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단편(나세진 작가 N블로그 "쌈토끼의 생각 저장소")
안녕하세요~! 나세진 작가입니다!^^
오늘은 누구나 좋아하는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실 저는 엄청난 커피 매니아입니다. 하루에 커피를 서너 잔씩 벌컥 들이킬 때가 있죠...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몽롱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ㅠ)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 등 커피 제조법은 인터넷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고, 널리 알려져 있어서 패스하겠습니다.
오늘은 커피에 얽힌 역사에 대해서 알려보려 합니다.
커피의 고향이 에티오피아라고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에티오피아를 '이디오피아'란 발음으로 익숙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춘천에 이디오피아 커피란 유명한 카페가 있습니다.
5세기경 에티오피아 북부와 이집트 남부를 지배하던 악숨(Aksum) 왕국이 현재의 예맨 지역에 있는 힘야르(Himyar) 왕국을 침공하면서 커피 나무가 전해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침공은 실패했다고 하네요. 그 뒤 두 왕국은 활발한 교류를 했고, 시간이 흐르며 커피는 예멘의 모카항을 통과하여 중동 전역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모카 커피',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죠? 여기서 '모카'가 예멘의 모카항을 뜻합니다.
커피 문화는 밤샘 기도가 필요한 이슬람교와 함께 퍼져 갔습니다. 따라서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 역시 이슬람 문화권에서 탄생했습니다. 강성했던 오스만 제국은 커피의 가치를 깨닫고 예멘 외의 지역에서 커피가 재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씨앗을 몰래 인도로 빼냈다고 합니다.) 1610년 무렵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고, 가장 인기 있는 음료는 단연 커피였다고 합니다.
커피하우스(Coffee House)? 지금의 카페처럼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는 곳이라 짐작합니다. 1600년대 초에 처음으로 영국에 커피가 들어왔고, 1652년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런던에서 문을 열었습니다.(옥스퍼드라는 기록도 있다고 하네요.) 시작은 카페라기보다는 커피 노점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커피의 마법같은 효능이 알려지며 파스카 로지(Pasqua Rosee)는 커피하우스 사업을 키워 나갔으며, 그 뒤 런던에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중요한 건 커피하우스에는 정해진 자리도, 계급에 따른 차별도 없었다는 겁니다.(여성은 제외하고...ㅠ)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죠. 상인, 정치인, 로비스트, 지식인, 과학자, 언론인, 학자, 시인, 평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였죠. 그야말로 자유의 공간이었습니다.
너무나 자유로운 이야기들이 오간 탓일까요? 영국 국왕 찰스 2세(1660-1685)는 런던의 커피하우스에 스파이를 심어두고, 1675년에는 폐쇄령을 선포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많은 정치인들과 커피하우스 운영자의 반발에 부딪혀 폐쇄령은 통과되지 못했다고 하네요.
과학 분야에서도 커피하우스는 일종의 대학의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카페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미래를 준비하고, 공부를 합니다. 물론 휴식도 취하며 관계를 쌓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명사들도 그 당시 커피하우스에 단골로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 과학자 아이작 뉴턴 같은 사람들 말이죠. 아이작 뉴턴이 1687년 《프린키피아》를 출간했는데, 이 위대한 저작이 탄생한 데는 사과의 낙하보다 케임브리지 커피하우스의 공이 더 컸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커피 소비량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카페에서 한국인이 전지구적 문제(지구 온난화, 바다 쓰레기, 우주 쓰레기 등)를 해결할 실마리를 커피하우스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며 찾아낸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요. 이런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며 참신한 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이 자리에 차분하게 앉아 글쓰기 연습을 하게 하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한 수업일 때는 모둠별로 서로 이야기를 시키며, (옆 반에 피해가 없을 정도로) 떠드는 것을 허용해 줍니다.
프랑스 파리에는 프로코프(Cafe Procope)란 카페가 1686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 카페는 계몽주의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루소, 디드로, 볼테르 등이 단골로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백과전서》를 이 카페에서 볼테르가 처음 구상했다고 합니다.
Le Procope
13 Rue de l'Ancienne Comédie, 75006 Paris, 프랑스
(검색해 보니 지금도 있네요. 다음에 프랑스에 가면 꼭 들러야겠습니다.)
그리고 파리의 또다른 유명한 커피하우스 카페 드 푸아(Cafe de Foy)는 프랑스혁명의 진원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1789년 7월, 카미유 데물랭이 경찰의 감시 속에서도 눈을 빛내며 이 카페의 탁자에 올라가서 권총을 빼들고 외쳤다고 합니다. 레미제라블 뮤지컬에서 앙졸라가 멋지게 총을 치켜드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Aux armes, citoyens!)
- 참고문헌: 내 안의 바리스타를 위한 커피 상식사전 -
저는 사람들이 분위기 전환 겸 카페에 와서 공부를 하거나 책 읽는 걸 나쁘게 보지는 않습니다. 예전부터 카페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지식의 진보를 이끌었던 곳이었습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인간이 만든 어떠한 물건이나 기구는 취지와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 사례가 많습니다. 저 역시 숟가락과 계란판을 교실놀이체육의 도구로 이용할 줄은 몰랐죠.
(다만, 공부하는 사람이 바로 옆 테이블에서 수다 떠는 사람들에게 눈치 주는 행동은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과하게 시끄러운 수다가 아니라면요.)
다음에는 커피 한 잔에 얽힌 가슴 아픈 이야기에 대해서 적어볼까 합니다. 이상 나세진 작가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트리스탄 스티븐슨, 내 안의 바리스타를 위한 커피 상식사전(2016), 길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