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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의 김실장 Oct 12. 2022

소설 <태백산맥> 을 보고



들어가며 : 이 책은 1948년부터 1953년까지 5년간의 역사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벌교와 보성, 조계산, 백아산, 백운산, 덕유산, 지리산을 장소적 배경으로 한다.



1. 감상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지금의 조정래 작가님을 있게 해준 책이다. 한국 문단에서, 그것도 80년대의 극한 이념적 정치 상황 속에서 6.25전쟁과 빨치산을 이토록 구체적이고 노골적으로 다룬 이야기가 또 있었을까.

태백산맥을 읽은 5월부터 8월까지의 시간은 나에게 대한민국 현대사를 다시, 제대로 돌아보라고 얘기한다. 태백산맥 전에 읽었던 아리랑(전 12권)은 일제와 친일파라는 공통의 적이 존재했으니, 슬픔과 분노를 이야기하기가 쉬웠고 그 슬픔과 분노, 카타르시스에 그저 마음을 맡기면 되는 책이었다.

태백산맥은 달랐다. 책 속의 이념 대결의 잔재가 여러 이름의 변형을 통해 21세기 현실 정치에서 여전히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정치권에서 가장 잘 먹히는 선거 방법은 북풍이었고, 그것은 여전히 대한민국에 빨갱이가 존재하고 그들은 북의 지령을 받아 대한민국의 전복을 꿈꾼다는 위협이었다. 여전히 대한민국에는 특정지역 사람들을 빨갱이라 말하고, 얼마 전 퇴임한 대통령을 빨갱이 두목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는 1948년의 여순사건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일까

책을 읽으며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 공산진영이든 자유진영이든 역사는 늘 밑바닥 민중의 피로 굴러간다는 사실이다. 두 진영 모두 멋들어진 말솜씨로 밑바닥 민중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세력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갈라진 두 진영이 계속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건재하다는 것.

요즘 MZ 세대들이 태백산맥을 본다면 과연 이 역사와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이 역사를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척 궁금하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이토록 진한 역사의 아픔이 있었다는 사실을 스무 살들에게 말한다면 그 순간 꼰대가 되는 것일까ㅎ.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실제 우리 역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를 굳이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태백산맥은 그 자체로 스무 살들에게도 먹힐 무척 재밌는 첩보소설이자 전쟁소설이다.

지난 3개월, 조계산과 덕유산, 백아산 그리고 지리산을 염상진 대장과 함께 뛰어다닌 것 같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여순사건'이라고 표현한 뒤부터, 정부든 언론이든 '여순 반란 사건'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고 하니, 작가님께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재밌는 대하소설 잘 읽었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작가님의 마지막 대하소설 '한강'의 서평으로 돌아올 것이다.




2. 전체 줄거리

소설 태백산맥의 시대적 배경은 여순사건이 일어난 1948년부터 6.25전쟁이 끝난 1953년까지의 5년간의 이야기이다. 해방 이후 남과 북에 각각 미국과 소련이 들어오고, 김구, 김규식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48년 5월 남한만의 총선거가 실시된다. 이후 8월에는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9월에는 북한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하여 남과 북은 본격적인 각각의 정부를 세우게 된다. 같은 해 10월, 제주도 빨갱이들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반란을 일으키는 군대가 있었으니 바로 여수 14연대 군인들이다. 이 여순사건을 계기로 5~6일 정도 벌교, 보성, 곡성 등 전남 지역 중심으로 빨치산 야산대와 14연대 군인들이 점령한 해방구가 펼쳐졌으니, 소설 태백산맥의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출발하게 된다.


여순사건을 통해 전라도 전역은 5일 동안 해방구를 맞이한다. 염상진이 이끄는 벌교 야산대(빨치산)들은 마을을 뒤져 친일 지주들을 인민재판으로 숙청한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다시 진압군에 의해 5일 만에 마을을 내줘야 했고 이들은 다시 조계산으로 도망가게 된다. 다시 조계산으로 들어간 염상진 부대는 율어면을 차지해 해방구로 만들고, 율어면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소작농들은 모두가 공평하게 쌀을 받고 대우받는 율어면을 부러워한다.


