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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도 Jan 21. 2022

헬싱키를 벗어나 서쪽으로 가면

파이미오 요양원(Paimio Sanatorium) 여행기

여행할 때 수도를 벗어나 그 근교든 혹은 멀리 떨어진 어느 지방이든 여행객의 밀도가 작아지는 곳으로 간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보통은 수도가 아닌 지방으로 이동한다 하면, 아주 명확한 목적을 적어도 하나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는 보통 덕질을 할 때, 무언가 깊게 빠져들었을 때 그러는 편인데 영국에서 브리스톨을 갔던 것이 그러했고 2018년, 2019년 여름에는 프랑스에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와 알바 알토(Alvar Aalto) 선생님의 유산을 찾아다녔던 것 또한 그러했다.


2020년을 시작하는 날에도 나는 알토 선생님의 건축물을 향해 핀란드 어느 지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동양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투르쿠(Turku) 행 버스에 몸을 싣고, 나와 규영은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풍경의 고속도로를 타고 있었다.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건지,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내려서는 무사히 갈 수 있을지 계획은 있지만 마치 계획이 없는 사람 같은 불안함을 안고서 우리는 파이미오 요양원(Paimio Sanatorium)으로 향했다.


헬싱키 캄피(Kamppi)에서 투르쿠(Turku)로 향하는 버스 안


투어 예약은 어렵지 않았다. 홈페이지를 확인하고 우리가 헬싱키에 머무르는 기간 중 단 이틀만 투어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문의 메일을 보냈다. 선택지가 많지 않았는데, 그 선택지마저 하루는 보수공사와 병동 청소로 인해 갈 수 없었고, 가능한 날은 새해 첫날 뿐이었다. 게다가 (당연히) 우리가 가려는 날짜에 신청한 사람들이 없어서 6명 그룹 투어의 비용을 둘이서 다 부담해야 할 판이었다. 보통 이럴 때 "뭐 어쩔 수 있나, 가는 게 중요하지."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흔쾌히 가겠다고 답을 보내고 예약금 잔금을 치렀다.


문제는 버스에서 내린 후에 파이미오까지 어떻게 가느냐였다. 그래도 르 코르뷔지에 선생님의 건축물들은 대중교통으로만 갈 수 있거나, 이후에 조금 걸어야 되더라도 걸을 수 있는 거리였는데. 알토 선생님의 건축물은 2019년 여름에 방문했던 메종 루이 까레(Maison Louis Carré)도 그랬지만 꼭 택시를 한 번 불러야지만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운전이라도 좋아했다면 헬싱키에서 차를 빌렸겠지만, 사실 그렇다 해도 만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다른 방법이 있나? 없었다. 할 수 없이 파이미오 측에서 알려준 택시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헬싱키에서 투르쿠 방향으로 가는 파이미오 버스 정류장에 있어요. 파이미오 요양원에 가려고 합니다. 택시를 보내주세요."


요금이 얼마가 나오든, 데려다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두어 번 택시 회사를 재촉한 끝에 차량이 도착했고, 약속한 예약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해외에서, 특히 공항과 도심 간 이동이 아닌 이렇게 지방에서 택시를 탈 때 묘하게 긴장되고 설레는데, 파이미오 요양원으로 가는 길도 예외는 아니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알토 선생님의 건축물 앞에 와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메인 병동의 입구에서부터 그런 첫인상을 받았고, 정문의 창 너머로 보이는 알토 선생님의 사진과 의자, 사이드 테이블을 보니 직원분을 빨리 호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내 우리는 투어 가이드 분과 만나 인사를 나눴고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Standard Tour를 시작했다.


