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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Apr 04. 2022

내가 지켜줄게 16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열여섯 번째 이야기 : 초, 봄, 치, 스, 송 -


초롱이, 봄이, 치노, 스타, 송이.


이문냥이는 공식적으로는 123 마리를 구조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사실은 이문냥이를 시작하기 전에도 많은 아이들이 구조되었었고, 구조를 모두 마친 이후에도 예기치 않게 여러 아이들이 들어왔다.


이문냥이가 고양이를 구조하는 곳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에서 고양이를 구조해 달라는 제보들이 많았다. 절대 구조해서도, 받아줘서도 안된다고 하는 주장도 내부에서 나왔지만, 바로 앞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고 어떻게 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모모와 에스펜은 매번 깊은 갈등을 느꼈지만 그래도 결국 구조하러 가곤 했다.      


- 초롱이 -

초롱이는 가히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이해력도 높다. 언어 소통능력도 높아서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다. 한 가지 문제는 몸이 작아서 아직도 어린 고양이 정도의 몸집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래도 건강하니 다행인 아이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에스펜이 보호소 일을 마치고 귀가하고 있을 때였다. 핸드폰에 DM이 떴다. 한 학생이 보낸 메시지였는데,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기는 하는데, 어딘 지 모르겠다며 구조해야 할 것 같아 급히 연락한다는 메시지였다.


에스펜은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부에는 구조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현장에 가 보기로 했다. 여학생 둘이 있었는데, 걱정하는 얼굴 표정이며 몸짓이 알아보기 어렵지 않았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은 상가 건물 1층이었는데, 상가와 인도를 연결하는 나무로 된 발판 밑이었다. 빗물이 나무판자 사이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보지 않아도 내부 사정은 뻔했다. 빗물에 젖은 채 떨며 엄마를 애타게 찾아 울부짖고 있을 것이 눈에 선했다.


나무계단이 연결되어 있는 상가는 무인 오락기 점포였다. 누구라도 있었다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여학생들과 에스펜은 인사를 나누지도 못한 채 머리를 맞댔다.


계단을 드는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은 힘을 모아봤지만 커다란 나무계단은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때 모모가 나타났다. 에스펜의 연락을 받고 통덫을 가지고 온 것이다. 힘쓰는 모모가 오니 계단이 움직였다. 새끼 고양이이기 때문에 조금만 들어도 될 것 같았다.


나무계단이 들어 올려지면 학생이 들어가 아이를 구조하기로 했다. 드디어 나무판이 올려지고 구석 끝에 새끼 고양이가 보였다. 학생이 몸을 안으로 뻗쳤다. 하지만 그 순간 고양이가 뛰쳐나왔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나무계단을 내려놓고 나니 이미 고양이는 점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모모가 점포 문을 재빨리 닫은 후 넷은 모두 들어가 손으로 잡기로 했다. 고양이는 이리저리 도망쳤지만 워낙 어렸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잡혔다. 삼색이었다. 아이는 이내 마치 '구조해 줘서 고마워요'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에스펜의 품에서 평안을 느끼고 있었다.


일단 에스펜의 집에서 하루를 보낸 아이는 다음 날 병원 검진을 마치고 보호소로 갔다. 이 아이가 초롱이었다.


이전에 보호소에 있던 아이 중 초롱이라는 냥이가 있었는데, 암으로 먼저 삶을 달리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에스펜과 모모는 새로 들어온 이 새끼 고양이에게 초롱이라는 그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전의 초롱이가 다 못했던 삶의 시간만큼 더해서 오랫동안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초롱이는 보호소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가 되었고, 아침마다 에스펜이 오면 마중 나가 인사하고 밥을 달라고 하는 재롱둥이 아이가 되었다.


 - 봄이 -

이문냥이가 아이들을 구조한 지역은 이문동 재개발 3구역이었다. 차도를 사이에 두고 3구역 건너편은 재개발 1구역인데, 뒤늦게 개발이 시작된 지역이었다. 3구역 철거가 완료되고 고양이 구조도 마무리된 시점이 되어서야 1구역도 담장이 둘러쳐지고 철거가 시작되었다.


