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했다. 책 좀 읽어야 하는데, 글도 써야 하는데, 밖으로 나가 걷고도 싶고. 머릿속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꼽으면서 좀처럼 몸을 일으키지 않는 내가 불편했다. 8월은 아이들의 방학으로 일상이 달라져 그랬다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9월엔 그럴만한 이유도 없었다. 9월 초, 잠시 몸이 아팠고 좀처럼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았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사실 그 정도는 이유가 되지 않았다.
“요즘 왜 아무것도 안 써?”
나의 글 선생님께서 넌지시 묻는다. 한 주제로 10개의 이야기를 써 보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약속드렸던 10주가 지난 지도 오래. 이번엔 3달 전에 끝난 이사 핑계를 댄다.
“아니, 그게 말이에요? 이사 후 아이들 방을 만들어 주고 식탁도 원상태로 돌리고 나니 제 자리가 없어졌어요. 노트북이 펼쳐져 있지 않으니 글도 안 쓰게 되더라고요..? 어서 작은 테이블이라도 사야 할 텐데...”
이런 대답을 하고 나며 어딘지 기운이 빠지는 건 내 쪽이다. 정해진 내 자리는 없어도 집 어딘가에 노트북을 펼칠 자리는 여기저기 있었고 하다못해 집에서 300미터만 내려가도 당장 자리 잡고 2시간 정도는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작은 동네 카페가 세 곳이나 있었다. 하다못해 남편까지 작업할 자리가 없다며 투덜거리기만 하는 내 모습이 못마땅한지 작은 테이블이라도 사서 놓으라고 성화인데 이건 이래서 싫고, 이런 건 자리만 차지할 게 뻔하고, 이건 베란다 창문을 가려서 안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리를 마련하지 않은 건 내 의지임이 분명하니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를 딱 하나로 꼽을 순 없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읽고 쓰는 일 마저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지금의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 또한 읽고 쓰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외부의 시선이나 기준과 상관없이 나를 위한 ‘작업’이라 명명한 유일한 행위가 읽고 쓰는 것이라서. 하지만 두 번째 이유 또한 중요했다. 바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읽고 쓴다는 것.
첫 아이를 낳은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듯 아이를 낳은 후의 나의 세계도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와의 활동 반경에 따라 주변인들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당시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관계는 당연 주변 엄마들이었다. 하지만 가까워진 사이만큼 마음을 힘들게 한 것 또한 엄마들과의 관계였다.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머지 각자의 경제 상황이라던가, 남편의 직업 정도, 심지어는 아이의 발달 상태까지 재어가며 상대를 판단하는 사람도 있었고, 늘 ‘우리’를 강조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등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한 번은 이사를 앞둔 어수선한 우리 집에서 현금을 훔쳐 간 사람도 있었으니, 엄마들 사이에서 겪을만한 일들은 다 겪은 5년 여의 시간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엄마 모임’을 줄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버거운 감정들과 싸우다 스스로 모임을 빠져나왔다. 한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그 후에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은 몇몇 의 사람들과만 내밀한 만남을 가졌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제야 덩그러니 놓여있는 ‘나’라는 사람이 보였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일단 이 동네를 벗어나,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 사이에 ‘책’이 있었으면 싶었다. 그렇게 나는 책모임의 세계로 걸어가게 되었다.
함께 읽고 쓰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리고 계속 곁에 있고 싶어서 읽고 쓴다. 내가 책을 읽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으면 우리 사이에 책과 글이 없다면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장담할 수 없어서 더 열심히 읽고 쓰고 싶었다. 나와 타인 사이에 놓인 책과 글이 우리의 관계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깨닫자 책과 글은 더 놓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돼버렸다.
어느새 이렇게 내 삶 깊숙이 들어온 책과 글을 한동안 놓고 있었으니 내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기댈 곳만 있음 기대어 누워 있기 바빴지만 한편으로는 툭툭 털고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노트북을 열고 싶었다. 쓰고 싶은 글이,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는데 손 끝엔 한 글자도 새어 나오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고마운 일’은 있다. 함께 읽고 쓰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어떻게든 일어나 읽고 쓸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얼마 전엔 평생의 기억으로 꼽을만한 소양고택에서의 북토크 겸 여행도 다녀왔고, 책모임 선향 선생님들과의 첫 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3개월 만에 만나 더 애틋한 윤슬이 있고, 이렇게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나와 글을 쓰게 만드는 가을 글방 식구들도 내 곁에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남몰래 2023 ‘처음 가을’이라 칭했던 9월 1일, 기온은 높았지만 가을이라 우기고 싶었던 날. 소양 고택의 ‘두베 카페’에서 프라이빗 시 모임이 진행되던 그날, 우리 앞엔 각각 다른 수형의 나무가 그려진 엽서가 놓여 있었다. 각자 원하는 엽서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엽서의 뒷 면엔 한 편의 시가 적혀 있었다. 시를 읽자마자 코 끝이 매워졌다. 주변을 살펴보니 모두 그런 눈치였다. ‘어머어머.. 이거 완전 난데..’하며 옆 자리에 앉은 성은 님이 엽서를 보여주었다. 김사인 시인의 ‘조용한 일’, 나의 엽서에도 같은 시가 적혀 있었다.
아주 특별한 시모임에서 받은 엽서 뒤편.
조용한 일 /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한동안 가족이 없는 시간엔 집안일을 하고 바로 누워 지냈다. 눕지 않더라도 소파에 기대 한참 동안 낮잠을 잤다. 깊은 잠에 빠졌다 간신히 깨어나면 몽롱한 정신으로 오후 시간을 보냈다. 무소득자인 내가 누리기엔 커피 한 잔 값인 4500원도 사치처럼 느껴져 카페에 가는 횟수부터 줄였지만 이번주부턴 다시 마음을 바꿨다. 창 밖의 가을을 놓치지 않기로. 다시 일어나 오늘을 쓰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평일 점심시간이 지나 한적해진 카페의 통창 앞에 자리를 잡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을 보내자던 소양고택에서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오늘을 ‘처음 가을’이라고 정해 보면 어떨까. 나의 아름다운 가을은 이제 시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