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 폐허 위에 자라는 희망

영화 : Wall-E

by 리움

내 어린 시절 환경에는 항상 초록이 있었고 꽃이 있었다. 지금보다는 공간의 여유가 있던 시절이라 여기저기 빈터가 많았고 집은 허름해도 부잣집 정원 못지않은 화단과 텃밭이 있어 왜인지 풍족하고 여유로웠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식물 기르는 것을 좋아하고 적성에 맞으셨던지 꽃 피우기 힘들다는 동양란에 꽃이 피는 것도 어려서 보았고, 겨울이면 엄마가 두 계절을 오롯이 키워낸 배추로 김장을 담가 먹기도 했다.
다 쓰러져 가는 슬레이트 집이었지만 그 집을 뺑 둘러 마치 부잣집 담벼락 같은 코스코스 울타리가 쳐져서 가을바람이 불면 한들한들 꽤 낭만적인 곳이 되기도 했다.
여름에는 태양을 향해 쑤욱 얼굴을 내미는 해바라기도, 낮은 곳에서는 고기 없이 웰빙 쌈채소를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상추, 깻잎도 푸르게 자라났다.
그 모두 부모님이 이른 아침이면 여기저기 수도꼭지에 호스를 끼워 물을 뿌리고 요상스러운 냄새를 피우는 거름을 주고 해서 거둔 산물이었다.
그 식물을 키워낸 옛날 집은 시골이 아닌 서울 변두리 달동네였다.
그 시절은 서울이라도 곳곳에 그런 집, 그런 터가 많이 있었다.
그때 우리네 부모님들 마음은 그런 것들을 꾸준히, 너끈히 키워낼 만큼의 여유가 지금의 우리 보다 더 있었던 걸까?
지금은 주변에 그런 공간을 가지기도 어렵고, 곳곳에 빈 터들은 더 높이 올라야 이익이 되는 빌딩들로 채워져 아기자기한 푸릇함은 사라진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파트 베란다나 거실마다 공기 정화에 좋다는 식물을 들이고 꽤 잘들 키워 내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식물이 우리 집에만 오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정말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해마다 겨울을 넘기며 주황색 꽃을 피워 내던 군자란을 제외하고는 심지어 물도 잘 주지 않고 그냥 놔둬도 잘 자란다는 선인장과의 산세베리아마저도 시들시들하게 만들어 엄마집으로 돌려보낸 적도 있었다.
유일하게 아이가 태어나기 전쯤인가 친정엄마가 들고 오신 늠름한 군자란 하나만이 죽지 않고 아이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까지 생존해 있었으나 그마저도 곧 잘못될 것 같은 마음에 식물을 잘 키우시는 엄마 집으로 보내고 지금 이사한 집에는 푸릇한 식물이 하나도 없다.
나는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한다.

결혼하고 남편은 내 생일이나 기념일에 꽃다발 선물을 잊지 않았다.
연애 경험이 많지 않았던 그는 여자들은 의례히 꽃을 좋아할 것이란 생각을 한 듯하고, 나 또한 선물 받은 꽃에 늘 향기를 맡으며 격하게 반응했으니 한동안 꽃다발 선물은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 형편도 좋지 않고 얼마 못 가 시들어 버리는 꽃이 부담스러워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부터 꽃은 그냥 한 송이만 줘도 충분해요.”
그때부터 남편이 등장하는 기념일엔 빨간 장미꽃 한 송이, 보라색 아이리스 한 송이가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내 곁에서 사라지며 몇 년 동안 꽃이건 식물이건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기억이 없다.
아이가 고등학생을 지나고 스무 살 언저리부터였나 어버이날이나 내 생일날 가끔씩 신경 써서 꽃다발을 준비할 때부터 난 다시 식물, 꽃을 선물 받기 시작했다.
아이가 내게 준 첫 꽃다발이 참 많이 소중해서 솜씨 없지만 잘 다듬어 드라이플라워로 만들어 한참을 벽에 걸어 두기도 했고, 아이는 마른 꽃을 보며 제 선물에 스스로 뿌듯해했다.
이후 꽤 여러 번 꽃다발 선물을 받았다.
아이의 마음을 잘은 모르겠지만 아빠가 선물했던 꽃, 이제 그 누구도 엄마에게 선물해주지 않는 식물을 저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싶어 남편에게 말한 것처럼 ‘한 송이만 해줘’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사는 동안 내가 꽃다발 선물을 몇 번이나 더 받을까 싶어서…
그러면서도 받은 꽃다발이 시들고 색이 옅어지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조금 더 오래 볼 수도 있었는데, 내가 신경을 못 써서 일찍 시들게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식물을 잘 키워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탓하며 식물과 거리 두기를 한다.
그래서 아무리 예쁘고 향기로워도 내 스스로 식물을 집에 들이지 않게 된다.

