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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er Jan 21. 2022

어른이란 존재 (2부)

내가 만나본, 내가 배우고 싶은 어른들

내가 만나본, 또 내가 배우고 싶은 '어른'이란 무엇일까? 한편으로는 굉장히 의미심장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스스로 되뇌고 또 되뇔 수 있는 그런 질문이다. 가끔씩은 집 밖의 풍경을 감상하거나 혼자서 산책을 할 때 이러한 생각에 잠기곤 한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그동안 달려오면서 발을 삐끗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거나, 앞으로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는 것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 또 있을까?


아마 1부의 글이 지금 읽고 있는 글보다는 많이 서툴 것이다. 구분선도 없고, 문법도 틀리고, 문단 간격도 엉성하고... 하지만 첫 글은 되도록이면 꾸밈없이 순박하게, 원고 마감일에 쫓기는 어느 아마추어 작가가 제대로 확인도 해보지 않고 무작정 제출한, 그런 어리숙하고 완숙이 덜 된 상태로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기능을 익히고 다듬으며 더욱 멋진 글을 완성하는 과정,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세상에는 정말 글을 잘 쓰는 분들이 많구나!'라고 감탄하며 배우는 과정... 이번 글에서는 이 부분에 집중하려고 한다.




처음이라 그런가.. 구분선 하나를 고르는 데에도 무려 5분이나 써버렸다. 그만큼 처음은 많이 서툴고 어색한가 보다. 사실 이것도 다른 좋은 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익히게 된 것이다. 모두 저마다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고, 그중에서 내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서 나만의 스타일로 적절히 바꾸기로 했다. 아주 짧은 과정이지만, 나는 지금도 충분히 마음에 든다. 무언가를 배우게 된 순간이다.


그리고 작가들의 글을 세세히 읽어 보았다. 평범한 일상을 글로 담아낸 작가도 있었고, 또 전문 용어를 써가며 나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작가도 있었다. 그중에서는 정말 배우고 싶고, 또 글 쓰는 기술을 훔치고 싶을 정도로 잘 쓰는 작가들이 엄청 많았다. 전국대회도 입상해 보았고, 학창 시절에 교내에서 개최된 글짓기 대회란 대회는 모두 휩쓸어 보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글 쓰는 능력을 인정받아 나름 자신만만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그저 평범한 '작가'였다. 야구로 비유하자면, 마이너리그에서 매번 3할, 30 홈런을 놓치지 않아 자신만만한 상태로 메이저리그로 승격되었다가 2할 언저리에 겨우 머무는 그런 선수가 된 기분이랄까...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았다. 이곳에서 나는 이런 자그마한 존재밖에 되지 않구나 하고 체감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기운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은 점을 많이 배워서 내 글에 녹여내고 싶었다.


