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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글 Feb 03. 2022

야 너두? 야 나두!

그 시절 그 떡볶이 코트.

 작은 동전 지갑 하나를 사도 친구들과 맞춰 사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쯤이었다.

대여섯 명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작은 소품 하나도 함께 사는 것을 무언의 약속처럼 지켜왔다. 집안 살림이 넉넉해 필요한 물건을 바로 살 수 친구도 있었지만 난 그렇지 않은 쪽에 속했다. 정해진 용돈도 없었다. 아빠가 금요일마다 1주일치의 수금을 해 오시면 이것저것 떼고 남은 잔돈을 조금씩 주셨다. 하교 후 겨우 2~3번 떡볶이를 사 먹으면 사라질 정도의 금액이었다.


 적은 용돈을 틈틈이 돈을 모아 친구들을 따라 물건을 사곤 하던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한 친구가 특정 브랜드의 운동화를 사면 나머지 친구들도 한 명씩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 신기 시작했다. 같은 듯 다른 디자인의 흰색 클래식 운동화를 신는 친구가 늘어나면 내 마음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멀쩡한 운동화를 엉망으로 신기도 하고 괜히 사이즈가 안 맞는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며 엄마의 마음을 살살 떠 보았다.

휴, 조르고 졸라 겨우 신발을 얻었는데 얼마 후 다른 친구가 가방을 바꿨다. 친구가 새로 산 가방 브랜드에서는 같은 디자인의 가방이 색깔별로 출시되었다. 서서히 친구들의 가방 색이 바뀌기 시작한다. 아, 나도 사고 싶다.


 겨울이다. 한창 떡볶이 코트가 유행하던 때였다. 코트를 사고 싶은데 도무지 엄마의 마음이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겨울 친구들을 따라 구매한 동대문표 짝퉁(?) 폴로 패딩이 아직 입을만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겨울의 나에겐 의미 없는 옷이었다. 심통난 내 마음을 어떻게든 티를 내야 했다. 겨울 외투가 없는 사람처럼 살기로 했다. 한 겨울 추위에 온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도 교복만 입고 학교로 나섰다. 매일같이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코트를 사주지 않으면 어떤 외투도 입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감기에 걸리려고 일부러 찬물 샤워를 하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걸 풍요롭게 채워주지 못하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코트 한 벌도 마음 놓고 사줄 수 없으면서 나는 왜 낳았어? 가시 돋친 말들을 내뱉고 며칠 내내 방문을 걸어 잠갔다.

결국 엄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갈색 떡볶이 코트를 사 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엄마는 엄마 나이 16살에 부모님을 모두 여의었다. 엄마에겐 세 명의 언니와 오빠가 있었지만 각자의 삶을 버티느라 서로를 살필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이른 홀로서기를 결심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공부에 뜻이 없던 아빠도 비슷한 시기에 홀로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같은 일을 하다 만나게 된 부모님은 23,2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았다. 넉넉할 수 없는 살림살이가 당연한 현실이었다. 한겨울에 태어난 나를 쪽방촌 한편에서 어설프게 어르고 달래며 키워나갔다. 낯가림이 심해 어디에도 맡기지 못해 공장일까지 데리고 다녔다. 고생한 만큼 수입이 생기는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바지런히 나와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을 살펴 주었다.


 잠자리 독립이 늦어 혼자 자는 걸 유난히도 무서워했던 나를 위해 안방 문을 열어두고 문지방 바로 앞에서 잠을 자던 아빠(사춘기가 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방문을 닫아버린 철없는 딸), 정신없이 아침밥을 차리다가도 내가 방문을 열고 나오면 안아주던 엄마의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다. 부모님과 나는 언제부터인가 말 수가 줄어들었고 서로 살갑게 대화를 나누는 편도 아니다. 하지만 투박한 듯 다정했던 이런 기억들 덕분에 부모님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엄마라는 이름을 얻고서야 알게 된 사랑이다. 이제 더 이상 내 어린 시절이 춥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겨울이 오면 아침을 맞이하는 손길이 유난히 더 분주해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오늘의 기온을 검색한다. 기온에 맞춰 아이들의 옷을 골라 놓는다. 영하로 한참 내려가는 한파의 날씨엔 길고 두꺼운 롱 패딩을, 영상의 포근한 겨울날엔 조금은 가벼운 패딩을 꺼낸다. 아침 기온과 한낮의 일교차가 큰 날엔 오후의 포근함에 옷이 무겁게 느껴질까 잠시 고민을 한다. 하지만 결국 내 손에 들려 있는 건 롱 패딩이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이 신발을 신기 전 움직이는 아이를 붙잡은 내 손은 모터를 단 듯 빨라진다. 내복 상의를 하의 속으로 쏙 집어넣고 외출복을 한 번 더 정돈한다. 손목 사이로 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장갑을 바싹 끌어올린다. 보들보들한 목도리를 목에 살살 둘러 준 후 외투를 입힌다. 지퍼가 턱 끝에 바짝 닿도록 단단히 잠그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마스크까지 착용하면 준비 완료. 눈만 빼꼼히 내놓은 아이들을 보면서도 혹시 추운 곳은 없을지 더 채워줄 부분을 찾는다. 이건 추운 겨울에만 가능한 나만의 사랑 표현법이다.


 빠듯한 살림 안에서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었을 젊은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칼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보란 듯이 부직포처럼 얇은 교복 재킷 하나만 걸치고 뾰로통하게 집을 나서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했던 엄마의 마음은 겨울바람을 가슴으로 맞은 듯 시렸을 것이다. 바람 한 톨 들어갈 틈새 없이 꽁꽁 싸맨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면서도 부족한 느낌에 뭐라도 더 해주고 싶은 엄마가 된 나, 내 마음을 이불 삼아 젊은 엄마의 마음 위에 가만히 덮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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