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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ho Mar 03. 2024

타인에게 더 나은 오해

이처럼 사소한 것들_클레니어 키건

아침식사를 하며 우연히 나온 대화


어쩌다 우연히 내 알바 시절이 소환되었다. 

스무 살 무렵 국내 명문 대학 교직원 식당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는데(계산원으로) 아날로그인 그 시절에는 복잡한 계산은 계산기로, 카드는 카드 단말기로, 내역이 나와야 하는 영수증은 수기로 작성해야 하던 때였다. 초보 계산원 시절 한 날은 손님이 그날 먹은 식대를 수표로 내고 나는 거스름돈을 거슬러 줬다. 


모든 것을 수동으로 하고 계산원은 나 한 명이다 보니 점심 영업 때는 늘 정신이 없었다. 오후가 되어 결산을 하는데, 그날 받은 수표가 십만 원이 아닌 백만 원짜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당시 십만 원짜리 수표도 거의 본 적이 없었던 때라, 0이 하나 더 붙어 있음을 확인하지 않은 채 받은 것이 실수라면 실수. 상사에게 알리고, 수표 뒷면에 이서(주민번호와 이름을 적는 것)가 되어 있어 이름과 교직원 명단을 찾아 연락을 드렸다. 


과장님과 함께 서서 손님께 사과를 하며 다시 결제를 하는 내게 그 교수님은,


“아니, 백만 원짜리와 십만 원짜리 수표를 어떻게 헛갈릴 수가 있어요?”


교양 있게, 웃으면서 말을 건네더니만 한 순간 그 웃음이 싹 가셨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공기, 온도, 분위기가 떠오른다. 


그러는 ' 교수님은 어떻게 헛갈려서 그것을 내었느냐 '_고 말할 것 그랬다는 것은 십여 년이나 지나서야 생각하게 된 답변.      

식사 후 설거지를 하며 그 사람은 계속 그렇게 누군가를 부정적으로 오해하며 살아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제 완독한 클레니어 키건의 작품,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어떤 한 사람이 변하게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펄롱의 전사(前事)가 책의 7, 80프로이고, 화자인 펄롱이 마침내 변하는 지점에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 변하는 ' 보다는 ' 결심하는 ' 편이 맞겠으나 이야기의 문맥상- 이 책이 찬사를 받는 이유는, 변화를 맞는 한 사람의 내면과 그를 둘러싼 상황을 세심하고 현실감 있게,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     

펄롱도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주머니 속 거스름돈을 주린 아이들에게 건네주기도 했지만, 적당히 타인을 오해하고, 자신과 가족들의 안위를 위해 어떤 때는 약자를 외면하기도 한 그런 흔한 사람.     

이 책은 그런 사람도 변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펄롱과 같은 환경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그런 변화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납득하게 해 준다. 

그래서 워싱턴 포스트가 이 책을 두 권 사라고 한 거지. 한 권은 당신을 위해. 한 권은 당신이 아는 누군가를 위해.     


우리는 누군가를 오해하며 살아간다. 누구나 오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오해가 타인에게 더 친절하고 그이에게 더 나은 오해이기를.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생각을 실천한다면, 펄롱처럼 결심의 순간에서 더 쉽게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인간적으로 나아질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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