한편 빨치산들을 토벌하기 위해 마을에 들어온 계엄사령관 심재모는 친일파가 아니었다. 당시, 대부분의 군경이 모두 관동군 출신 친일파인 것에 반해 심재모는 김범우와 같은 학병 출신으로 민족주의자에 가까운 군인이었다. 심재모와 염상진은 율어면을 두고 지략 대결을 하고 둘은 서로의 지략과 전술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염상진과 심재모는 종갓집 며느리를 임신시키기 위해 남편이 있는 율어면에 들여보내는 것에 합의한다. 이를 계기로 훗날 심재모는 빨갱이와 내통했다는 오해를 사 군 생활에 큰 위기를 맞이하지만, 서민영 선생의 도움으로 다시 정상적으로 군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50. 6. 25. 육이오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남한의 경찰들은 이들을 살려두면 우리에게 총을 겨눌 거라는 생각으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되어 있는 전향한 사람들을 모두 총살시키고 후퇴한다(예비검속). 그 과정에서 죄 없는 민간인들이 대량학살되었다. 북한은 파죽지세로 서울을 수복하고 3개월 만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온다. 이때를 흔히 '인공'시대라고 이야기한다. 인공 시대의 3개월 동안 염상진 등의 빨치산은 다시 마을로 내려와 해방공간의 기틀을 세운다. 이승만 정권이 만들었던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하는 등 소작농들에게 인기 있는 정책을 세우게 된다.

인공 시대의 3개월은, 1950년 9월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에 의해 끝나게 된다. 맥아더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부산에서 동해와 남해를 거쳐 서해를 지나 인천에 상륙하는 작전을 계획하고 이 성공으로 전세는 하루아침에 역전되고 만다. 퇴로를 막힌 인민군들은 북으로 돌아갈 수 없고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 이들을 그전에 입산한 빨치산과 구분하기 위해 신빨치라고 불렀다. 평양까지 밀고 올라간 연합군은 갑자기 전쟁에 참가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해 다시 밀리게 되었고 1951년 1월 4일 그 유명한 일사 후퇴를 감행하게 된다. 다시 서울을 빼앗기고 부산으로 두 번째 피신을 오게 된다. 하지만 두 번째 일사 후퇴는 3개월 만에 다시 회복하여 서울을 되찾았고 이때부터 전선이 고착화되기 시작한다.

전선이 고착화되자, 슬슬 휴전협정의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휴전협정의 내용 중 전쟁 포로 교환 등이 이야기되지만, 그 어디에도 정규군이 아닌 빨치산들이 북으로 갈수 있는 길은 마련되지 않았다. 휴전협정 이야기가 돌면서부터 백아산, 백운산, 덕유산, 조계산 등 전남북도당 빨치산들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이 전개된다. 각 도당위원장들은 덕유산에서 비밀회의를 하게 되고, 이 자리에서 각 도당 비무장 대원들을 지리산으로 피신시키고 무장 대원들은 각 지구에 남아 남부군 이현상 대장의 지휘 아래 투쟁하자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몇 번의 동계 대토벌작전을 통해 대부분의 빨치산들이 죽어가게 된다. 그리고 해방과 동시에 미국과 소련이 그었던 삼팔선은 그대로 휴전선이 되었고 이야기도 함께 끝나게 된다.



3. 각 인물 관계



[염상진]

소설은 염상진이라는 빨치산을 대표하는 거대한 인물을 설정해 놓는다. 소작농 출신으로 사범대까지 졸업한 그는 아버지가 바라는 선생님이 되지 않고, 산으로 올라가 빨치산 대장이 된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꺾이지 않는 강철 정신을 갖고 부하들을 인솔하는 그는 소설 전체를 꿰뚫고 빨치산의 큰맥을 잡아준다.



