을 파는 카페가 있었었다.


자신의 이름인 '구'에서 이름을 따서 카페를 창업하셨던 구 바리스타님은 계산대 너머 안쪽에 자리 잡은 작은 바에서 친밀한 지인들과 단골손님들을 아낌없는 커피로 대접해주시고는 하셨고,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구커피에 많은 추억들을 남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카페는 3년을 조금 넘게 영업하고는 문을 닫았고, 1년은 넘게 구 바리스타님이 잘 살고 계신 모습만 SNS를 통해 알았을 뿐 다시 구커피가 탄생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 오늘 구 바리스타님이랑 DM 나눴어, 고로씨 강릉에 계시냐고 물으시던데."


"엥? 나? 난 강릉에 잘 있잖아."


그러자 이쁜 그녀가 웃으며,


"그렇지, 그런데 최근에 올라온 SNS 피드가 부산, 전주, 서울 등에 있는 식당들이다 보니 고로님 다른 곳에 사시냐고 묻더라고."


"하하.. 그럴만하지... 음..."


김고로는 잠시 말을 끊고 생각에 잠겼다. 구 바리스타님의 커피와 카페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옛날이 떠오른 그.


"구님이 커피 내리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 커피 다시 먹어볼 수 있으려나."


"그러게."


그렇게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잠들기 전에 나눈 대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기쁜 소식으로 돌아왔다.


"고로야, 구 바리스타님 지금 카페에서 일하신데."


"엥? 일반 직장 다니시는 게 아니었어? 어디 카페?"


"저기 효주원 근처에 '당신의 강릉'이라고 북카페 있잖아, 거기 카페에서 커피 내리신대. 구님이 부탁하신 일도 있고 해서 이번 주에 가서 뵙기로 했어, 가서 커피 마시자."


"오오! 좋아!"


그리고 이후에 맞이한 주말의 첫 번째 날,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간짜장이 맛있는 중화요릿집인 효주원 근처에 있는 '당신의 강릉' 북카페에 있는 '시에 카페'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야, 반가워요! 이게 얼마만이야."


옛 동네 단골 카페의 사장님과 단골손님의 만남은 언제 이루어져도 참 반가운 일이다. 그들은 만나지 못했던 시간 동안 나누지 못했던 근황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풀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이전 구커피에서는 못 보던 디저트가 있네요?"


"네, 여기 오고 나서 새로 만든 디저트예요."


"그럼 이걸 먹어봐야겠어요, 구님의 새 메뉴는 놓칠 수 없죠."


구 바리스타님의 디저트를 참 좋아하는 김고로, 이전에 즐겨 먹었던 바스크치즈케이크를 생각하고 왔지만 구 바리스타님의 말에 마음을 바꾼다. 김고로가 보기에 컵케잌의 위에 정사각형으로 다듬어진 단호박 조각과 크림치즈가 올려져 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는 생각.


콜드드립과 단호박크림치즈컵케이크

단호박치즈케이크는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그릇 위에 서빙된 상태에서도 아직 오븐의 온기가 남아있다. 차가운 콜드드립으로 주문한 에티오피아의 커피와는 상반되는 온도차.


"위에 있는 단호박과 크림치즈를 함께 빵과 곁들여 드시면 더 맛있어요."


김고로는 우선 샛노랗지만 초록색과 흰색이 군데군데 박혀있는 컵케잌에 서슬 퍼런 은색 포크를 찔러 넣어 입으로 가져간다.


와삭


바삭하게 구워진 단호박 조각의 겉면이 어금니에 으스러지며 노란 속살에 숨기고 있던 은은한 달콤함과 단호박의 풍미를 뿜어낸다. 실처럼 촘촘히 과육을 조직하고 있던 점과 선과 면에 잠들어 있던 단맛이 열로 인해서 껴안고 있던 크림치즈의 부드러움, 약간의 산미와 엉키며 달콤함이 배가 된다.


"와, 단호박이랑 크림치즈가 잘 맞네요."


단호박과 크림치즈, 둘 다 부드러운 식감이지만 사각사각 씹히는 달콤함과 혀에서 미끄러지는 크림치즈의 고소함과 산미가 서로 균형을 꽉 잡아주니 긍정적인 시너지가 난다.


김고로는 토핑이 올려져있지 않은 컵케잌의 속살을 파고들어 썰어서 먹어본다. 포크와 나이프로 조금씩 썰면서 대신 전해지는 감촉은 무언가 끈적하다, 단호박과 크림치즈가 서로 엉기듯 단호박과 밀가루, 설탕이 서로 잘 섞여있음을 보여준다. 거기에 단호박 과육이 찐 고구마처럼 함께 박혀있어서 더 보기 좋다.



푹신푹신


머핀의 반죽 사이로 웅크리고 있던 공기들이 밖으로 나와 숨을 쉬면서 포근하게 씹히고 묵직한 단호박 조각이 진득하게 씹힌다. 겉에 있던 머핀빵이나 토핑보다 더 달콤하다, 혀와 잇몸 겉에 달달한 맛이 눌어붙는 느낌으로 오랫동안 묻어난다.


실제로 찐 단호박이나 고구마를 먹듯 꾸덕꾸덕한 식감과, 확 치고 올라오는 설탕이나 인공 감미료의 단맛이 아닌, 저점에서 점점 적절한 단맛으로 꾸물거리며 기어오르는 맛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나 좋아할 맛이라고 생각했다.


'커피랑 마셔도 서로 맛을 침범하지 않아서 달달한 음료가 아니라면, 어느 음료와도 잘 어울릴 맛이야.'


김고로는 몇 번을 더 단호박과 크림치즈, 머핀의 속을 썰어 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적이지 않은 수동적인 단맛의 머핀, 게다가 우리와 친숙한 재료, 먹으면 먹을수록 마음에 드는 머핀이다.



'구커피'가 있을 시절에도, 구 바리스타님과 담소를 나누며 글을 쓰고 커피를 즐겼던 시간이 소중했듯이, 김고로는 적어도 구 바리스타님이 이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디저트를 구워내는 동안에는 이곳 시에 카페의 작은 바 자리에서 이전처럼 소중한 시간들을 만들어 갈 거라고 생각했다.


"구님께서 다시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저번에 얘기했었는데 이렇게 이루어지니 행복하군요."


"하하, 제가 더 감사하죠 고로님을 다시 뵐 수 있어서요."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구 바리스타님의 커피를 천천히 기울여 마셨다, 커피가 시원하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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