이문냥이 사람들에게는 담장 너머 1구역 상황이 보지 않아도 훤했다. 1구역에서도 고양이 구조 작전이 추진되고는 있었지만 사람들이 모인 것 같지는 않았기에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3구역에서 구조된 고양이들을 보호하고 입양 보내는 일도 벅찼던 이문냥이 사람들은 미안하게도 1구역의 사정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던 중 걱정하던 일이 터지기 시작했다. 1구역 고양이들이 철거작업에 쫓겨 길을 건너오기 시작한 것이다.


봄이는 그런 고양이들 중 하나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초여름날이었다. 3구역 접경 아파트에 살고 있던 12호 아줌마가 버스를 타기 위해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였다. 앞만 보고 걷던 터라 주변에 신경을 쓰지 않고 걸었는데,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 순간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에게는 촉이라는 것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던 아줌마가 우산을 든 오른손 너머를 보았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주 어린 새끼 고양이가 비를 맞아가며 축 늘어져 있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얼핏 보아도 아사 직전이었다.


12호 아줌마는 원래 동물을 만지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순간 가방에 있던 수건을 꺼내 조심스럽게 안았다. 가슴 한쪽이 크게 울렁거렸다. 아기 고양이를 안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무작정 관리사무소로 달려갔다.


(12호)'아저씨.. 아기 고양이가 힘이 빠져 있는데 어떡할지 몰라서... 애를 일단 살려야 할 거 같은데, 어떡하죠?'

(수위 아저씨)'아이구.. 어디서 데려온 거예요?'

(12호)'횡단보도에 쓰러져 있었어요.'

(수위 아저씨)'그럼 1구역에서 건너온 거네. 우리 아파트 주민 중에 고양이 구조하는 분이 있어요. 제가 데리고 있다 연락해서 부탁해 볼게요. 고생하셨네요.'


그렇게 해서 이 아기 고양이는 에스펜에게 전달되었고, 누군가 봄이라고 부른 이름 그대로 병원을 거쳐 보호소로 오게 되었다. 지금은 좋은 입양자를 만나 잘 살아가고 있는 봄이. 죽음을 바로 앞에 둔 상태에서 기적과도 같은 운명적인 만남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아이였다.


- 치노 -

초롱이와 봄이가 1구역에서 넘어온 아이들이었다면, 어디서 왔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아이도 있었다.


어느 날 3구역 근처 한 아파트 수위 아저씨가 에스펜에게 연락을 주었다.


(또 다른 수위 아저씨)'안녕하세요. 저는 새한 아파트 4동 경비하는 사람입니다. 저희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오늘 아침 보니까 새끼 고양이가 있어서요. 제가 잡지는 못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전화드렸어요'


에스펜은 참으로 복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이문냥이 구조를 하게는 되었지만, 이렇게까지 주변에서 연락이 올 지 몰랐다. 연락을 받았는데 구조하지 않을 수도 없었고, 참으로 난처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스펜)'아..네. 그런데 제가 구조 단체를 하는 건 아니라서요. 다른 데 연락처 드릴까요?'

(또 다른 수위 아저씨)'동문 아파트 김씨가 선생님한테 전화드리면 된다고 해서 연락드렸어요. 고양이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아서요. 어떻게 안될까요?'


결국 에스펜은 이번에도 구하게 된다.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지하주차장에 가보니 아이는 suv 차량 보닛 안에 들어가 있었다. 아마도 어디선가 다른 지역에서 추위를 피하다 들어갔는데, 여기로 오게 된 것 같았다. 차량 주인에게 어렵게 연락이 되었고 도움을 받아 보닛을 열고 아이를 구조했다.


구조된 노랑이 몸은 많이 지저분했다. 기름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고, 가냘파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문냥이 한 사람이 아이 몸 색깔을 보고 카푸키노 같다고 해서 치노라고 불렀다.


치노는 성격이 밝은 아이다. 보호소에 들어온 후 사람들에게 놀자고 먼저 말을 거는 아이는 치노 뿐이다. 봉사자가 화장실을 청소할 때면 다가가 마치 배우기라도 하듯이 이런저런 모습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도 치노가 유일하다. 공부 천재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  스타 -

스타는 1구역 고양이도, 3구역 고양이도 아니었지만 구조되어 보호소에 온 아이였다.


외대 담장을 끼고도는 어느 한 모퉁이 주택가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 학생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 어딘가에 급히 문자를 한다.