파이미오 요양원의 정문 / 은은하게 천장을 밝히고 있는 조명들이 눈에 띈다


방문객을 반겨주는 홀웨이 체어(Hallway Chair / Armchair 403)와 파이미오 사이드 테이블(Side Table 915/Model 75)을 시선의 왼편에 두고, 정면으로 보이는 층계와 오른편의 접수대의 따뜻한 색감에 푹 빠져있을 때쯤, 색감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노란색으로 채운 계단과 바닥은 이 요양원 환자분들께 꼭 필요했던 햇빛이 창을 너머로 들어왔을 때, 그 빛을 더 발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계단의 답단 높이보다 낮게 설계된 계단은 환자분들이 오르내릴 때 그 부담을 줄여줬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천장의 조명은 모두 빛이 위로 반사되어 은은하게 퍼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환자분들이 조명으로 인해 겪을 수 있는 피로감을 덜어줬을 것이다. 가이드분은 덤덤히 설명하시며 이런 아이디어들이 모두 '심플'하다고 하셨으나, 오랜 고민과 환자 입장에서 생각한 배려심이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설계였다.


파이미오 요양원의 아이코닉한 접수대와 노란색 계단


환자와 병상의 크기가 충분히 고려된 층간의 계단참도, 환자분들이 충분한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큰 창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이 중요했던 만큼 조성된 넓은 테라스도, 그야말로 결핵 환자를 위한 요양원이라는 그 목적에 너무 부합하는 것이었다. 너무 당연하지만 배려와 고민으로 가득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요즘에는 이런 배려와 세심함을 놓치고 있는 건축물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동 청소로 다소 복잡했던 2층 복도를 지나 다이닝 홀로 들어서자, 예상했던 다이닝 홀의 모습이 아닌 청소를 위해 책상과 의자가 홀 한쪽으로 정리된 모습을 마주하게 됐다. 본래의 정리된 모습이 아니어서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오렌지색 옷을 입은 알토 선생님의 체어 11/611(Chair 11/611)을 볼 수 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AALTO DESIGN / MADE IN FINLAND' 스탬프가 찍혀있는 오래된 가구들. 당시에는 이 스탬프가 그저 신기했지만, 지금 봤다면 '이 친구가 빈티지 시장에 나오면 이 스탬프 때문에 가격이 조금은 더 나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같은 색상의 의자를 어디선가 만난다면, 이런 순간들의 기억이 동기가 되어 콜렉팅을 했을 것이다.


다이닝 홀 / AALTO DESIGN MADE IN FINLAND 스탬프가 찍혀있는 CHAIR 11/611


다이닝 홀에 이은 투어 공간은 유독 차분하고 조용해 보이는 오디토리움이었다. 공간의 한편에는 삼각기둥 형태의 쇼케이스 내부에 스몰 파이미오 체어(Small Paimio Chair)로 알려진 암체어 42번과 파이미오를 위해 제작된 테이블 램프(Table Lamp 5267), 그리고 아이노 알토 선생님의 AMA500 펜던트 조명이 전시되어 있었고, 방 내부에는 커버에 씌워진 그랜드 피아노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피아노 옆으로는 큰 통창이, 그 밖으로는 소나무(Pine Tree) 숲이 보여, 언제 이 요양원을 찾더라도 이 공간에서는 푸른 나무를 보며 음악을 듣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해 볼 수 있었다.


오디토리움 내부의 모습 / 원래는 파이미오 체어와 사이드 테이블 915가 배치돼 있었을 것이다


파이미오 요양원 투어 중에는 환자분들을 위한 공간뿐 아니라, 간호사분들이 묵었던 공간에 담긴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바로 자동 환기 시스템이었다. 가이드분께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이야기를 자세히 듣지는 못한 것 같지만, 분명한 건 자동 환기를 위한 방의 숨구멍을 복도에서 함께 확인했다는 것이다. 당시 '아~'하면서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그렇다면 겨울에 추운 게 아닌가?' 갸우뚱했는데, 뒤늦게 설명을 찾아보니 실제로 환자 동은 이 때문에 설계했던 것만큼 따뜻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어서 앞서 언급했던 거대한 테라스에서 병동 바깥으로 멀리 펼쳐져 있는 울창한 숲을 바라보며, 이런 곳에서 미세먼지 없는 공기를 마시며, 햇볕을 쬐며 건강을 회복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언젠가 (지금 글 쓰고 있는 시점이 아닌) 파이미오 요양원의 사진을 찾아보다가 테라스에 데크 체어를 펼쳐 놓고 누워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모두 환자가 아닌 일반인인 것 같아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환자가 꼭 환자복을 입던 시대가 아닌가? 요양원이기 때문에 별도의 환자복은 없었나? 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이제 다시 내려가야 할 시간. 차마 존재할 거라고 상상도 못 했던 파이미오 요양원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 투어를 위해 이동했다.


