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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정족리 동치미 막국수, 춘천

풋풋한 메밀의 향, 직접 담근 동치미의 맛, 막국수를 향한 진심

by 김고로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이쁜 그녀의 고향인 춘천을 방문하는 김에, 김고로가 가보고 싶었던 김유정 문학촌에서 이쁜 그녀의 가족들과 시간을 넉넉하게 보냈다. 김유정의 주요 작품인 '봄봄'과 '동백꽃' 등 김유정 작가가 머물며 그의 작품들의 영감과 동감이 된 실례마을을 한 바퀴 걷기도 하고 그가 세웠던 학교인 '금병의숙'도 둘러보며 있다 보니 금방 점심시간이다.


"오늘은 여기 근처에 있는 오래된 막국수 집에 가보세."


사위를 위한 춘천의 가이드가 되어주시는 김고로의 장인어른의 인도를 따라서 이날 함께 모인 이쁜 그녀의 식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실례마을 근처 막국수 집으로 향했으나, 이게 웬일, 김고로에게도 가끔 발생하는 '개인 사정으로 인한 휴업'이 그날 그들에게도 나타났다.


"어라? 안 하네?"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는 잠깐 서로 얘기를 하시더니 여기 들어오는 길에 사람들 많은 막국수 집이 하나 있지 않느냐며 그쪽으로 운전대를 돌리셨다. 여전히 춘천의 외곽지역이지만 춘천의 중심부를 향해 조금 더 차를 몰아서 가니 깔끔하게 리모델링이 된 커다란 식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의 길고 큰 입간판에 '정족리 동치미 막국수'라는 상호가 박혀있고 큰 몸집의 주요 건물은 검은색, 흰색, 회색의 색상으로 옷을 맞춰 입고 그 둘레를 줄조명 목걸이 두르고 카페와 정원으로 꾸몄다.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분위기 좋은 카페의 외관, 내부는 따뜻한 조명과 나무 재질로 된 식탁 등을 활용해서 외관의 결을 그대로 이었다. 노방 카페의 겉을 가지고 '동치미 막국수'라는 메뉴를 판다고 하니, 오래된 노포도 좋지만 막국수의 맛만 좋다면 멋들어진 신식 건물에서 면을 치는 맛도 색다르겠거니 생각하는 김고로였다.


막국수에 들어가는 동치미나 들기름 등은 전부 직접 담그고 뽑아서 사용하는지 가게 부설의 카페 옆에 동치미들이 익어가는 큰 항아리들이 담긴 숙성실과 아직도 들깨의 냄새가 나는 기분이 드는 기름집이 큰 통유리 벽을 두고 자신들의 비법 아닌 비법을 드러낸다.


가게에 들어가기 전에 그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김고로는 이쁜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식당 내부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조금은 흐린 날이었지만 날씨에는 개의치 않고 많은 사람들이 막국수와 수육을 함께 후루룩 흡입하는 중이었다. 가게 규모가 크고 단체 자리가 많아서 가족들끼리 오기에도 제법 편하겠다 싶었다.


"고로야, 뭐 먹을 거야? 나는 들기름 막국수 먹으려고."


"음, 나는 여기 상호명대로 동치미 먹을게, 곱빼기로."


동치미의 심심하고 은은한 맛보다는 조금 더 간이 있는 음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위해 비빔이나 들기름 막국수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들기름을 직접 뽑아서 쓴다고 하니 맛이 없을 수가 없겠다 싶어 김고로도 살짝 당겼으나 그래도 이 집의 근간이 되는 음식을 먹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막국수가 나올 때 즈음이 되자 가게에서 사용하는 동치미가 담긴 항아리가 식탁 중심에 올랐다. 메밀 국수가 몸을 푹 담글 육수가 먼저 나오니 김고로는 옆에 있던 종이컵을 들어서 한 국자를 떠 맛을 본다. 투명하고 맑은 동치미가 목을 타고 흐르며 은근히 달콤한 맛 사이에 짭짤함이 조금씩 섞인 맛에 무가 익어가면 내뿜는 시원함과 가볍고 상큼한 맛이다.



"오, 동치미 맛있네. 이 정도면 됐다."


"음.. 괜찮네."


김고로의 맞은편에 앉아계시던 장인어른께서도 동치미 맛을 보시고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셨다. 장인어른께서도 이곳은 처음 와 보셨기에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으셨겠지만 사위가 동치미 맛을 만족스러워하니 안도감을 느끼셨으리라.


그리고 은색 스테인리스 사발에 옅은 회색 빛이 감도는 메밀면이 똬리를 틀고 앉았다, 김고로는 곱빼기였어서 똬리가 두 개. 그릇 안에는 면과 김가루, 달걀만 들어가 있어 소박하고 단순하니 마음에 들었다. 면이 많은 만큼 동치미도 사발의 반이 넘게 차도록 가득 부어서 메밀면을 풀었다, 동치미가 이미 맛이 좋으니 그 외에 다른 조미료는 필요 없다. 둥글게 말려있던 면이 끊어지지 않도록 슬슬 풀어서 먹기 좋게 만든 후 젓가락을 들었다.



후루루룩


껍질이 약간 섞여서 중간중간 검은 점들이 보였지만 면발의 식감이 툭툭 끊어지고 찰기가 없다, 씹으면 씹을수록 메밀의 구수한 향이 코로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거 순 메밀이구만."


