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크게 앓았다. 나보다 먼저 감기에 걸린 아이가 회복할 기미가 보이자마자 꼬리물기하듯 뒤따라 아프기 시작한 건 바로 나였다. 침대 밖을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몸살 증상과 함께 고열이 시작되었고, 기침, 복통, 메스꺼움, 힘 빠짐 등의 온갖 몸의 신호들이 번갈아 찾아왔다. 다 나은 줄 알았던 아이도 중간중간 다시 열이 났으니 그야말로 지독한 열흘이었다.
몸과 마음을 모두 움직이지 않으니 어느쪽도 회복이 쉽지 않았다. 이대로 누워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동네 내과라도 찾아가 수액을 맞겠노라 결심을 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자마자 집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바로 병원으로 나서려 하는데 피부에 포근한 봄바람이 닿았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기엔 아쉬운 날씨라는 생각이 들어 산책로로 목적지를 바꿨다. 트렁크에서 생수 한 병 꺼내 들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두 세 코스의 산책로를 정해두고 몇 년째 같은 길을 걷곤 하지만 한 번도 그 길이 지루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어쩌다 장기간 동네를 떠나 있거나, 일주일에 한두 번도 산책을 나서지 못하는 날엔 산책로의 풍경, 나무 한 그루까지 궁금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만 보기 아까운 풍경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내주기도 하고, SNS에 공유하기도 했다. 누구라도 함께 걷자는 사람이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나설 정도로 산책을 좋아하는데 막상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는 그 기쁨을 자주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한동안 걷지 못했던 사이 산책로의 봄 풍경은 참 많이 달라져 있었다. 중요한 것은 꽃이 꺾여도 축제를 여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벚꽃 없는 벚꽃 축제’를 해야 할 정도로 일찍 핀 평지의 벚꽃은 꽃눈이 되어 떨어진 지 오래였지만 내가 향한 고지대의 산책로에는 벚꽃 나무들이 여전히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깊은 숲 속의 진달래는 분홍빛이 조금은 바랬지만 갈색 잎들 위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고 세상의 모든 연두색을 스펀지에 묻혀 무심하게 툭툭 도장이라도 찍은 듯한 나뭇가지의 여린 잎들은 저마다의 빛을 띠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꽃봉오리였던 철쭉도 이제 본인들의 차례라는 듯 화려한 색을 뽐내며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계절 중 가장 경이로운 순간이다.
느릿느릿 길을 걷다 걸음을 멈추고 흰 꽃나무가 바람결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할 수 있다면 하루 종일 바라보고 싶은 모습이었다. 갑자기 울컥, 별다른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작년 봄에도 그 자리에 있던 나무였다. 아니 나무의 크기만 보자면 내가 산책을 하기도 훨씬 전부터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땅만 보며 걷던 중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 우아한 자태에 놀라 한참 멈춰 바라보았던 작년 봄이 떠올랐다. 그때도 열심히 동영상을 찍고 몇 번씩 돌려보며 감탄을 하곤 했는데, 매번 다른 나무에게 관심을 주느라 꽃이 진 후엔 잊고 살았다. 나무 입장에서야 그냥 제 삶을 살고 있을 뿐인데 때마다 찾아와 혼자 호들갑을 떠는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괜히 나무를 성가시게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가평 친정집에 왔다. 오전 늦게 출발한 탓에 오자마자 바삐 점심을 먹고 친정 엄마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쑥을 캐러 나섰다. 먹는 건 좋아하지만 밭 일은 좋아하지 않는 나는 연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쑥 캐는 일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저 멀리 커다란 나무가 자꾸 눈에 밟혀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탓도 있었다. 나처럼 쑥 캐는 일에 영 재미를 못 붙인 둘째 아이가 다시 할머니 집으로 돌아간다기에 데려다주는 김에 함께 나무 구경을 하러 가자고 했다. 비 온 후 푹신푹신해진 밭을 건너 커다란 나무 앞에 도착했다. 며칠 전 내 눈을 사로잡았던 동네의 흰 꽃나무와 비슷한 크기의 나무였지만 향기가 남달랐다. 젖은 흙냄새와 꽃 향기가 코 속을 가득 채워주었다.
꽃잎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동네에서 만난 그 꽃나무는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산책로에서 살짝 떨어진 위치에 있어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산책할 때마다 이름을 찾고 싶어 ‘흰 꽃나무’라는 검색어로 수 십장의 이미지들을 찾아보곤 했으나 정확한 이름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만난 나무는 달랐다.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꽃잎은 다섯 개였는데 간격이 넓었고, 꽃의 색은 흰색, 꽃받침은 연두색이었다. 가지는 연둣빛이 도는 갈색. 꽃대엔 꽃이 줄줄 매달려 있었지만 아직 만개한 상태는 아니었고 향이 아주 진했다. 나무의 가지들은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등나무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무 이름이 궁금해진 나는 늘 검색하던 ‘흰 꽃나무’라는 단어에 4월을 붙여 ‘4월 흰 꽃나무’라는 검색어를 입력했다. 여러 사진들을 비교해 본 결과 이 나무의 이름이 <귀룽나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시선을 돌리자 바로 옆엔 근처 펜션 공사 현장에서 무거운 자재들을 막무가내로 버린 탓에 힘없이 꺾여버린 귀룽나무가 있었다. 뿌리와 줄기 부분은 커다란 자재 아래 짓눌려 있었지만 나뭇가지에는 아무렇지 않게 꽃이 피고 있었다. 내년에는 다시 못 볼 나무라는 생각에 부러진 가지들을 몇 개 주워 집으로 가져왔다. 변변한 꽃병이 없어 꽃가지를 맥주잔에 넣고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글을 쓰다가도 맥주잔을 들어 꽃잎을 바라보고 향기를 맡았다.
쓰러진 귀룽나무의 꽃가지가 떨어져있어 친정 집으로 데려왔다.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면 읽고 쓰는 일을 가장 많이 하지만 이 시간 못지않게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계절마다 거르지 않고 같은 길을 산책하는 일이다. 나무에 기대어, 꽃에 기대어, 그리고 이름 모를 모든 생명을 바라보는 일 또한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며칠 내내 몸과 마음을 함께 앓으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순간에 가장 그리웠던 곳은 바로 숲이었다. 그만큼 숲에서 받는 위로가 크기 때문에 선뜻 집안엔 식물을 들이지 못한다. ‘엄마, 또 꽃이 식었어?’(아이는 시든 식물을 보고 식었다고 표현한다.)라는 말을 수시로 들어야 했던 식물 킬러와도 같았던 나의 과거를 알기에 이젠 집에서 돌보기보단 숲으로 나가 바라보는 쪽을 택한다.
걷기 좋은 봄, 내가 좋아하는 길을 함께 걷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동동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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