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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일상, 강릉

초당 사람들은 이렇게 맛있는 중화요리가 일상

by 김고로

처음 시작은 강릉 대학로의 김고로와 이쁜 그녀의 단골 카페인 시로울에서 나와서는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었다.


"너는 오늘 무엇이 당겨?"


"음... 칼칼하고 뜨끈한, 그런 음식?"


"오, 그럼 조금 멀기는 한데 초당에 가서 만두전골 먹을까?"


"좋지."


이전에 단골 카페의 사장님인 '구 바리스타'님께서 추천해 주셨었던 '초당 만두식당'이라는 김치만두를 잘한다는 식당이 '팟'하고 떠올라 그들은 시장하기도 하거니와, 빠르게 택시를 잡아타고 초당으로 향했다.


강릉시내에서 초당동으로 곧장 들어가는 206번 버스가 마침 떠나버렸기 때문에, 또 다른 206번 버스를 타려면 최소 20분 이상은 걸린다, 거기다가 마침 주말. 그들은 배고픔을 참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다.


여름이 이미 끝자락이라 해는 남대천 너머로 잠겨가고 어둑어둑해지기에 뜨끈하고 칼칼한 저녁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딱 좋으렷다.


초당동의 초당화아파트 쪽에서 내려 구 사장님이 말씀해 주신 초당의 만두식당이 있는 자리로 걸음을 옮기니, 음? 간판에 쓰인 가게의 상호가 다르다.


"어라..? 분명 '초당 만두식당'이라고 했는데."


해당 식당에 대한 평들을 보면 만두전골과 곱창전골이 훌륭하다는 평이 일색이라는데, 현재 김고로와 이쁜 그녀 눈앞에 나타난 식당의 메뉴는 삼겹살을 비롯한 육류들이었다. 그런데 한구석에 보이는 점심 특선에 만두전골과 곱창전골의 이름이 보이니, 가게가 업종이나 장사 방식을 살짝 변경한 듯싶었다.


"아... 이젠 전골은 점심에만 먹을 수 있네... 이런."


찾아가려고 마음먹은 식당에 특이사항이 발생하는 경우는 아마추어 식도락가인 김고로에게는 다반사라, 김고로는 당황하지 않고 지도 앱을 켜고 주변의 식당을 몇 개 찾아본다.


"그러면 조금 걷자, 여기 근처에 순두부 집도 있고 닭내장탕 집도 있으니까 하나씩 찾아가 보자. 반경 1킬로미터 내에 다 있어."


"그래."


그들은 상당히 배가 고팠지만 약간 남아있는 일말의 인내심을 붙잡고 초당에 이름난 식당들을 하나씩 갔지만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오늘 영업 종료'


"죄송해요, 오늘 포장으로 닭내장탕이 다 나갔어요."라는 실망감.


"미안해, 어쩌나."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나 배고파. 슬슬 머리도 어지럽고."


"음..... 그러면 저쪽으로 좀 걸어볼까? 아!"


"왜?"


김고로는 SNS에서 곧잘 자주 보는 이웃 사장님의 중화요릿집이 초당에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름도 친근한 '일상', 한국식 중화요리를 주로 하는 중국 음식 집. 사장님 내외도 많이 젊으시고 최근에 휴가를 가셨다가 돌아오셨다는 피드가 기억이 났다.


"저쪽으로 좀 가면 일상이라고 중국집이 있는데, 가볼래?"


"그래."


초당동에서 먼 동네에 거주 중인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강릉의 대표적인 관광 지역인 초당동에 올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김고로는 택시를 타고 온 초당동에서 무언가를 건지고 싶었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초당동에서 내린 장소에서 반대쪽으로 걸어 일식 라멘집과 말차집, 튀김덮밥집 등을 지나, 낯선 도시에서 황금 아치를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그 안도감과 비슷한 기분을, 일상의 붉은 간판의 환한 빛 볼 때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도 여긴 하는구나. 얼른 들어가자."


유리문을 열고서 들어가니 무협지에 나오는 객잔과 같은 나무 테이블과 나무 식탁, 하지만 그 위에 전자 주문 시스템의 조화. 흰 벽과 천장 그리고 주광색과 전구색의 불빛들이 가게의 모든 곳을 밝히고 주방은 가게 입구 전면에서 불과 음식의 향기를 뿜는다.