급하다고 하는 내용의 DM을 받은 에스펜은 또다시 망설인다. 마음은 그러지 말라고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한 생명이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어찌 모른 척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모모와 함께 급히 달려간 곳은 주택과 담장 사이 좀은 공간이었다. 그 사이에 어린 턱시도 한 마리가 울며 앉아 있었다. 아무리 날씬한 사람이라도 성인은 들어가기 힘든 그런 간격의 공간이었다.


긴 나무 막대기를 가져와 몸을 건드려 끌어내 보려고도 했지만 실패가 거듭되고 있던 순간 한 여학생이 나섰다. 체구가 작기는 했지만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부정적인 기류가 많았다. 하지만 여학생은 겉옷을 벗어 놓고 담장 위에 올라가 밑으로 내려갔다.


몸이 끼어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겨우 무릎을 굽혀 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담장 위에 있던 모모가 아이를 받아 들었고, 다른 사람들은 환호성을 내쉬며 박수를 쳤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 여학생의 몸은 담장에 끼어버렸고,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들어 올리려 해도 학생의 몸은 꿈쩍하지도 않았다.


결국 119를 불렀고, 구조된 학생의 몸 여기저기는 담장에 긁힌 상처 투성이었다. 119의 조언대로 학생은 병원에 이송되었다. 이후 그 여학생의 소식은 듣지는 못했지만 그 대 구조된 고양이는 너무나도 활달하고 명랑하며 똑똑한 아이로 성장해 가고 있다.


외대 스타벅스 옆에서 구조되었다고 해서 아이의 이름은 스타. 한 바탕 대소동으로 구조된 이문냥이 아닌 이문냥이 스타는 당시를 기억하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즐겁게 뛰어다니고 있다.


-  송이 -

3구역에 있던 모든 집이 철거되고 난 뒤 공사를 위해 입구 몇 곳에 컨테이너 사무실이 들어섰다. 하루는 예전부터 이문냥이를 알고 있던 공사장 사람이 에스펜을 보고 말을 건넨다.


'언제부터인가 컨테이너 밑에서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려요. 밑을 봐도 보이지는 안는데, 걱정이 되네요.'


모든 집이 철거되어 공사장 안에는 더 이상 고양이가 없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있다니, 다소 놀라웠다. 그 아이도 분명 다른 지역에서 쫓겨 나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 텐데, 어쩔 수가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에스펜은 공사장 사람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컨테이너는 맨땅을 다진 위에 놓여 있었다. 작은 틈이 있었지만 어두운 공간이라 그런지 잘 보이지 않았다.


에스펜은 예전 방법을 쓰기로 했다. 우선 밥과 물을 정기적으로 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얼굴을 보이게 되는 것이 특히 어린 고양이들의 습성인지라, 며칠 동안 밥부터 주기로 했다.


밥을 준 지 3일이 지난날 공사장 사람이 연락을 주었다. 얼굴을 봤다고 한다. 직감적으로 촉이 왔다. 오늘 저녁은 주지 않고 있다가 밤에 통덫을 놓고 기다리면 될 것 같았다.


예감은 현실이 되었고 늦은 밤, 컨테이너 옆에서 잠복하던 에스펜은 다행히도 새끼 고양이를 구조하게 되었다. 고양이는 고등어탭이었는데, 코에 점이 있는 귀여운 아이였다. 누군가 잡힌 모습을 보고 귀엽다며 송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사람에게 잘 다가오지는 않지만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송이는 신중하지만 친절한 아이다. 지금은 보호소에서 또래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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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와 에스펜은 이문냥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 강해지던, 한 번도 머리에서 떠나보내지 못했던 의문들이 있었다.  


왜 이런 일을 하게 되었을까? 운명이었던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은 들었지만 도대체 무엇이 용기를 갖도록 했을까? 이문냥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것이 혹 무모함은 아니었던가? 괴거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다시 뛰어들게 될 것인가?


일련의 의문들이 머리와 가슴 가운데를 두드릴 때면 두 사람은 거의 자동적으로 외우는 주문 같은 말들이 있었다.


'내버려 두면 죽을 텐데,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래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



※ 이문냥이에서는 이 외에도 더 많은 아이들을 열외로 구조했지만, 이야기에는 이 정도 아이들만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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