[염상구]

아이러니하게도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가 반공의 대표자인 벌교 청년단장으로 나온다. 염상구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형과 차별 대우를 받아왔기에 염상진에 대한 마음이 좋지 않은 데다가 염상진이 빨갱이의 길을 가자 남남이 되었다. 고약한 성격과 거친 행동으로 마을을 주름잡고, 경찰이나 토벌대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힘을 갖게 된 염상구. 개인적으로 소설 인물 중 가장 매력 있는 인물이었고, 지루하다가도 상구가 나오면 이야기는 다시 흥미롭게 흘러갔다. 자기가 강간한 외서댁이 자신의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해 평생 먹을 수 있는 쌀을 보낸 것이나, 소화와 들몰댁이 사형당하지 않게 조서를 써준 것이나, 마지막 형의 머리를 되찾는 과정에서 보여준 장면들 속에서 보여준 염상구의 이중성은 그 자체로 매력으로 다가왔다. 만약, 굳이 소설의 주인공을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염상구에 한 표를 주고 싶다.



[하대치]

하대치는 아리랑의 지삼출과 같은 소작농 출신의 좌장 역할을 한다. 항상 염상진 대장을 보좌하며, 결국 끝까지 살아남아 차후를 기약하며 사라지는 빨치산이다. 소작농 출신의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아리랑을 통해 이미 지삼출이라는 인물을 맛본 독자라면 그저 그런 매력으로 다가온다. 물론 태백산맥이 아리랑보다 먼저 출간되었기에 하대치를 지삼출보다 먼저 만났더라면 반대로 아리랑의 지삼출의 매력이 반감되었으리라.. 그만큼 둘의 이미지는 비슷했다.



[안창민과 이지숙]

안창민과 이지숙 선생은 사상과 신분을 감추고 마을에서 학교 선생을 하다가 여순사건을 통해 공산주의자임을 노출하게 된다. 이때부터 염상진과 운명을 함께하게 되고 결국 산속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산속의 열 명의 대원보다 인민 속에 한 명의 대원이 낫다"라는 당의 오일 오 결정으로 산속에서 나와 인민 속으로 들어가지만 결국 잡혀 무기징역에 처하게 된다.


[강동식, 강동기]

강동식, 강동기는 서로 사촌 형제이다. 강동식은 하대치와 쌍벽을 이루는 투쟁경력으로 동급이지만, 염상구가 자신의 아내 외서댁을 강간하고 아이까지 가지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염상구를 죽이기 위해 사촌동생 강동기와 함께 마을로 내려간다. 강동식과 염상구는 서로 한발씩 총을 맞지만 강동식은 죽고, 염상구는 살아난다. 외서댁은 이 일을 계기로 인공 시대가 막을 내릴때 빨치산이되어 입산하게 된다.



[사랑방 4총사 : 김복동, 마삼수, 강동기, 한노인]

김복동, 마삼수, 한노인은 강동기와 함께 사랑방에서 함께 놀던 소작농들이다. 농지분배 등을 이유로 강동기는 지주를 죽이게 되고 강동기, 김복동, 마삼수는 결국 입산하여 빨치산이 된다. 10권의 마지막에 한노인은 태백산맥 전체를 관통하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빨치산들]

이미 중앙당 책임자가 된 된 염상진을 제외하면 전남북도당의 빨치산들은 크게 3부류로 나눠진다.