내가 만나본, 내가 배우고 싶은 어른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말 좋은 점, 모범적인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어른들이 많았다. 이분들의 좋은 점을 많이 배워서 내 삶에 녹여낸 다음, 그것이 내가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함에 있어 하나의 좋은 재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어른들을 만났다. 몇몇은 마냥 좋은 어른, 몇몇은 다시는 만나고 싶지도 않은 어른, 몇몇은 정말 배우고 싶은 어른이었다. 왜 누구는 좋고, 누구는 만나고 싶지도 않고, 누구는 배울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내가 이렇게 어른들을 구분한 기준은 바로 '고민'이라는 단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나는 고민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라고 하는 것은 정말이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거짓말이다.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아무리 갓난아기라도 '내가 기저귀 갈아달라고 울어버리면 우리 엄마가 달려와서 갈아줄까? 내가 배고파서 울어버리면 우리 엄마가 우유를 먹여 줄까?' 등의 고민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고민이라는 것은 나이가 찰수록 더욱 많아지고 복잡해지는 것 같다. 그때가 좋았지... 하는 게 그 이유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앞서 말한 그런 류의 고민들을 어른에게 말했을 때, 어떻게 잘 보듬어주고, 어떻게 공감을 해주고, 또 어떤 조언을 하느냐에 따라 '어른'이라고 불릴 수 있는 수많은 척도 중 하나가 되는 것 같다. 아무리 같은 고민이라도 듣는 사람마다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공감하며 잘 들어주겠지만, 또 누군가는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척하면서 그 사람을 깎아내리기도 한다. 참 나쁘다. 하지만 오늘은 이런 어두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얼마 전 이런 경우를 보았다. 어른이 같은 어른을 위로해주는 모습이었다. 나는 아직 겪어보지 않은 세계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어른은 달랐다.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하늘이면 하늘. 자신과 비슷한 유형 안에 속해있는 어른에게 정말 다방면으로 깊게 공감해주고 조언도 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정말 멋있고 본받아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깟 조언 하나 가지고 어른이라고 평가한다고...? 당연히 할 수 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한 형식상의 조언'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의 조언'은 정말 다르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누구나가 할 수 있지만, 후자는 내공도 많이 쌓여야 하고, 또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을 것을 배웠던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언을 받아본 사람, 그리고 그걸 말해준 사람은 말이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는 말에 뼈저리게 공감할 것이다.


아무리 같은 고민이라도 내가 내 또래에게 해주는 조언과 한 어른이 다른 어른에게 해주는 조언은 정말 천지차이였다. 이런 점을 정말 배우고 싶었다. 포용력이랄까... 사실 글이 너무 짧지만, 정말 글로는 모두 담아낼 수 없는 그런 감동을 선사해준 그런 어른이었다. 그분은 내 인생의 두 번째 어른이었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바빠지고, 더욱 힘들어지고, 더욱 지치기 마련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물론 정년퇴직을 하고 난 후에는 더욱 바빠지는 일은 조금 사그라들겠지만, 한창 돈 벌 나이에는 한창 바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걸어왔던 길을 어떤 사람이 막 걷기 시작했을 때, 웬만해서는 진심 어린 조언보다는 '뭐 저런 것 가지고...'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어른들도 있었다. 분명 본인 일이 더욱 바쁠 것이고, 본인이 더욱 힘들기 마련인데,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제 철없고 나이 어린 사람이 막 걷고 있을 때 하나의 이정표를 알려주는 것이다. 사람이 처음 걷는, 그것도 험한 길을 걸을 때면 힘들고 외로워서 지쳐 나가떨어지기 마련인데, 그런 상황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보인다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 반가운 일일까?


내게는 그런 '이정표'를 제시해 준 고마운 어른들이 있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정말 다양하게 일을 할 수 있고, 또 나의 숨겨진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그런 길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이 걷히는 느낌이었고,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그런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인생을 정말 넓게 보고 살아라는 말은 이런 말인 것 같다. 자신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이제 막 겪으려는 사람이 겪지 않기를 바라며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준 어른들. 배우고 싶었다. 내 인생의 세 번째, 네 번째 어른이었다.




이전 글에서 말했었다. 나는 후임도 이끌었고, 동기도 이끌었고, 후배도 이끌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내가 배우고 싶은 어른들에 비해서는 정말 많이 부족하다. 이분들의 좋은 점을 본받아 향후 그런 위치에 있을 때, 이제 막 걸어가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주고 싶다. 내가 걸어왔던 길은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독특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아가 내 인생의 어른들에게 배웠던 '포용력'이라는 가치도 배우고 싶다. 내 작가명을 'Pier'로 설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등대는 길을 잃은 배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이정표를 제시해 주지만, 부두는 이정표를 따라온 배들에게 수고했다며, 잠시 쉬어라는 하나의 안식처와도 같기 때문이다. 내 부족한 글을 읽을 많은 독자들에게 하나의 안식처를 제공해 주고 싶고,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가치를 깨닫게 해 준 어른들에게 감사하며, 오늘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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