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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글 Feb 06. 2022

애들아, 밥 먹자!

(feat.내 영혼의 닭곰탕)

 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든 순간은 아이가 아플 때다. 감사하게도 크게 병원 신세를 진 적은 없는 아이들이지만 자잘한 잔병은 수시로 찾아왔다. 한겨울에 태어난 둘째는 이른 봄이 오자마자 엄마의 가슴팍에 매달려 4살 터울 누나의 모든 일정에 함께 나서야 했다. 생후 4개월부터 감기약을 달고 살아야 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감기 증상이 시작되면 그 감기는 온 가족을 통과해야 끝이 났다. 한 차례 감기가 지나가도 또 언제 아플지 모르는 아이들을 살피는 건 이제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잠든 아이의 숨소리만 들어도 불편한 부분을 찾을 수 있었고 그 슬픈 예감이 비켜 간 적은 거의 없었다.

      

 돌이 갓 지난 둘째의 숨이 뜨끈뜨끈했다. 아기들이 돌 전후로 앓는다는 고열 치레는 이미 한 번 지나간 후였다. 얼마 전 누나가 가볍게 앓고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감기가 이번엔 동생의 몸속을 파고 들었나보다. 열을 재니 체온계의 새빨간 조명과 함께 38도가 넘는 숫자가 눈앞에서 깜빡거리고 있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몰아 쉬었다.

 밤새 손수건으로 몸 구석구석 닦아주며 해열제를 2시간마다 교차 복용했지만 열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날이 밝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밤사이 급진행 된 증상으로 호흡이 좋지 않았다. 호흡기 치료와 항생제 처방까지 받았지만 호전은 없었다. 어린 아기라 매일 오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다음 날 오전 병원을 방문하였다. 이제야 정확한 진단명이 나왔다. ‘모세기관지염’이었다. 주로 아기들에게 흔히 찾아오는 질병이고 고열, 숨 가쁨, 기침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고 하였다. 하루 더 지켜보고 나아지지 않으면 입원을 하자고 말씀하셨다. 아이를 둘이나 키웠지만 처음 만난 입원이라는 두 글자 앞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일단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이를 방에 재워 놓고 집안을 다 뒤엎기 시작했다. 장난감용 소독제로 모든 장난감을 닦고 바닥을 쓸고 닦았다. 침대 위 이불을 몽땅 꺼내 새것으로 바꾸고 오후 내내 세탁기를 돌리며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뜨끈한 국물이 생각났다.

      


 냉동실에 자리하고 있던 생닭을 꺼내 우유에 담갔다. 어린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약재는 많지 않아 약재는 생략하고 양파, 파 뿌리, 마늘을 씻어 다듬었다. 우유에 한참 재운 닭을 꺼내 물로 여러 번 씻고 지방과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냈다. 깔끔하게 손질된 닭을 커다란 냄비에 넣고 물을 가득 부었다. 닭을 살짝 삶아 불순물을 없애고 다시 냄비에 물을 채웠다. 육수 재료와 통후추를 털어 넣었다. 닭의 발목이 보일 때까지 푹푹 삶았다. 한참 끓인 후 가스 불을 끄고 육수 재료들과 닭을 건져냈다. 뜨거워진 손을 찬물로 달래가며 뼈와 살을 발라냈다. 마지막으로 감자와 함께 한 번 더 끓이면 끝!



 아이들이 아프기 시작할 때면 늘 해 먹는 ‘닭곰탕’이다. 뽀얀 닭곰탕 위에 갓 지은 하얀 쌀밥을 말아 주었다. 곧 잘 받아 먹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잘 먹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다행히 아이의 열은 그날 밤부터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입원 없이 통원치료로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닭곰탕은 이제 우리 가족의 겨울 보양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두 뺨을 스치는 바람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면 생닭을 사러 나간다. 조금 자란 아이들 덕분에 다양한 약재들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약간의 소금과 총총 썬 파, 잘 익은 김치 하나면 네 식구의 뱃속이 든든해진다.


 식구(食口)란 무엇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식구’란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밥’은 하나의 안부가 될 정도로 중요한 의미인데, 매일 ’밥’을 함께 먹는 사이인 식구들에게 내어준 마음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표현할 수 없는 이 마음을 뜨끈한 닭곰탕 한 그릇에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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