조계산지구의 하대치, 천점바구, 강동기, 외서댁

백아산지구 이태식, 조원제, 강경애

덕유산지구의 박두병, 손승호, 솥뚜껑, 박난희


책의 후반부인 7, 8권부터 위 각 지구에 새롭게 등장하는 빨치산 간부들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강철부대 대장 이태식은 하대치와 버금갈 정도의 투쟁력을 갖춘 대장이다. 하대치와 동급으로 영웅 칭호를 당으로부터 하사받았다. 나이 어린 조원제를 항상 막내동생처럼 좋아한다. 조원제는 어린 나이에 당원이 되었고 나이답지 않은 원칙주의자로서 빨치산 대원들을 잘 이끄는 간부이다.

조계산 지구의 천점바구는 백정의 아들로 염상진 대장 같은 멋진 빨치산이 되는게 소원이다. 강동기 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오래된 투쟁력으로 조계산지구에서 하대치 다음가는 2인자이다. 외서댁은 남편 강동식의 복수를 위해 빨치산으로 들어오게 된고 굳이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빨간끈을 머리에 질끈 매며 싸움을 시작하는 여전사이다.

솥뚜껑의 이미지도 약간 하대치와 비슷하다. 덕유산지구의 좌장역할을 하며 손승호에게 글을 배운다. 솥뚜껑은 손승호에게 전투하는 법을, 손승호는 솥뚜껑에게 배움을 가르쳐주며 서로 우정을 쌓아간다.

[민족주의자]

민족주의자로 분류되었던 김범우, 손승호, 이학송 등은 전쟁이 터지자 제3세력은 없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인민군의 편에 서는 것을 선택한다. 셋은 인민군 선전부에서 일하게 되고 여러 고비를 거쳐 이학송은 인민군 해방일보 기자로, 손승호는 덕유산지구 빨치산으로, 김범우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절름발이로 있게 된다. 훗날 손승호는 토벌대의 총에 맞아 죽고, 김범우는 절름발이로 고향에 돌아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게 된다.


[정하섭과 소화]

정하섭은 술도가 집 정사장의 아들이자, 대학생이다. 공산주의를 접한 뒤 극성 당원이 되고 무당 소화를 통해 마을에 접선을 시도한다. 소화는 어릴 적부터 마음에 뒀던 하섭을 열성으로 도와주게 되고 둘 사이에서 사랑이 싹튼다. 하지만, 둘은 애초에 사랑해서는 안 될 사이였다. 책 초반에 식물인간인 소화의 어머니가 하섭과 소화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대노한 일이 있었는데 사실 소화의 아버지 정참봉은 정하섭의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소화는 정하섭의 배다른 고모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더이상 부각되지 않는다. 작가가 이 설정을 언젠가 써먹으려고 책의 초반에 심어놓은 것으로 보이나, 전반적인 이야기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봉한 느낌이다.



[아낙들]

염상진네 식구들 : 호산댁(모), 죽산댁(처), 덕순이, 광조

하대치네 식구들 : 들몰댁(처), 길남이, 종남이

강동식 아내 : 외서댁



[나쁜지주들]

최익승, 최익달, 유주상, 윤삼걸





4. 내가 생각한 최고의 문단

"한장수 노인은 뜻밖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그 사람의 흉한 모습을 보고 나서 한 세상이 또 막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 유명한 대장이 저리 죽었이니 동기나 삼수가 살았을 리가 웂는 일이제. 쓸만한 사람 덜 요리 한바탕씩 쓸어불고 나면, 그만한 사람 덜이 새로 채와지자먼 또 을매나 긴 세월이 흘러야 허는 겨? 인자부텀 새로 낳는 자석덜이 장성혀야 헌께 한시상 흘러가는 세월이제. 그렇제, 갑오년 그 쌈에서 삼일만세까지가 시물다섯 해고, 삼일만세에서 해방꺼지가 또 시물여섯해 아니라고. 인자부텀 또 그만헌 세월이 흘르먼 워찌 될랑고? 잉, 또 고런 심덜이 모타지겄제. 세월이란 것이 그냥 무심허덜 않는 법잉께. 나가 질게 살아옴서 보고 겪은 세월이 그렸어. " 10권 3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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