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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글 Jul 24. 2023

안녕, 잘 지냈어? 오늘은 날이 참 좋다.

#4 누군가의 안부가 묻고 싶어질 때.

 몇 년간 책도 읽지 않던 내가 겁도 없이 신청한 독서 모임 운영자를 위한 강의는 나처럼 독서 경험이 없는 사람에겐 독서 모임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첫 강의 후 마음은 거칠게 술렁였다. 다시 만난 책의 세계로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나에겐 두 아이가 있었으니, 그때 아이들은 3살, 7살이었다.   

  

 보통 책 모임은 오전 시간에 주로 시작하는데, 이르면 10시, 혹은 10시 30분 즈음 모임이 시작된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 성북구지만 내가 참여하는 모임은 연희동, 일산, 최근엔 용산까지 최소 40분~1시간 정도의 이동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9시 전엔 아이들을 모두 어린이집에 들여보내야 늦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평소 아이들의 등원 시간은 9시 40분, 40분 정도 일찍 나서는 일이 뭐 어렵나? 생각했지만 막상 모임 날이 되면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종종거려야 했다.     


 그날도 오전 10시 30분까지 모임 장소에 도착해야 하는 날이었다. ‘빨리 먹어, 오늘은 어린이집에 빨리 가야 해, 응? 빨리, 빨리,’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짜증 반, 호통 반 아이들을 억지로 어린이집에 밀어 넣고 어린이집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에 앉았다. ‘내가 뭘 하겠다고 이러는 거지.. 나에겐 이 정도 외출도 어려운 건가..’ 영등포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결국 울고 말았다.     


 지각은 하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달려갔지만 이미 수업엔 늦은 상황이었다. 나에게 어떤 기색을 눈치 채신 건지, 아님 원래 그날 하려던 수업 내용 중 하나였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자리에 앉자 선생님께서는 그림책 하나를 꺼내 읽어주셨다. 첫 장을 듣자마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창 손이 많이 가던 두 아이와 남편에게 내 몸과 마음을 모두 쏟아내느라 ‘나’란 사람은 안중에도 없던 때였다. 주변인들조차 그랬다. 그들에게 나란 사람은 그림자처럼 가족들의 뒤에 있었다. 나의 안부를 묻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안녕’, ‘잘 지냈어?’, ‘요즘은 어때?’, ‘오늘은 날이 참 좋다.’로 시작하는 다정한 그림책의 제목은 바로 구지선 작가님의 <여우책>이다. 모임 선생님의 다정한 목소리 덕분이었을까, 아님 그래도 모임을 포기하지 않고 울면서라도 달려온 내가 애달프면서도 다행스러워서 그랬을까. 그날의 여운으로 <여우책>은 여전히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수시로 펼쳐보는 그림책이 되었다. 독서 모임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한 것도 바로 그날이었다.      


<여우책, 글 그림 구자선, VCR>

 지금이야 선향, 미루 글방, 그리고 윤슬까지 정기적인 모임에 참여하고 있지만 처음 모임에 가기 시작하던 당시엔 주로 비정기적인 원데이 모임에 많이 참여했었다. 주로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만 읽어오던 내가 <여우책>을 만난 후 그림책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책이라는 말을 저절로 실감하게 된 것,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구매하거나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를 위한 그림책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그림책 모임에 꼭 한 번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던 찰나, 마침 그림책 모임이 열린다는 공지를 보게 되었다.


 이 모임은 이화정 작가님과 남기숙 작가님의 그림책 콜라보 모임으로 토요일 오전,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모임이었다. 홀로 주말 외출을 나가는 일은 거의 없던 시절, 아침부터 세수도 하고, 얼굴에 그림도 그리며 나갈 준비를 하는 나에게 ‘엄마, 쓰레기 버리러 가는 거야?’라고 묻던 아이.. 아이들 입장에선 엄마가 혼자 외출을 하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웃픈 시절이었다. ‘아니야, 엄마 그림책 보러 가!’ 하며 설렘 반, 긴장 반으로 길을 나섰다.      


 20명 정도의 참가자 분들이 계셨다. 그날도 우리는 모두 함께 <여우책>을 읽었다. 두 작가님의 그림책 이야기를 시작으로 모든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그림책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눠주셨다. 나에겐 작가님을 빼곤 모두가 초면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울고 웃으며 그분들의 이야기에 깊게 감응했다. 모두 그림책이 곁에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모임이 끝날 때쯤, 아이유(IU)의 Love Poem이라는 노래가 잔잔히 흘러나왔다. 모임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 포옹을 하자는 제안을 하셨다. 다른 분들은 서로 알음알음 아는 관계인 듯 보였지만 나는 아니었다. 아이들을 빼곤 누군가를 안아본 기억이 까마득하던 시절, 만난 지 2시간 정도 된 누군가를 안아보라는 제안은 꽤 당황스러웠다. 난감한 기색으로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가까운 자리에 앉아 계셨던 누군가(누구셨을까! 아 기억해내고 싶다.!)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다. 서로의 어깨와 등을 토닥거렸다. 등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다정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듯한 낯선 포옹이 꽤 따뜻하고 좋았다.

      

 여전히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한 날엔 <여우책>과 그날의 낯선 포옹이 생각난다. 섣불리 뱉어낸 말이 화살이 되어 돌아올까 싶어 조심히 입을 닫게 되는 요즘 같은 날엔 더더욱 간절하다.


 주말 내내 어두웠던 하늘에 옅은 해가 떴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거실엔 간간히 바람이 분다. ‘오늘은 날이 참 좋은데’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의 얼굴이 마음속에 둥둥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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