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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Apr 13. 2022

한 승객의 푸념

문학 | 수필


      

날씨가 느지막이 쌀쌀해졌고 가을 바라기 화살나무도 이제야 붉게 물들었다. 막사 앞마당에서 은행을 발라내고 있던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한 해를 돌아 막바지가 코앞이다. 제대한 지 석 달이 지난 지금, 아직 군대에서 보냈던 삶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미진한 반성으로 접어두었던 일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CCTV 근무를 설 때, 진돗개를 처음 보았다. 화면에 비쳤던 개는 위병소로 뛰어들어 막사와 가까운 도로를 내달렸다. 개 한 마리가 CCTV 화면들을 분할하고 있는 직선을 힘차게 뚫었다. 여러 화면의 경계를 넘나들며 돌아다니는 광경은 생소했다. 한동안 진돗개의 부대 나들이는 계속되었다. 주인이 목줄을 안 하고 키우는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다가 도망쳐 나온 것으로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분리수거장에서 진돗개를 볼 수 있었다. 화면으로 봤을 때와 달랐다. 마르다 못해 갈비뼈 사이의 굴곡이 보일 정도로 가죽만 남은 상태였다. 흰 털은 거무튀튀했고 누추하고 볼품없었다. 쪼그려 앉아서 손을 내밀 생각이었는데 움직일 기미를 보이자마자 개는 전력을 다해 도망쳐버렸다. 개가 허겁지겁 떠난 자리에 종량제봉투는 옆구리가 터진 채 너저분해져 있었고 우유갑은 이곳저곳 흩어져 있었다. 개가 매번 이곳에 오는 이유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한 달 뒤 여단본부 ‘마음의 편지’에 개 얘기가 나왔다. 개가 자주 짖고 덤벼들어 무섭다, 길고양이와 함께 처리해달라고 쓰여 있었다. 처리란 죽임을 뜻했다. 하지만 그 개는 짖는 것은커녕 사람을 지나치게 무서워했다. 개를 내쫓고 싶으면 위병소에서 자주 위협을 주거나 철조망 개구멍을 보수하면 될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분리수거장에 포획 틀이 설치되었다. 중대장은 개를 안락사할 것이라며 병사에게 포획에 방해되는 행위는 하지 말라고 했다. 이곳에서 한 생명을 쉽게 처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것이 가장 편하고 효율적이기도 했다. 개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을 생각을 한다든지 개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준다든지 그런 대안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시간 아깝다고 여긴다. 군대는 생명을 잡아먹는다.


얼마간 진돗개는 붙잡혔다. 사람들은 개를 보기 위해서 저마다 시간 나는 대로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철조망에 갇힌 개는 구경거리가 되었다. 움츠린 개는 날 잠깐 보고 두리번거렸다. 가죽만 두른 덩이에 숨이 붙어있었다. 사람과 다를 것 없는 눈에 두려움과 호기심이 묻어났다. 굶주림 외에 아는 게 없는 듯 더 나은 것을 경험해본 적도 없는 그런 날들이 있었다. 철장 문에 자물쇠는 없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이전에 언성을 높이고 군홧발 소리를 내며 개를 내몰기도 해봤으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난 그가 잡히지 않도록 나름 행동했다고 생각했다. 철조망 앞에서 망설였다. 모난 돌이 되면 안 된다, 자중하자, 상관없는 일이다 스스로 타일렀다. 결국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난 쭈그려 앉아 있었다. 마음처럼 고르지 못한 오목한 무릎뼈를 내려다보니 군복으로 뒤덮인 내 몸뚱이가 있었다. 개 역시 철장의 수직 직선 너머 군복 입은 날 보았을 터, 난 그에게 군복들에 포함되는 그 이외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간은 스스로 관제탑이라고 믿지만, 승객에 불과하다.’라는 기제를 인식하면 이를 벗어나 관망할 수 있을까. 아니다, 난 보기 좋게 기제에 매몰되었다.


개는 죽었다. 산허리를 잘라내고 우뚝 선 부대는 깨끗해졌다. 길은 인간만이 다녔고 유일한 생존자인 청설모는 전선의 직선을 외줄타기 하며 잣나무로 향했다. 난 여느 때처럼 분할된 CCTV 화면을 보며 기나긴 하루를 보냈다. 거미가 화면에 곡선을 쳤다. 위병소 군인은 플라스틱 빗자루로 이슬이 묻어 반짝이던 거미의 천을 찢어발겼다. 죽이지 말았어야지. 난 아직도 지난 시공간에서 연거푸 포획틀 문을 열어젖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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