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아홉 번째 이야기 : 코코와 아이들 -
게릴라 전쟁 같았던 암흑 속 이사를 마친 후 이문냥이 사람들은 그동안 해오던 일들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 나갔다.
이제부터는 매달 꼬박꼬박 집세, 전기료, 수도세를 내야 하고, 늘어나는 아이들 수에 맞춰 케이지를 더 만들고 사료도 더 구매해야 하며 병원도 더 많이 다녀야 하는 등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들이 이들의 앞을 가로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소 물건이 저렴하기는 했지만 케이지용으로 구매하는 네트망과 케이블타이 가격만 해도 얼핏 수 백만원이 필요했다.
케이지에 깔아줄 종이상자와 담요도 어디서 구해야 할 지 막막했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개설했지만 기부금이 얼마나 들어올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역 동물병원 두 곳에서 최대한 도와주고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앞으로 들어갈 검진비에 치료비, 중성화비, 온갖 약값 등을 떠올리면 가슴만 답답해졌다.
언론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중론을 모아 여기저기 마구잡이 홍보에 나섰다. 이렇게 좋은 일, 너무나도 필요한 일을 민간이 나서서 하는 데 언론이 가만히 있으면 되겠느냐는 논리였다.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고, 일간지부터 시작하여 몇 군데 언론에서 기사를 써줬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3181317729606
그 덕분인지 모이는 기부금 액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늘이 돕고 있고 고양이들도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 기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들어온 돈으로 주변의 다이소 매장들을 하나씩 순회하며 케이블타이와 네트망을 싹쓸이 했고, 따뜻한 담요도 그럭저럭 온라인을 통해 구입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부자들은 돈뿐만 아니라 필요한 물건들도 보내주었는데, 특히 고양이 화장실 모래가 요긴했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35206&code=11151100&cp=nv
다들 열심히 자기 일처럼 해준 덕분에 이문냥이의 새로운 시작은 따사로운 봄햇살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보호소에는 개통된 전기 덕분에 음악 소리도 잔잔히 흐를 수 있게 되었고, 간혹 더위가 느껴지면 산들거리는 바람을 아이들에게 흩뿌려 줄 수도 있게 되었다.
고양이들도 매일 매일 보호소에 들어왔고 포획팀, 보호팀, 자원봉사 청소팀, 병원 호송팀 등 사람들도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그러면서도 즐겁게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2주 후 어느 날 오후, 고등어탭 한 마리가 들어왔다. 미장원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 다른 입구 쪽이었는데, 움직임이 다소 느릴 뿐 사납기는 상위 등급에 속할 정도의 여자 아이였다. 이 아이에게는 코코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코코는 다른 아이들처럼 보호소 한 쪽에 케이지를 얻어 들어갔다. 처음 들어 온 아이들은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3층으로 쌓아 놓은 케이지 중 그나마 사람들과 덜 마주치는 1층에 배치하게 되는데, 코코는 워낙 예민해서 구석퉁이 1층에 넣었다. 청소 할 때를 제외하면 굳이 보려하지 않는 한 볼 수 없는 자리다.
케이지 내부 구성은 이랬다. 두꺼운 종이박스가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위 한 쪽에는 모래가 2/5 쯤 담긴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다른 한 쪽에는 숨숨집을 놓아두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경제적 여유가 없던 터라 대부분 테이프로 칭칭 둘러싼 종이 박스로 대신 했다. 물통과 사료통은 한 쪽 면 가운데에 케이블타이로 고정시켜놨다.
구조는 단순했고 공간은 넓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당장 보호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케이지였다. 코코는 예민하고 두려움이 많던 아이라 숨숨집에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물과 사료를 먹을 때에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먹었고 화장실을 이용할 때에도 그랬다.
보호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호감을 보이며 코인사를 하고 재롱을 부리는 아이들이 있는 상황에서 그저 조용하기만 하고 냉랭한 코코는 사실 사람들의 관심 대상은 아니었다.
코코가 들어온 지 1주일 정도 되었을 때다. 사람들이 아침 청소를 시작할 무렵 모모가 여기 저기 케이지를 둘러보다가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코코 집 앞에 쭈그려 앉아 본다. 고개를 숙여 숨숨집 안을 살펴보는 순간 모모는 그대로 주저앉고 만다.
(모모)'어... 여.. 여기 .. 코코가... 코코가 아이를 낳았네. 세 마리야. 밤에 낳았나봐.. 이를 어쩌지...'
(에스펜)'뭐라고? 그럴리가 있나... 코코는 잡았을 때도 이상하지 않았고 귀에도 중성화 표시가 있었는데...'
(모모)'어제 밤 내가 9시까지 있었는데, 그 때까지도 코코는 혼자였는데. 어머나...'
보통 지자체에서 길고양이들을 포획하여 중성화 하게 되면 한 쪽 귀끝을 잘라 중성화 표시를 하게 되는데, 코코가 구조되었을 때 사람들의 눈에는 코코의 귀도 잘려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사람들은 코코도 이미 중성화 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코코는 외견 상 질병 등 특이 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중성화나 치료와 같이 사정이 상대적으로 더 급한 아이들부터 병원에 가는 바람에 진료도 다소 늦어지고 있었는데, 새끼를 낳다니...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기쁘면서도 걱정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는 다중복합적인 감정이 갑작스런 파도를 타고 몰려 들어왔다.
