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Ⅰ. 작은 불꽃이 켜지던 순간
차를 아끼는 차주들은 많다. 특히 차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면 그 마음은 더 이해하기 쉽다. 다만 나는 한때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차는 어디까지나 이동 수단일 뿐인데, 왜 저리도 애지중지 가꿀까.
셀프 세차장에서 거품을 뿌리고, 차에 묻은 때가 불기를 기다리며 기다리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랬다. 그들은 차를 타는 게 아니라 ‘모시는’ 것 같았다.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차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차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으로는 꽤 냉정한 단어를 붙였다. 차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라고. 그런데 차를 직접 구입하고 난 뒤, 나 역시 셀프 세차장의 사람들과 함께 서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예전의 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록 중고차였지만, 매끄럽게 도장(塗裝)된 면에 흠집이 나는 게 싫었다. 차는 생명 없는 기계다. 인격도 없다. 더욱 매정하게 말해서 쇳덩어리일 뿐이다. 이 모든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문제를 해결할 때 효율성과 경제성을 기준으로 머리를 굴린다. 그런 나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기계식 자동 세차장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선택이 꺼려졌다. 정답은 없었지만, 마음 가는 쪽으로 따르기로 했다.
필요한 세차용품을 사고, 인근 세차장의 세차 전용 카드까지 만들었다. 손 세차는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먼저 고압수로 먼지를 씻어냈다. 여기서 옆자리의 어떤 분은, 제한 시간 안에 씻어내기 위해 고압 호스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효율성과 경제성을 고려한 합리적 행동이었다. 옆 사람이 행동에 내 마음도 조급해지려다가, 조금만 분주함을 덜어내 보자 다짐했다. 어차피 시간의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뒤이어 거품을 올려서 때를 불린 뒤, 기다려야 한다. 기다렸다가 다시 씻어내리고, 손수 카샴푸를 미트에 녹여 차를 닦았다. 이 과정이 끝나고 물기를 제거했다. 과정 하나하나가 흠집과의 싸움이다. 조금만 성급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자국이 남는다. 두 손에 아기 새를 올려놓은 것처럼 조심스러워진다.
여름이라면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게 되는 걸 각오해야 한다. 끝나면 차는 확실히 깨끗해진다. 하지만 가성비는 전혀 없는 행동이다. 차는 쉽게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차 전체를 손으로 직접 닦는 일이 물기 제거를 포함하여 두 번, 광택을 내는 작업을 추가하면 세 번이다. 옵션으로 차량 내부 청소까지 제대로 하면 두 세 시간이 훌쩍 흘러간다.
그러나 손 세차의 장점으로 흔히 이야기되는 것들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힐링할 수 있다는 점, 깨끗해진 차를 보며 느끼는 자기 만족, 그리고 노동이 아니라 건전한 취미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사실 손 세차를 할 때 사람은 정말로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생각이 사방으로 ‘흩어질 수 없게 된다’는 게 더욱 정확한 표현이다. 물을 뿌리고, 거품을 올리고, 손을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동안 머릿속은 자연스럽게 현재의 감각에 붙잡힌다.
손끝의 차가움, 땟국물이 흐르는 소리, 거품이 사라지며 드러나는 도장의 은은한 빛깔, 그리고 펌프질하는 심장의 박동. 이 감각들 사이에는 걱정이 끼어들 틈이 없다. 해야 할 일, 미뤄둔 문제들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잠시 뒤로 밀려난다. 이 단순한 몰입이 마음을 차분히 만든다. 손 세차에서 느끼는 힐링은, 생각을 한 곳에 묶어두는 단순한 작업에서 온다. 덤으로 이 상태에서 현재의 걱정을 바라보면 문제를 보다 선명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기발한 착상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깨끗해진 차에 대한 자기 만족은 ‘차가 예뻐졌다’는 결과에서만 오지는 것은 아니다. 기계식 자동 세차를 돌려도, 전문 업체에 맡겨도 차는 결과적으로 충분히 깨끗해진다. 하지만 손세차를 하고 난 뒤의 만족은 ‘깨끗함’ 자체가 아니라 ‘과정’에 가깝다. ‘비효율적’이지만 직접 해내는 생각이 과정을 더욱 값지게 만든다.
세차인의 기억에는 물때가 잘 생기는 사이드미러 아래, 벌레가 들러붙은 유리, 대충 넘기기 쉬운 휠 안쪽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오염된 흔적이 사라진 자리를 볼 때, 차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내가 시간을 들인 대상이 된다. 이 만족은 남에게 설명하거나 증명할 필요도 없다. 내가 느끼면 충분하다.
따라서 손 세차의 자기 만족은 소비와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만족이 아니다. 돈을 아꼈다는 계산도 아닌, 시간을 줄였다는 효율도 아닌, 이 시대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느림의 미학에서 생기는 소중한 가치이다.
효율성과 경제성은 결국 숫자로 말한다. 요즘은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숫자로 설명되는 시대다. 결혼식에 초대한 손님이 낸 축의금이 사회적 기준에 비춘 ‘시세’보다 적으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계산하게 된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정말 친한 친구가 축의금을 생각보다 적게 내어서, 그 친구와 ‘손절’을 해야 하나란 글을 본 적이 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축하해주려는 마음. 그 마음에 대한 감사보다 ‘결과’가 먼저란 생각이 깔려 있다. 정말 믿음으로 쌓아 올린 우정이라면, 저 친구가 분명 어려운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런 흐름 속에서 손 세차의 자기 만족은 사소해 보이지만 가볍지 않다. 느리고, 번거롭고, 계산이 잘 맞지 않는 돈 드는 과정이 여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손 세차를 하다 보면 차가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책임져야 할 대상’처럼 느껴진다. 돈을 주고 샀다는 사실보다, 몸소 가꾸었다는 기억이 앞선다. 주인이 된다는 것은 마음대로 쓰는 권리가 아니라,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깝다는 걸 세차를 해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사람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자식을 낳은 정보다 자식을 기른 정이 더 크다는 말이 있다. 피로 맺어진 관계보다, 시간을 들여 돌보고 부대낀 관계가 더 깊어질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관계는 시작보다 유지가 어렵고, 유지에는 반드시 수고가 따른다. 손세차처럼 귀찮고,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왜 이걸 계속 붙들고 있는지 모르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통과한 관계는 쉽게 ‘정리 대상’이 되지 않는다.
요즘은 관계를 끊는 일이 지나치게 빠르다. 맞지 않으면 바로 손절하고, 불편하면 설명 없이 차단한다. 물론 정말 아닌 관계를 정리할 용기도 필요하다. 다만 대화의 여지, 함께 조정해볼 시간, 서로를 기다려 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차를 관리하면서, 관계를 대하는 태도에 여유를 넣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손세차를 하는 사람들에게 ‘노예’라는 ‘종속의 절정’에 가까운 단어를 떠올린 것에 대하여 깊이 반성한다. ‘오리다리가 짧다고 늘이지 말라’고 했건만, 이 시선은 내 기준을 타인에게 들이대는 폭력적인 사고였다. 이를 반성한 뒤로,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를 쉽게 내뱉지 않게 되었고, 어떤 일이든지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스파크 덕분이다. 그래서일까. 여담이지만 세차장에서 스파크와 같은 경차를 보면 더욱 반갑다. 겨울은 차가 가장 더러워지는 계절이다. 또다시 세차 타월을 챙길 것이다. 비효율적인 시간을 기꺼이 통과하면서, 닦을수록 조금씩 주인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