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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카 Jun 21. 2022

주워 담지 못할 거면 흘리지 말라

#영화같은 에세이 #브로커(2022)

'아시아인 최초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내가 아주 어릴 때, 칸 영화제에 우리나라 영화가 초청받거나 후보에 올랐다는 이유로 감독과 배우들이 레드카펫에서 사진을 찍히는 장면이 뉴스나 연예 프로그램에 나올 때면, 영화제가 뭔지도 제대로 몰랐던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상도 못 받을 거 뭐하러 가냐고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내뱉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옆사람들은 '초청받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럼 나는 그렇구나, 하고 끄덕거리며 수긍하기는커녕 '지들이 뭔데'라고 대답했다. 그때 내가 알던 외국영화라고는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스파이더맨 시리즈(토비 맥과이어)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몇 년 전부터는 한국 콘텐츠가 국제 시상식에서 수상하는 것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을 정도로 심심찮게 일어난다. 윤여정 배우의 말처럼 '한국에는 언제나 좋은 영화, 콘텐츠가 있었다. 단지 세계가 갑자기 우리에게 주목할 뿐이다.'라는 의견에 동감하나, 그럼에도 칸의 주연상 수상은 충분히 기념하고 축하할 만하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관에 입장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일본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를 알기 전부터 꽤 여러 번 들어보았다. 일본의 잔잔한 감성에 고레에다 특유의 공간 연출이 더해진 그의 영화는 대체로 완성도가 높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다루는데, 서로 다른 사람들, 또는 화목하지 못한 어느 가정이 진정한 가족이 되는 구조를 자주 사용하며 가족의 정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브로커>도 그러한 맥락에서 전형적인 고레에다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그 완성도에 조금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일본 거장 감독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이 영화가 문제인 걸까. 영화를 한창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어려운 영화들을 보면 당최 평론가들이 이걸 왜 명작이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자기혐오에 시달리던 지난날의 어떤 순간이 빠르게 스쳐갔다. 브로커는 묘하게 이상하고 애매한 영화였다. 연기도 연기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영화의 전개와,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 이 글은 영화 <브로커>를 관람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있습니다.


귀여운 우성이는 잘못이 없다, <브로커>, 2022


비가 내리는 밤, 부산의 한 교회 베이비 박스 앞에 어떤 여자가 아기를 버려놓고 간다. 상현(송강호)과 교회 직원으로 일하는 동수(강동원)는 그 아기를 빼돌려 그들의 집에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선 갑자기 팔아넘길 준비를 한다. 이들은 사실 정식으로 아이를 입양할 수 없는 이들에게 아기를 파는 브로커들이다. 아무도 모르게 아기를 데리고 떠나려던 상현과 동수는 그들 앞에 나타난 버려진 아기의 엄마 소영(이지은)이 찾아오자, 아기를 팔아넘기는 것에 대한 수익금으로 소영을 회유하고, 소영은 이 브로커 팀에 합류하기로 한다. 아기를 버렸다가 다시 찾아온 것도, 아기를 팔겠다는데 막기는커녕 이에 동조하는 것부터가 머리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엄마가 자기 자식이 물건처럼 거래되는 것에 동조한 셈이다. <브로커>는 이렇게 모인 세 사람, 거기에 동수가 자란 보육원에 들렸다가(왜 들렸는지도 모른다) 제멋대로 합류한 보육원생 '해진'까지 총 네 사람이 아이를 '팔기 위한' 여정을 그린 영화다. 그리고 저기에 추가로 이들을 몰래 추격하며 인신매매 현장을 잡으려는 경찰 수진(배두나)과 이형사(이주영)가 영화의 주요 인물이다.


영화를 보며 처음으로 의아하다고 느낀 것은 전개였다. 브로커 둘과 소영은 처음부터 부딪힌다. 아기를 팔려는 브로커와 이에 동조하는 동시에 분노하는 친모의 갈등이란 생경하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알 수 없는 유대가 생긴다. 그 지점은 명확하나, 너무 명확하기에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딱히 그 유대에 참고할만한 인물 간의 '전사(前史)'를 알려주지도 않는다. 범죄를 위한 여정에서, 단 한 번의 갈등에서 불우한 성장배경을 서로 공유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전우애가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것은 관객 입장에서는 실로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두 번째는 대사였는데, 드문드문 이긴 하나 보는 도중 마치 더빙영화 또는 번역이 완료되지 않은 책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인물들의 대사에는 한국어 특유의 말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본 감독의 각본에서 나온, 가공되지 않은 문어체 대사는 한국인으로서 듣기에 다소 거북했다. 듣는 것이 불편했기에 집중도도 떨어졌고, 다 보고 나서는 차라리 배우들이 일본어나 다른 언어로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자막으로 보면 오히려 덜 어색하고 극에 더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극악의 대사를 그나마 완벽히 '체화'한 배우는 송강호뿐이었다. 역시 대배우.




스토리에 대해 언급하자면, 우선  영화는 기본적으로 범죄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캐릭터의 사정을 떠나 아동 인신매매 범죄를 2시간에 걸쳐 시도하는 영화인 것이다. 영화를 보기  그런 범죄자들을 따뜻하게 그려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우려에 걸맞게, 억지로 따뜻하게 그려낸 감이 없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형사들을 비롯한   모든 주변인과 악인들은 주인공 무리를 따뜻하게 보이게 만들려는 장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형사 수진은 상현과 동수를 현행범으로 잡겠다는 일념 하나 때문에 소영이 우성이를 버리는 것부터 이후 모든 과정을 관망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우성이가 팔리길 원한 사람은 다름 아닌 수진이었다. <신세계>  과장과 결은 다르지만 비슷하다.   범죄를 잡겠다는 이유로  과정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또 중간에 나오는 우성 부 살인 사건과 우성 부의 부인, 그리고 조폭들은 하나의 캐릭터가 아니라 주인공을 설명하기 위한 일개 장치로 소모되고 말았다. 원래는 그들이 등장함으로써 주인공과 경찰, 의뢰를 받은 조폭의 삼파전이 팽팽하게 진행될 것을 잠시나마 기대했지만, 디즈니 플러스에서 스핀오프 드라마라도 제작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그저 스쳐갈 뿐 영화의 결정적인 순간조차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조폭은 마무리가 잘 되지 않았는지 갑자기 죽임을 당한다. 오히려 예상을 빗나가니 신선하기도 했다.




나는 영화에 있어서는 호불호가 확실한 편이다. 그리고 재미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고 확실히 말한다. 그리고 재미가 없더라도 나에게 충분한 생각의 씨앗을 심어준다면 결코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다. <브로커>는 재미없는 영화라기보다는, 너무나도 아쉬운 영화였다. 충분히 재미있게 만들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블과 쿠엔틴 타란티노를 좋아하는 내게 고레에다의 첫 한국영화는 싱거운 일본 음식과도 같았다. 김치를 찾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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