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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글 Oct 16. 2023

우리는 다시 '우리'가 될 수 있을까.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을 보고.

 체육 시간이면 선생님께선 늘 남자아이들에겐 ‘축구’를, 여자 아이들에겐 ‘피구’를 시켰다. 수돗가 옆 커다란 물 조리개에 물을 가득 담아 직사각형 모양의 큰 네모를 그린 후 정확히 반을 나눠 가운데 선을 그었다. 보통은 출석 번호로 짝, 홀을 갈라 팀을 나눴다. 선을 가운데 두고 양쪽 팀은 마주 섰다. 출석 번호 1번과 2번이 가위, 바위, 보를 했고 이긴 팀에게 선공의 기회가 주어졌다. 선공의 기회를 얻은 팀에서 피구를 잘하는 아이가 먼저 공을 힘껏 던졌다. 꺅꺅 소리 지르며 상대 팀 아이들이 이리저리 몸을 피했다. 게임 초반에는 공을 던지면 던지는 족족 누군가는 맞기 마련, 용기 있는 친구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 않고 덥석 잡고 공격의 기회를 만들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최대한 덜 아픈 부위인 엉덩이나 등을 보이며 피하다 결국 공에 맞게 된다. 공에 맞거나, 경기 도중 선을 밟은 사람은 말 그대로 ‘아웃’, 상자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는 피구가 싫었다. 이리저리 공을 피하다 어쩌다 내 손에 공이 들어온다 해도 달갑지 않았다. 누군가를 공으로 맞춰야 하는 일도, 내가 맞는 일도 싫었다. 금을 밟고 강제로 퇴장당하는 일은 경기 중 겪을 수 있는 일 중 최악이었고.          

 

 ‘안 내면 진다! 가위, 바위 보!’ 하는 경쾌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검은 화면 뒤로 들려왔다. 점차 화면이 밝아지자 제일 먼저 등장한 4학년 여자 아이 '선', 어쩐지 선이의 표정이 편치 않아 보인다. 양 팀의 주장이 각자 본인의 편이 되었으면 하는 친구의 이름을 호명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선이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원치 않지만 선이와 한 편이 된 주장은 경기 중 선이가 금을 밟았다는 이야기에 선이의 등을 떠밀어 선이를 상자 밖으로 내보냈다. 선이는 금을 밟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의 첫 장면이다.          


 첫 장면만 봐도 예상할 수 있듯 선이는 반 아이들의 무리에 속하지 못하는 일명 '외톨이'같은 존재였다. 여름 방학식 날, 우연히 전학생인 지아를 만나게 된다.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된 선과 지아, 하지만 개학과 동시에 선을 따돌리던 보라 일당(!)이 지아까지 본인들의 편으로 만들게 되며 둘의 사이는 틀어지게 된다. 어떻게든 다시 지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지만 선에겐 딱히 방법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지아와 언성을 높이다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지아의 비밀까지 폭로하게 되었으니 한 번 틀어진 관계의 회복은 점점 멀어지는 듯 보였다.

 

 영화의 러닝 타임은 94분, 내 딸과 같은 나이 11살, 이제 갓 저학년의 티를 벗고 고학년이 된 아이들의 관계성에 94분 내내 깊은 몰입감을 느꼈던 이유는 아마 세 아이가 겪는 감정들을 나도 어린 시절부터 비슷하게 겪어 왔으며, 30대 후반인 지금까지도 여러 관계 안에서 종종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아역 배우들의 연기는 또 얼마나 현실적이던지! 어색하면서도 풋풋한 모습이 그때의 우리들을 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며칠 전, 4학년 첫째 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엄마 근데 오늘 00이랑, 00이, 그리고 00이가 나만 빼고 놀아.'


 헉, 며칠 전까지도 우리 집을 오가고 동네 플리마켓 행사에서 함께 물건도 팔던 친구들이다. 바로 답장을 해줘야 하는데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원래도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떠는 성격이 아닌 아이에게 친구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정황을 캐묻자니 상처를 긁어내는 느낌이고, 쿨하게 괜찮아! 그냥 다른 친구들이랑 놀아!라고 말 하기엔 우리 반 여학생 수는 8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엄마인 내가 이런 관계에 전혀 쿨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없는 소리를 담담하게 할 수도 없었다.


 영화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여학생(비단 '여'자들의 일은 아니겠지만, 일단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여학생의 우정은 남학생과는 다른 결인 것 같다.)들의 우정을 '유사연애'라 표현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경우, 세 친구 중에 한 명은 단짝친구라고 생각할 만큼 깊은 마음을 줬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과만 해야 하는 놀이가 있다며 아이 앞에서 등을 돌렸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서러움이 몰려왔을 터. 특별히 크게 싸우거나 갈등이 생긴 눈치는 아니니 하루만 지나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서로를 마주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섭섭한 감정을 주고받는 일이 앞으로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누구 한 사람에게 원망을 쏟아내면 좋으련만 아마 그럴 상황도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선, 보라, 지아의 위치를 오가며 살고 있으니 누구 한 사람 탓을 할 수도 없다.


 관계의 씁쓸함을 알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마음 한쪽이 서늘해진다. 깊고 진한 사이일수록 관계의 이면에서 오는 상처가 크다는 것, 그건 학습이 되는 부분도 아니고 엄마도 도움을 줄 수 없고 스스로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걸 아이는 어떤 경험을 통해 알게 될까. 내가 속한 관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기, 혹시나 관계 밖으로 잠시 밀려나는 순간이 있더라도 덤덤해지기, 피구 경기처럼 먼저 금을 밟고 뒤로 물러서도 된다고, 어떤 순간엔 상자 밖으로 나오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최악의 순간에도 기댈 곳은 있을 거라고(아이에겐 가족, 혹은 그림이 되겠지) 철저하게 혼자인 순간은 없음에 안도하며 살아가자고..이걸 어찌 말로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그저 곁에서 지켜볼 수밖에.




*이 글은 제가 참여하고 있는 #계절글방 #미루글방에서 쓴 글입니다.

*이 글의 제목은 영화 <우리들>의 네이버 영화 소개 글에서 발췌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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