 


병실 내부는 마치 모닝글로리 공책 맨 첫 페이지에서 볼 법한 눈이 편안한 색으로 구성돼 있었다. 병상도 서랍장도, 서랍장과 세트를 이루는 환자용 사이드 테이블과 창문 앞의 긴 선반도 모두 동일한 톤이었다. 앞서 오디토리움에서 봤던 테이블 램프가 이번에는 병상 머리맡에 수직으로 설치되어 있었고, 사이드 테이블은 환자가 병상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서랍장 쪽으로 결합해 선반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이처럼 파이미오 요양원 초기의 병실은 하나의 가구가 하나의 역할만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후 리노베이션 되어 초기에 비해 간결해지고 모던해졌으나, 이후의 알토 선생님 건축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건 초기 방식의 유산이다. 아이노 알토 선생님의 서랍장도, 알바 알토 선생님이 고안한 '물이 적게 튀는 세면대'도 이후에 알토 하우스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차분해지는 톤의 색감으로 구성된 병실 /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개최되지 못한 1940년 헬싱키 올림픽의 블랭킷도 볼 수 있다 (좌측 하단)


이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파이미오 요양원의 역사가 담겨있는 전시관 같은 공간이었다. 요양원의 운동회 때 사용됐던 깃발부터 상징적인 파이미오 체어와 스몰 파이미오 체어, 아이노 알토 선생님의 초기 버전 스툴, 핑거 조인트(Finger-joint) 방식의 L-leg 스툴(a.k.a war-leg stool), 스툴60 등이 눈으로만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었다. 가이드분께서 해주시는 얘기로는, 한 때 파이미오 체어가 인기가 많이 없어서 헐값에도 거래되고 했었다는데 요즘의 희소성과 가치를 떠올려보자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파이미오 체어가 10유로(?!)에 거래됐던 때가 있다고 설명을 들어서 내 귀를 의심했다. 물론 너무 머나먼 옛날얘기지만..
빈약한 기념품 리스트 (좌) / 투어가 끝난 뒤 홀웨이 체어가 보이는 복도 (우)

기념품이라고는 딱히 살 게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투어는 끝이 났다. 이제 돌아가야 할 일만 남았는데, 투어가 끝나고 나면 요양원 내에 남아있으면 안 되는 건지 바로 문밖으로 안내받고 인사를 했다. 해 질 무렵이었고 매우 추웠는데, 콜택시는 도착까지 무려 30분 넘게 소요됐다. 택시 올 때까지만 안에 있으면 안 되는지 물어볼걸하고 후회했던 기억이 2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다.


돌이켜보면 여행 당시에는 불완전한 지식이 너무 많았다. 아니, 사실 지식이라고 할 것도 없을 정도로 너무 아는 것 없이 목적지에 가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너무 잘 알면서도, 그 시기에 맞춰 겨우겨우 여행과 관광과 관람을 하고, 뒤늦게 더 잘 알아보고 갔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 한다. 건축물에 관한 생각이기도 하고, 알바 & 아이노 알토 선생님의 가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후회 섞인 생각도 드는 반면에, 뭣도 모르면서 찍어둔 사진을 보고 현재의 지식을 하나둘 끼워 맞추는 재미도 쏠쏠하다. 찍어둔 사진을 추억하며 하나하나 보다가, 당시에는 몰랐지만, 현재는 아는 가구나 조명을 사진에서 발견할 때! 이런 사소한 즐거움이 언젠가 다시 그 건축물과 공간으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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