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 주의 2
변태 주의 2
계약금을 낸 날 이후 집주인에게서 이상한 문자를 계속 받았다.
'무슨 음식 좋아해?
너 들어오면 우리 파티하자, 나랑 단 둘이'
' 난 와인을 좋아해 너도 와인 좋아하니? 내가 좋은데 데려가 줄게 , 남자 친구 있어? '
집주인은 족히 40 중반은 되어 보이는 배 나온 인도계 남자였고 집을 볼 때 그의 와이프처럼 보이는 여자가 옆에 서있었기 때문에 내게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갔다.
어느 날 집주인이 갑자기 급한일이 있다며 나보고 집으로 좀 와보라는 것이다. 집에 도착했더니 집주인이 중요하게 너랑 상의할 일이 있다면서 말을 했다.
'네가 맘에 들었던 그 방 있잖아, 그 침대에 누가 들어온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 그래서 넌 나랑 같은 방에서 침대를 셰어 해야 할 것 같아'
이 말을 듣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내가 거기 쓸 거라고 다른 사람 이제 보여주지 말라고 계약금을 현금으로 먼저 줬는데 이게 말인가 똥인가? 화가 치밀었지만 진정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집주인이 말을 덧붙였다.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전에 있던 애는 내가 나가라고 했어, 이제 네가 쓰면 돼 언제든지 입주해도 돼, 넌 특별히 전기요금 안내도 돼 알겠지?'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부인인 줄 알았던 여자는 그 아파트의 세입자고 집주인과는 침대만 같이 쓰던 중이었던 것이다. 난 최대한 침착한 톤으로 말했다.
' 나 그 방이 좋은데 거기로 쓸 수 없을까? '
그는 대답으로 내가 계약금을 낸 그 방에 새로 올 여자한테 물어보고 알려준다고 했다. 그 후 집에 돌아온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집을 보여줄 때 그 남자가 잠겨져 있던 여자애들 방을 열쇠로 열고 사람들에게 보여줬고 플랫 메이트를 구한다는 글에도 여자 세입자만 받는다고 적혀있었다.
집주인이 남자인데 왜 굳이 여자 세입자만 받겠다는 거지? 모든 것이 의심스럽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원했던 방에 들어가게 돼도 거기서 살기가 싫어졌다.
때마침 아일랜드 거주 중인 한국인들 단체 톡방에서 장문의 글이 올라왔는데 어떤 파키스탄계 뚱뚱한 남자가 세입자 여자만 구한다고 올리고 세입자 된 애들한테 파티하자는 식으로 꼬드겨서 와인에 약을 탄다는 내용이었고, 자기도 당할 뻔했고 이런 사람 있으니 조심해라 라는 내용이었다.
그 글에는 대략적인 아파트 주소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내 집주인이 사는 아파트였다. 그리고 거기서 설명한 인상착의와 여자만 구했던 사실도 일치했다. 나는 소름이 돋고 손이 달달 떨려서 곧장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진짜 급하게 한국 돌아가야 해서 방 못 들어갈 것 같아, 계약금 돌려줄 수 없을까? 아직 입주하려면 삼주나 더 남았잖아.'
이렇게 말했더니 본인도 안된다며 자기도 나 때문에 시간을 낭비했으니까 그렇게는 못한다는 것이다. '내방 세입자도 이미 구했다면서 무슨' , 혈압이 치솟았지만 계속 설득하려는데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 후에 인터넷도 뒤져보고 부동산 문제 해결해주는 민간단체도 전화로 예약하고 찾아가 봤는데 거기서는 내가 그 집에서 하루도 산 적이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세입자가 아니며 그래서 부동산법으로 보호받을 수가 없다고 했다.
마지막 방법으로 어학원 같은 반 남자애들한테 부탁해서 같이 가서 옆에만 있어달라고 했는데 그 집주인이 로비까지 내려오더니 남자애들은 두고 나만 들어오라고 아니면 문 안 열어줄 거라고 해서 나 혼자 들어가야 했다.
'미안한데 나 한국에 급히 들어가야 해 가족이 다쳐서 병원에 있어 빨리 가야 해 미안해 피해 끼쳐서 '
이런 식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고 (연기가 아니라 약을 먹인다는 그 소문의 남자일 수도 있는 사람과 그 의 집에 단 둘이 있는 이 상황이 억울하고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집주인은 계속 안된다고 하다가 결국엔 100유로를 선심 쓰듯이 돌려줬다. 나는 더 따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감사하다고 말한 뒤 집을 나왔다. 그래 이거라도 받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눈물로 돌려받은 100유로는 같이 와준 애들과 저녁밥을 먹는데 썼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이런 식으로 다른 방을 보여주고 나중에 그 방 나갔다며 본인이랑 침대같이 써야 한다고 하는 식의 사기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 일이 있고 홈스테이를 한 달 정도 연장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기적적으로 홈스테이 끝나기 3일 전 인터뷰 봤던 다른 집에서 연락이 와서 기간 맞춰서 나올 수 있었다.
돌려받은 100유로를 제외하고 그가 챙겨간 나의 150유로는 당시 환율로 18만 원 정도였는데 그 돈을 빼앗겼지만 만약 그냥 들어가서 살았으면 어땠을지 상상하면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어딜 가도 변태 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