"칼칼하고 따뜻한 음식 원했으니까 짬뽕이면 되겠지? 여기 육짬뽕이네."


"응, 나는 짬뽕이면 되겠다. 나머지는 네가 골라."


"좋아, 나는 여기 일상 짜장면 먹어야겠다. 짜장에 우삼겹 제육볶음을 넣어주네. 거기에 어향가지튀김, 탕수육은 당연히 맛이 좋을듯하니 가지튀김도 맛이 없을 수가 없겠지."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잠시 음식을 기다렸다.


"어향가지튀김 나왔습니다.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가지를 튀기면 맛없기가 어렵다는 선례들을 많이 겪어본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신나게 젓가락을 들었다. 집에서 김고로가 가끔 만드는 어향소스와는 다르게 간과 향신료의 풍미는 살짝 옅었지만 매콤하고 짭짤하며 입에 착 감기는 감칠맛은 역시나 기대한 대로. 어향소스의 끈적끈적한 질감이 가지튀김의 바삭한 튀김옷과 찰떡처럼 맞아떨어진다.


"지금 바로 먹으면 우리 입천장이랑 입안이 다 화상 입으니까 조금만 기다렸다가 먹자."


갓 튀겨낸 가지를 깨물면 가지의 속살이 용암처럼 혀 위로 터져 나오기에 그들은 배고픔을 조금만 더 참다가 매콤한 소스에서 몸을 굴리고 있는 가지를 깨물었다.


바사삭


챱챱


매콤 짭짤한 어향소스가 얇고 바삭한 녹말 튀김옷에 어울려 치아와 혀 위로 안착하며 감칠맛을 터트린다. 가지의 입은 튀김옷이 가볍고 바삭한 식감으로 고소한 기름맛이 함께 씹히며 가지의 매끄럽고 촉촉한 속살이 흘러나온다.


고소한 기름과 상큼한 가지의 육즙, 거기에 큰 고추 조각이 매콤하게 씹히며 견과류를 씹듯 단단하게 으스러지는 식감까지 좋다. 김고로의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소스가 조금 더 달콤하고 새콤한 산미가 있으면 좋았겠지만, 짭짤 매콤한 어향소스도 담백하고 감칠맛으로 구미를 당긴다.


단단하고 바삭한 튀김과 푹신푹신한 가지의 식감에 소스의 감칠맛에 더해지는 입에 감기는 기름맛과 채수의 상큼함이 뇌리에 솟구친다. 자극적인 맛이 아니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소스와 가지의 재료들이 본색을 드러내며 튀김이지만 부담되지 않고 채소의 가벼움이 산다.



어향소스가 튀김옷에 스며들며 튀김이 눅눅해지지만, 그마저도 괜찮다. 튀김옷이 바삭함에서 쫄깃함으로 속성을 바꾸면서 다른 식감으로 더 부드럽게 씹힌다.


어향가지튀김에 이어 식사류인 일상 짜장면과 일상 짬뽕이 이어서 등장한다. 일반 짜장면과는 다르게 일상의 '일상 짜장면'은 우삼겹으로 진하고 새빨갛게 볶아낸 제육볶음을 짜장면에 얹어서 짜장과 함께 비벼 먹는 일상만의 짜장면이다.


메뉴설명에는 일상의 사장님 내외께서 식사로 드시다가 맛이 좋아서 메뉴로 출시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일상의 식사 메뉴로 등극했다는 말이 있었다. 맛있는 '스텝밀'은 꼭 먹어보고 싶은 법.


김고로는 자신의 메뉴인 '일상 짜장면'을 받아 들고는 숟가락부터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짜장면 그릇 안에 담긴 '붉음'과 '어둠' 중에 붉은 소스를 먼저 푹 퍼서 먹어본다.



우적우적


달착지근하고 무거우며 육류의 구수한 맛이 강렬하고 매콤하게 입안을 지배한다. 단맛과 매콤함이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손을 맞잡고 협동 작전을 펼치니 김고로는 이 혁명적인 물결에 함께 탑승, 자동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혀 밑에서는 멈추지 않는 침샘의 파도가 고개를 들며 철썩인다.


