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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ho May 26. 2024

까르띠에를 팔아 정원을 샀다.

남편은 티파니 3.7부 다이아 반지를 주며 내게 청혼했다.

우리는 티파니 밀그레인 커플 반지, 까르띠에 솔로 탱크 커플 시계만을 예물로 마련했다. 예물도, 신혼집도 모두 살아가면서 갚아나갔다.


아이의 키와 대출금은 반비례하며 자라고 줄어 들었다.

또 대출을 받아 구매해 옮긴 아파트 가격이 운좋게 부동산 광풍의 바람을 타고 올라갔다. 어깨에서 팔고, 한 눈에 반한 완두콩 집의 한 알을 겁도 없이 대출을 얹어 덜컥 구입했다.


아이는 인생 3분의 1을 이 집에서 지냈고, 어머니가 돌아가심으로, 나는 이 집에서 며느리 자리도 내놓았다. 코로나의 시기에, 기역자 형태의 정원을 손수 꾸몄다. 6평 정도 되는 공간으로 한달 걸려 잡초를 뽑고, 흙을 고르고 비료를 주고, 화초를 사다 심고, 바크로 멀칭을 하고, 에메랄드 그린을 심었다. ㄱ의 머리 부분은 하루 종일 해가 드는데 배수가 잘 안되고, ㄱ의 꼬리 부분은 하루 네 시간만 해가 들었다. 질긴 화초는 잘 살아남았지만 튤립이나 잔디는 잘 살지 못하거나 웃자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햇빛 알러지에 걸렸다. 얼굴이 늘 붉었고 간지러웠으며 주사염이 시작되었다. 젊을 적 돌보지 못한 예민한 피부는 이제 반격을 시작하고 있었다.


남편은 주먹구구식 정원관리가 나의 얼굴과 마음을 피폐하게 한다고 판단했다. 전문 설계사와 시공사에 맡기자고 했다. 견적을 받아보니 천만원이 우스웠다. 그래도 내가 한다고만 한다면 할부로라도 할 기세였다. 까르띠에 시계가 생각났다. 애플워치나 기타 캐쥬얼 시계를 잘 차고, 드레스 워치로는 가끔 차는 까르띠에 시계가. 팔자고 제안했다. 남편도 수긍했다. 그렇게 까르띠에 시계를 세트로 팔고 정원을 사게 되었다.


한 날은 조경디자이너와 프로젝트 매니저가 와서 실측을 하고 갔다. 나무를 주로 심고, 바닥은 왕마사로 멀칭을 한다고 하니 섭섭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바크 멀칭도 잔디도 실패한 우리 집 토양의 생태가 그러한 것을.


3미터 거실 세로 창이 길게 난 곳에 디자이너는 단풍나무를 제안했지만 디자이너가 가고 난 후 내가 꼭 심고 싶었던 나무가 생각났다. 코니카 가문비나무가. 사철 푸르고 겨울에는 트리로 꾸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식물생명이 내게 준 큰 경이로움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작고 여리던 그것이 환한 해처럼 꽃을 피웠을 때 내가 느꼈던 환희를.

1미터도 안되었던 에메랄드 그린이 아이 키를 넘고, 남편 키를 넘어 올려다 보아야 할 때가 되었을 때 들었던 뿌듯함을.

옮겨 심은 첫 해 비실비실하던 자작나무가 이듬 해 어떻게 튼튼하게 푸른 이파리를 내고 기어코 건강해졌는지. 저를 안타까워하며 함께 아파했던 내게 보답이라도 하듯 그 이쁜 초록을 뽐내고 있는 찬란한 지금을.



까르띠에 시계의 가치가 작은 6평 정원을 꾸밀 정도의 가치 밖에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게는 6평 정원에 가득할 식물생명들이, 잘 만든 명품 시계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는 더 이쁘고 건강한 정원을 만들기 위해 프로포즈 링도 팔 것을 제안했지만 남편은 아서란다.


까르띠에를 사서 가정이라는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던 처음을 남편은 기억하고 싶은가 보다.

내가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을 그 가장 처음의 시점을, 남편은 여전히 간직하고 싶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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