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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May 15. 2022

내가 지켜줄게 22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남아 있는 아이들 -


어쩌다 가끔

보호소를 찾아오는 봉사자 세상만사는

어젯밤 꿈이 기억에 생생하다.


보호소 계단을 올라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여는 장면,

발을 들여놓고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소리,

보호소 특유의 고양이 냄새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머릿속 흔적으로 남아 있다.



마치 어제 다녀온 일처럼 말이다.


다만 한 가지 평상시와 달랐던 점은

보호소가 너무 조용했다는 점,

아무리 둘러봐도

고양이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아이들을 찾아 헤매다

가게 된 곳에서는

에스펜, 모모, 평소 알고 지내던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함께 활짝 웃고 있었던

그런 장면들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세상만사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가득 번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꿈을 꾸며 활짝 웃었던 기억이 없었는데,

신기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이문냥이에게도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이유였다.


세상사가 반드시

그렇게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신의 존재가 가끔

의심을 받을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이문냥이처럼 착한 사람들이 복을 받고

올바른 사람들이 인정받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난밤의 작은 꿈으로부터 시작하여

세상만사의 하루 시작을

그렇게

거창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


두부


두부는 보호소에서

가장 착한 고양이다.



보호자의 건강문제로 인해 파양 당한 후

다시 보호소에 돌아온 이후에도 두부는 이전처럼

큰 눈망울에 겁을 잔뜩 머금은 채

다른 고양이들을 피해 혼자 지내고 있다.


덩치는 크지만

평화를 신봉하는 착한 성격 때문에

다른 고양이들과 부딪히는 법이 없다.


복막염 진단을 받고

120일 동안 매일 주사를 맞아야 했을 때도

아무런 불만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 또한

두부의 이런 성격 덕분이었다.


지금은 건강도 다시 회복하였는데,

오히려 다이어트가 필요할 정도로

풍부한 입맛을 되찾은 상태다.


턱 밑을 긁어주길 바라는 두부는

마치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는 듯

답례로 핥아 주는 것 정도는 기본으로 하는

젠틀맨 오브 젠틀맨이다.


예슬


두부가 착하다면,

예슬이는 예쁘다.



성격은 소심하고 조심스럽지만

다른 고양이들과도 잘 지내는 아이다.


조용한 것을 좋아해서

케이지 지붕 위 높은 곳에 앉아

아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차분히 바라보는 것을 즐긴다.


장난감을 가지고 직접 놀기보다는

다른 고양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타입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늘 차분하기 때문에

간식을 얻어먹을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요즘은 간혹 당당하게

간식을 요구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직접 찾아다니는 즐거움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채플린

채플린은 영화계의 대부 챨리 채플린처럼

마치 콧수염이 있는 듯

코 밑에 나 있는 검은 무늬가 매력적인 아이다.



사람들에게도 그렇지만

고양이들에게도 늘 너그러운 채플린은

한 마디로 양보 천사다.


성격 자체가 여유롭고 느긋해서인지

다른 아이들이 먹으려고 하면 언제나

양보부터 하는 채플린은

보호소 사람들에게도

친근한 코인사를 빠뜨리지 않는

예의범절 신사다.


건강 또한 타고난 채플린은

보호소에 들어올 때

건강검진 받기 위해 병원에 간 경우를 제외하곤

아픈 적이 없었다.


보호소 입장에서는

효자가 아닐 수 없다.


라벨


라벨은 만화영화 미녀와 야수의 여주인공처럼

여성적이면서도 밝고 활달한 아이다.



작고 예쁜 삼색 고양이 라벨은

집에 들어가 있을 때도 언제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등

친화력이 높다.


지금까지 입양을 왜 못 갔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매력 덩어리 라벨은

오늘도 보호소에서

당차지만 따뜻한 누나이자

포용력 깊은 엄마의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


챨리

챨리는 8살 추정으로

현재 보호소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다.


마당쇠가 입양 가기 전에는

두 번째 연장자였지만,

마당쇠가 입양 가는 바람에

최고령자가 되었다.



가장 나이 많은 고양이답게 챨리는

다른 고양이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한다.


아침에는 다들 잘 잤는지를 물어보고,

하루 열심히 살자는 말도 한다.


하루 수 차례 이어지는 챨리의 연설은

명확하고 당당하며 위엄이 있다.


고양이들에게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버릇없는 하양이와 스타마저도

챨리 앞에서는

말을 거스르지 않을 정도다.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쉬지 않고 움직이는 챨리는

그 덕분인지

다행스럽게도 건강한 편이다.


보호소 아이들 중

병원에 적게 가는

몇 안 되는 고양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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