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내 삶은 계절과 똑 닮은 옷을 입고 있었다. 춥고 또 추웠다. 조급함으로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의 대가는 혹독했다. 4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하루가 한 달처럼, 한 달이 일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살아온 게 아니라 버텨온 기분이다.
무임금 가사노동자로 산 지 11개월 15일 만에 다시 임금 노동자가 되어 왕복 3시간이 넘는 출퇴근길을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파주에서 서울을 오갔다. 출근길 길고 긴 지하철 환승 통로를 걷고, 끝이 보이지 않는 4번 출구 계단을 오르며 머릿속으로 줄곧 재생과 되감기를 반복하며 한 생각은 오직 하나다.
‘내일은 모르겠고, 일단 오늘 하루만 버티자.’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매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처음 해 보는 업무들이 힘들고 버거운 건 사실이었다. 마침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에 아무런 인수인계도 받지 못하고 회계 결산과 내년도 예산을 세워야 했다. 그 외에도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운 여러 과제가 빚쟁이처럼 매일 나를 들들 볶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의 해결되지 않는 괴로움의 본질은 아니었다. 그런 건 시간이 지나면 차차 해결될 일들이었다. 주어진 임무들을 힘겹게 하나하나 클리어해 나갈 때 괴롭지만 희열도 느꼈다. 그러니까 나를 4개월 15일 만에, 다시 백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한 건 과중한 업무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사람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경험과 지식,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한 기관의 총책임자 역할을 하도록 두는 구조와 제도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노력해서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번의 상식 밖의 일들을 경험했다. 변화를 기대하며 버티는 건 나의 정신건강에 무척 해롭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안녕하지 못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안녕을 위해 일할 수 있을까. 나의 복지를 주장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복지를 추구할 수 있을까.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여러 날 지속됐다.
급하고 중요한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사직서를 냈다. 더는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순조롭게 퇴사가 이루어져,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러면서도 내 안에 질문은 남았다. 과연 지난 4개월 보름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까. 그저 잘못 그린 그림처럼 찢어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야 하는 걸까. 깨끗이 버리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면 그걸로 끝나는 걸까. 마음이 무거워 틈만 나면 집 앞 도서관에 달려가 아무 책이나 꺼내 읽었다. 위로든 조언이든 격려든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 문장을 만났다.
'사계절이 뚜렷한 땅은 한순간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 ⌜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
미술관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 멈춰서 오래 머무르는 것처럼, 나는 이 문장 앞에 오래 머물렀다. 무거웠던 마음이 서서히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을 활짝 열고 환기하는 것처럼 마음이 시원해졌다. 실은 최근 몇 년 동안의 퇴사와 이직의 경험들이 모두 내 삶의 오점 같았다. 실패와 잘못된 선택으로만 여겨졌다. 그래서 말하기 싫었다. 글로 쓰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으며 깨달았다. 마음에 썩 들지 않아도 내 인생이었다는 걸. 후회와 방황은 있었지만, 분명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게 있다는 걸.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그저 자연스러운 변화가 내 삶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한 변화는 때가 되면 또 찾아올 것이라는 걸. 계절이 순환하는 것처럼 말이다.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은 반드시 온다. 다시 뜨거운 여름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니 겨울을 두려워하지 말자. 추운 날이 있으면 더운 날도 있고, 완벽하다 싶게 포근하고 선선한 날들도 있다. 그러니 사계절이 뚜렷한 땅처럼 살자. 혹독한 추위 속에서 묵묵히 새싹을 준비하는 겨울나무처럼, 봄의 화사한 꽃들처럼,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일렁이는 파도처럼, 가을의 고상한 숲처럼. 한순간도 아름다움을 잃지 말고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