다들 코코 집으로 몰려갔다. 숨숨집 안에는 새끼고양이들이 있었다. 세 마리였는데, 사람들이 몰려들자 코코는 아이들을 감추며 하악질을 거칠게 하기 시작했다. 에스펜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불쌍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시점에 밖에서 아이들을 낳았다면 십중팔구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다행이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이렇게 붙잡혀 보호소에서 아무도 모르게 비밀출산을 하고, 저렇게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는 코코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애처롭기도 했다.
당장 사료와 모래를 보관해 놓고 있던 작은 방을 비웠다. 창틀에 모기장과 네트망으로 안전 장치를 한 후 산모와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을 마렸했다. 새끼 세 마리는 고등어탭 남자 아이 둘에 삼색이 여자 아이 하나였는데, 코코는 출산하자 마자 자신만의 독특하고 강한 훈육 방식으로 이미 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사람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는 코코는 아이들에게도 철저히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가르쳤다. 그래서인지 작은 방에서는 코코나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보안철저가 코코의 모토인 것 같았다.
보호소에서 태어나 보호소가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린 아이들. 보이는 것이라고는 가득 쌓여 있는 네트망과 그 속에 들어가 있는 고양이들이 전부인 세상 속에 던져진 아이들. 나무와 흙과 물과 바람과 태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 이제는 그들만을 위한 작은 방에 옮겨졌지만 그래도 그들의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들의 소식은 곧 온라인에 올려졌고 여러 사람이 아이들을 입양하겠다고 연락 왔다. 하지만 아이들을 지키려는 코코의 의지도 강했을뿐만 아니라 아직 젖도 떼지 않은 아이들을 당장 급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한 달 보름 후 아이들이 건사료를 입에 대기 시작하면서 남자 아이 둘은 하지와 옥춘이라는 이름으로 입양을 갔고 여자아이 미미는 남았다.
미미도 입양 기회가 있었지만, 이미 아이 둘을 빼앗긴 코코의 슬픔과 그의 강한 모성애에 감동을 받은 이문냥이 사람들은 이들을 동반 입양 보내기로 결정하였고, 그렇게 하여 적합한 보호자가 나타날 때까지 이들 모녀의 입양은 보류 되었다.
1년 9개월이 지난 현재, 하지와 옥춘이는 잘 살고 있다는 전언이다. 엄마 코코는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했지만 하지와 옥춘이는 사람들이 좋아졌다. 아마도 지금 정도면 가족의 얼굴도 잊었을 것이다. 보호소의 작은 세상을 넘어 이제는 그들만의 세상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코코와 미미는 요즘 기분이 나쁘지 않다. 과거 초창기와 달리 깔끔히 정리된 보호소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둘 모두를 입양하겠다는 사람도 나타나 조만간 입양 가게 되었다. 미미는 엄마가 가르친 대로 여전히 한 번도 울음소리를 내지 않고 있고, 사람들에게 가끔 손찌검을 하고는 있지만 사람들을 싫어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코코도 언제부터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만 다가오면 하악질을 해댔던 그녀가 이제는 눈짓으로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고,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기까지 한다. 이문냥이 자원봉사를 통해 고양이 똥 치우기 자칭 세계 1인자가 되었다는 독백씨는 요즘 보호소에 올 때마다 코코에게 이야기를 한다.
'코코야.. 잘 있었어? 이제 곧 입양가게 되면 가서 딸내미 데리고 함께 잘 살아. 건강하고 즐겁게 살다가 가야지. 그 다음에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고.. 언제 한 번 코인사 하면 좋겠다.'
그럴 때마다 코코는 50cm 간격을 대고 앉아 독백씨의 말을 들으며 눈을 껌뻑인다. 알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눈짓 속에는 그동안 화장실 잘 치워줘서 고맙다는 말도 있을 지 모른다.
독백씨는 요즘 다시 한 번 인연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가을 바람에 한 덩어리가 되어 나뒹구는 여기저기 나뭇잎들처럼 세상에는 좋은 인연 나쁜 인연 모두 뒤엉켜 있지만, 이문냥이를 통해 만난 고양이들과의 묘연들은 모두 다 좋은 인연이었다고 믿는다.
처음에는 모두 하악질에 손톱질, 때론 물기까지, 사람들과 죽일 듯 대면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고 계절이 바뀌어가면서 어느 순간 눈인사 코인사에 턱밑도 긁어달라고 하는 사이가 된 것을 보면 분명 그렇다는 믿음이 든다.
코코에게 들은 하악질도 셀 수 없는 부지기고, 미미에게 할퀸 자욱도 늙어가는 손등, 팔뚝 곳곳에 갈색 흔적으로 남아 있지만, 그러면 어떠하리, 좋은 인연으로 만난 것을, 이라는 웃음이 마음 속 연못에서 잔잔히 파동짓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말이다.
- (예고) 열 번째 이야기 : 바둑이와 하양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