"와, 제육 좋다. 육중하고 강렬해. 역시 중국집 불맛 제육 어디 안 가네."


그리고 연속으로 짜장면의 어두움을 맛본다. 춘장의 달콤함과 짭짤함이 올라온다, 짜장 속 돈육의 구수함과 양파가 캐러멜처럼 치아 사이에서 퍼지며 아삭아삭 씹힌다. 채소가 짜장에 가득하니 묵직한 춘장과 고깃 조각들 사이에서 균형이 잘 잡혔다.


"짜장도 묵직하고 끝까지 찰지네, 이제 비벼볼까."


제육도, 짜장도 고기에 무거운 양념과 묵직하고 강렬한 불맛이 이미 코에서부터 '부릉부릉' 치고 올라와서, 이 개성 강렬한 두 소스가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처럼 잘 섞이고 어울릴까라는 걱정이 될 수도 있지만 면과 양념들을 한쪽으로 쏠림과 편협함이 없이 비벼주고 한 젓가락을 먹고 나니, 그러한 걱정은 싹 가시고 없다.



후루루루룩


짜장과 제육볶음의 교집합인 감칠맛 터지는 단맛이 먼저 느껴지면서 춘장의 고소함과 묵직함이 훅하고 입안 양옆을 치고 들어온다,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우삼겹의 끝까지 고소한 기름맛이 단맛과 짭짤한 맛의 사이를 뾰족하게 치고 올라오고 그 끝에서 제육볶음의 매콤함이 목젖을 탁 치고는 간지럽힌다.


제육볶음의 채소들은 조금 더 아삭아삭한 편인데 반해 짜장의 채소들은 조금 더 푹 열기에 덖여 익은 부들부들하고 뭉그러지는 식감이 섞여 채소들의 식감과 그 결에서도 조화가 좋다.



제육과 짜장의 경계에서 느껴지는 두 소스의 단맛, 짠맛, 기름의 풍미, 고기의 육즙, 채소들의 식감들. 그 모든 맛들이 함께 손을 마주 잡고 빠른 리듬 위에서 격렬하고 동작이 큰 춤사위로 춤을 추는 한 짝의 댄서들처럼 중화면을 무대 삼아 김고로를 장악한다.


"이게, 이렇게 맛있다고? 제육이랑 짜장이 이게 된다고?"


김고로는 일상 짜장면이 내뿜는 의외의 맛에 눈이 번쩍 떠지며 젓가락질이 조금 더 빨라진다. 무겁고 무거운 조합에 또 부담스러운 중화면이 섞여서, 지금까지 먹어봤던 중화요리 식사류 중에 제일 묵직한 식사류다. 하지만 면에 섞인 양념들의 장점들이 모여 서로를 살려주고 기분 좋은 화음의 오래가는 여운처럼 혀 위에서 느껴졌던 두 소스의 만남이 입안에서 잊히지 않는다.



김고로는 면을 다 먹고 나서도 식사를 멈추지 않았다, 간이 강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두 양념이기에 입안과 혀가 얼얼한 느낌도 있지만 짜장과 제육 소스가 섞였을 때 우려내는 의외의 육각형이 가득 차오르는 균형 잡힌 맛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맛있어서 소스까지 퍼먹다 보니 그릇 밑바닥까지 다 비웠어."


"너 정말 맛있었나 보다."


"어, 스텝밀로 남기에는 참 아쉬울 요리야."


얼큰하고 묵직한 고기맛이 인상적인 일상의 짬뽕, 국물만 조금 남기고는 다 먹은 이쁜 그녀의 든든하게 차오른 복부가 그녀의 말을 증명하고도 남았다.


한 숟가락의 국물만을 먹고도 맛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 불맛과 진한 고기맛을 자랑하는 일상의 짬뽕


"많다고 하더니, 거의 다 먹었네."


"배도 고팠고, 맛도 좋았고."


불맛으로 가득한 일상에서의 식사를 마친 그들은 후식으로 내어주시는 요구르트 한 병씩을 가볍게 비우고는 귀갓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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