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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향기마을 Dec 28. 2022

뜨거운 재회

행운을 약속하며


백일 전에 군에 간 막내아들이 첫 휴가를 나왔다.

우리는 이 첫 휴가 날까지 서로에게 약속한 것이 있었다.

입대하는 전날까지 서로에게 플랜을 짜주며 용기를 북돋우고 잘 지내기를 바랐다.

플랜이라고 해봐야 일병 달 때까지 엄마는 이렇게 자신은 이렇게 상병 때까지는, 병장 달면 그리고 대망의 제대 날까지는 또 엄마는 이만큼 자신은 저만큼 나름대로 목표치를 정해서 실천하기로 한 거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제 휴가 첫날이 찾아왔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군부대로 찾아 출발했다. 아들이 버스로 빙빙 돌아오려면 족히 세 시간은 걸릴 것이기에 얼마 전 제설 작업으로 허리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간 것이다.

남편도 시간이 없어서 같이 못 간다 했었는데 막상 전날이 되니 같이 가자고 운전대를 잡았다.


어쩌면 군에서 허락을 받고 나오는 첫 휴가이니 아들을 못 만난다거나 다른 일은 거의 생기지 않겠지만 그래도 정말 무사히 만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얼마 전 크고 작은 여러 사건 사고들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살다 보면 생기는 법이니까.


쓸데없는 생각이라 여기면서도 만나서 손을 잡고 안아볼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어 가는 내내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는데 얼마나 멀게 느껴지던지.

시내를 빠져나가고 산들이 앞을 가로막아 서는 길을 돌아 드디어 도착한 부대는 정말 한적한 산골 어느 중턱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검은 가방을 멘 군인이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영하 13도 추위에 그 흔한 파카도 안 입고 한 겹 야상에 베레모를 쓴 청년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차를 세우고 얼른 내려 다시 보니 백일 전에 헤어진 내 아들이 아닌가!

우리는 잠시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동안 얼굴을 바라보며 매만졌다.






약속하고 날짜가 되어 만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이게 이렇게 유난히 떠들 일인가?

군에 아들을 보내고 딸을 시집보내는 일이 그리 대단한 일인가?

그야말로 남들이 다 하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반문해 본다.


약속한 날이 되어도 다시 만날 수 없다면 어떤가?

당연히 집에 들어와야 할 사람이 어느 날 연락이 안 되면 어떤가?

군에 들어간 아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면?

가족들이 다 만나는 하루의 저녁에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또 어떤가.


나는 그 당연한 일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것은 너무나 편안한 상태에서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순식간에 빼앗겨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더구나 사람이 함께 있다가 헤어지고 다시 한날한시에 한 장소에서 얼굴을 보며 손 잡을 일은 물리적인 확률로만 따져도 매우 희박하며 서로 만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함께 수반되어야 가능하다.


그러니 백일 간 무사히 잘 지내고 각자가 맡은 일을 해낸 후 약속한 날에 만나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가. 실제로 아들이 휴가를 나오기 전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생각지 못한 사건들과 사고들, 부대원 간의 여러 갈등, 몸 건강의 이상이나 컨디션에 따라 휴가는 물론 여러 상황이 수시로 변하는 부대에서는 이렇게 무사히 가족들과 만날 수 있는 것을 행운이라고 했다.






내게는 유난히 기록할 것이 많은 한 해다.

멀리서 나를 찾아온 반가운 벗들도 있었고 사랑하는 아들과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아들은 군생활의 최악을 각오하고 들어갔더니 훨씬 맘 편히 지낼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최선을 상상하며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그리고 올해를 복기하며 함께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하다.


새해는 아들도 나도 워밍업을 끝내고 각자의 일을 본격적으로 해내야 하는 해이다.

그리고 그에 앞서 서로의 시간을 달려 하나의 소점에서 만날 때까지 우리가 원하는 일을 맞이하기 위한 노력과 끊임없는 상상력으로 선명하게 소원을 새겨야 한다.


이제 3일만 더 있으면 그야말로 새해로 예정된 우주의 시간을 만날 것이다.

깊어가는 밤마다 보고 싶은 아들과 재회하는 꿈을 꾸었듯이 오래된 나의 세계도 부지런히 상상한다.

그 모든 것을 뜨겁게 재회하듯 끌어안으며 오늘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웃을 행운을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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