서울, 지금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우리 집엔 식물이 자리하질 않는다. 간혹 아이가 식물테라피를 얘기하며 무언가 생명체를 키워 볼까라는 이야길 하지만 잠깐 생각만 할 뿐이다. 내가 잘 못해서인지 아이도 식물을 잘 키우지는 못하는 것 같다. 오래 관심을 두고 정해진 시간에 물을 주고 자리를 바꿔 주며 햇빛도 쏘여 주어야 하는데 아주 잠깐 그 정해짐을 잊어버리면 어김없이 식물은 시들고 만다. 식물도 꽤나 관심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존재임에도 요란하게 소리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심히 그 존재가 잊힌다.

<영화 : Wall-E>

사막화되어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폐허가 된 지구에 청소로봇 Wall-E가 있다.
인류는 이미 700년 전 우주 크루즈를 타고 지구를 떠났고 청소로봇들이 폐허의 지구를 청소하고 재건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그 모든 계획은 실패인 듯 보인다.
그 많던 청소, 재건 로봇도 모두 멈추고 오직 Wall-E 하나만이 남아 의미도 없는 쓰레기 정리 작업만 반복할 뿐이다.
그런 폐허 속에서도 Wall-E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루트를 돌며 충실히 사람들이 명령하고 떠난 쓰레기 정리 작업을 하고, 일을 마치고 자신의 아지트로 돌아와 비디오를 틀고 고전 뮤지컬 영화를 보며 눈을 반짝인다.
영화 속 장면은 Wall-E가 보고 있는 현재의 지구와 다르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파란 하늘, 초록빛 나무 그늘 아래 아름다운 옷을 입은 채 손을 잡고 노래한다.
자신의 기계손을 맞잡아 보며 스킨십, 관계를 떠올리는 로봇은 기계형 로봇이 아닌 인공지능형 로봇인가 보다. 사람만이 가지는 느낌, 관심, 사랑, 소중함을 스스로 터득한다.
평소처럼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행하던 Wall-E 앞에 탐사형 우주선이 신형 로봇 Eve를 내려놓고 떠난다.
이제껏 주위를 맴돌던 바퀴벌레를 제외하고는 지구상에 오로지 혼자였던 Wall-E는 매끈하고 멋진 새 로봇에 첫눈에 반하고 그때부터 Eve의 뒤를 쫓아다니기 시작한다.
어김없이 모래폭풍으로 바람이 몹시 심하던 어느 날 바람을 피해 Eve를 자신의 아지트로 데리고 가고, 거기에서 자신이 모은 지구와 인간들에 대한 정보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그 자신도 최근에 처음 본 작고 여린 초록 식물 한 그루가 있었다.
그 식물을 본 Eve는 식물을 자신의 내부 저장고에 숨기고 그때부터 대기모드로 들어가 깨어나지 않는다.
자신이 본 비디오 속 남녀의 손 맞잡음을 기대하고 있던 Wall-E에게 이때부터 눈물겨운 Eve 보살핌이 시작된다.
충전이 필요한가 싶어 자신의 업무 중간중간 살피며 태양광 충전을 해주고, 자신이 모은 아름다운 전구로 장식해 가는 곳 어디든 잠든 Eve를 데리고 다닌다.
자신이 발견하고 소중히 챙겨두었던 식물이 Eve에게로 갔지만 그건 대수롭지 않다.
오직 Eve가 전처럼 깨어나 자신과 손 맞잡고 함께 하길 고대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깨어나지 않은 Eve를 소환하러 다시 탐사우주선이 지구에 오고 Wall-E도 그 우주선에 타 함께 700년 전 지구를 떠나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엑시엄호에 가게 된다.
그곳엔 로봇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편리함에 길들여진, 비대해지고 변형된 새로운 형태의 인간들이 각종 로봇과 함께 살고 있었고, Eve의 임무는 700년 전 세팅된 대로 지구에 식생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엑시엄호는 지구를 떠날 때 지구가 완전히 청소되고 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면 다시 지구로 귀환할 것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엑시엄호의 대표 격인 인간인 우주 크루즈의 선장은 지구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며 지구로 귀환할 것을 결정하고 마침내 로봇 Wall-E가 처음 발견하고 또 다른 로봇 Eve가 소중히 보관해 옮겨온 식물 샘플 하나에 의지해 지구로의 귀환이 시작된다.
그 작고 여린 초록 식물 하나가 지구의 사막화를 멈추고 폐허를 덮어 다시 Wall-E가 보았던 비디오 속 흙과 하늘과 나무와 꽃, 그리고 서로 다정한 눈길과 부드러은 손끝을 마주 잡는 사람들이 거니는 곳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아주 오래 걸리겠지만…