앞에서 드시고 계시던 장인어른이 메밀면의 정체를 파악하시고는 한 마디 던진다, 그에 동의하는 김고로는 면을 씹으며 끄덕였다. 메밀 함량이 많은 면은 생각보다 인기가 많은 면이 아니다, 쫄깃하지도 않아 식감이 매력적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심심하니까. 하지만 그 매력은 바로 풍미에 있다, 메밀국수는 많이 씹기보다는 목으로 넘기며 꺼끌꺼끌한 감촉으로 먹는다지만, 입안에서 머금고 있으면 메밀의 그 고소함이 계속 입과 코에 맴돈다. 그래서 메밀의 향을 아는 사람들은 면을 먹으면 알 수 있다, 메밀 함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그 메밀향으로 메밀이 적은 지 많은지 감이 잡힌다.


"네, 그러게요. 입안에 들어올 때부터 메밀향이 올라와요."


우걱우걱



흔들면 흔들수록 향기가 피어오르는 방향제처럼, 메밀 함량이 높은 메밀국수는 씹고 씹을수록 계속 그 풍미가 강력해진다. 메밀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동치미나 양념의 맛이 강하지 않아야 그 온전한 메밀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간이 싱거울 수도 있는 동치미 육수가 잘 어울리는 친구이고. 하지만 이 맛을 싱겁고 심심해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기 때문에 동치미 막국수를 하는 집들은 대부분 양념이나 들기름에 비벼 먹는 막국수를 함께 판매한다, 이건 입맛에 따른 취향 차이이기 때문에 서로 원하는 맛을 골라서 먹으면 그만. 막국수나 메밀의 맛을 안다, 먹을 줄도 모른다 등등 운운하면서 따질 필요 없다,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고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고 즐거워야지, 암.


정족리 동치미 막국수의 메밀면을 씹으면서 김고로는 강릉의 권오복 메밀국수가 생각이 났다, 나무 분틀로 순 메밀 반죽을 뽑아서 막국수를 하는 집이다. 그리고 메밀향이 피어오르는 면을 씹을 때면 항상 머릿속에'메밀꽃필 무렵'에서 묘사했던, 달빛 아래 소금이 흩뿌려지듯 피어오른 하얀 메밀꽃밭과 소설 속 주인공이 아들일지도 모르는 젊은 사내를 업고 걷던 밤이 겹쳐 김고로의 눈앞에 아른거린다. 평창군의 봉평의 메밀밭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아직도 가보고 싶은 희망사항이지만 막국수 한 그릇은 김고로로 하여금 많은 장면을 그리게 한다.


후루루룩


꿀꺽


메밀꽃 사이를 걸어가듯 거의 하얗도록 옅은 회색인 면을 씹으며 그 경치에 빠져있다 시원하게 몸을 적시는 내천을 건너듯 맑은 동치미 육수로 목을 축인다. 구수하게 머물러 있던 메밀의 안개가 달콤하고 삼삼한 동치미의 시원함에 씻겨 나간다, 하지만 아쉽지 않고 개운하게 쓸려내려 가는 맛이다. 면 위에 올려놨던 큼지막한 동치미의 무조각을 씹는다.


서걱서걱


우적우적


동치미의 차가운 심중에 잠들어 있다 깨어나 그 속살의 달콤함을 내어주는 동치미 무의 맛은 동치미 육수를 압축해 놓은 상쾌함이 있다. 살짝 말랑말랑한 무의 겉을 씹으면 바로 아삭거리는 무의 살결이 치아가 갈려 사라진다. 투박하게 끊어지면서 메밀의 향기를 폴폴 내뿜는 식감에 그 사이로 달콤 짭짤한 육수가 흘러가고 입안에 부드러운 자극을 주는 무조각으로 마무리, 한 그릇에 갖춰진 제법 괜찮은 코스요리다.


"들기름 막국수 맛있다, 들기름이 훌륭해."


"잘 됐네, 직접 짠 기름이 맛없기가 쉽지 않지."


막국수의 거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동치미와 메밀국수로 조합한 전통적인 막국수를 먹으며, 김고로는 다시 한번 정족리 동치미 막국수의 내관과 통유리로 된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메밀과 동치미의 맛에 김고로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국수 본연의 맛을 손님들에게 선보이려고 하는구나, 말쑥하게 현대적인 정장을 차려입은 신사가 전통 음식을 대접하는 기분이야, 암 시대가 어느 때인데. 막국수 집이라고 해서 꼭 노포적인 옛 건물을 유지할 필요는 없지.'


김고로는 다시 한번 동치미 막국수 집의 메밀면을 동치미에 잘 적셔 흡입한다, 이제 면은 거의 다 먹고 동치미 육수만이 남아서 스테인리스 사발의 밑바닥을 숨김없이 보이고 있었다.


후루루룩


우적우적


시원하면서 풋풋한 메밀면과 육수의 맛이 이제는 강 하류의 큰 물결처럼 김고로의 코와 입에 밀려들어온다. 김고로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막국수 원래의 맛을 손님들에게 드리려는 그 마음, 투명하기가 이 사발과 같구나. 막국수에 정말 진심이시군.'


정말 맛있는 막국수를 원래의 맛으로, 대중적인 입맛으로 바꾸고 싶은 생각도 있으셨을 텐데. 그렇게 하기보다는 대중적인 메뉴를 메뉴판에 추가함으로써 지켜내신 게 아닐까, 김고로는 생각했다. 사장님이 누구신지는 몰라도 막국수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시는 분이렸다. 김고로는 그 정열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춘천에서의 점심시간이 그렇게 메밀밭과 무밭 사이에서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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