여기에 나오는 로봇은 오히려 사람보다 더 사람 같다.
첫눈에 반한 존재에 자신의 전부를 다 내어 주는 로봇이 과연 로봇일까?
사람도 그런 사랑을 하기 어려운 시대에 Eve를 향한 Wall-E의 사랑은 말 그대로 지고지순했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부끄러워졌고 마음이 낮아져 눈물이 났다.
그리고 또 공포스러워지기도 했다.
내가 키우기 어려워하는 이 초록 식물들이 내 집뿐 아니라 이 땅, 이 지구 위에서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되는 날, 사람 또한 이 지구에 살 수 없게 된다.
결국 내가 어떤 이유에서건 집안에 식물 하나를 두고 오롯이 키워내지 못하는 게 지구의 사막화처럼 우리 집의 사막화, 결국 폐허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하고,
작은 식물을 키워내지 못했던 것에는 내 관심과 애정의 부족, 결핍이 큰 이유였을 거다.
사람을 키워내듯, 소리 내지 않는 식물이지만 그렇게 공을 들여야 한다는 걸 피했던 것 같다.

봄이 오고 있다.
군데군데 겨울이 아직 다 물러나진 않았지만 바람결에 따숨은 어찌할 수 없다.
아이가 해볼까, 했던 식물을 들여 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내게 이러저러한 이유로 꽃을 선물했는데, 나는 아이에게 졸업식 이외에는 한 번도 식물을 선물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아이를 보듯이 초록 식물 하나 집안에 들여 이 집이 폐허가 되지 않도록 매일매일 쳐다 보고 손길을 더해 보면 혹 식물이 잘못되더라도 흙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또 새로운 식물로 다시 키워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나하나 키워 내다보면 나에 대한 아이 마음도, 아이에 대한 내 마음도 어쩌면 초록초록, 알록달록 눈이 시리게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우리의 귀여운 Wall-E와 Eve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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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우주를 유영하는 두 로봇 사이로 흐르는 루이암스트롱의 La Vie en Rose 음악만 나오면 어디선가 작고 소중한 두 로봇이 그 차가운 기계손을 맞잡고 드디어 따뜻한 온기를 퍼뜨리고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몽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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