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이토록 뜨거울 줄이야.

미시간에서 배운 진짜 정(情)

by 사이의 삶

남편 회사의 결정으로 미국 미시간에서 텍사스로의 이주를 앞두고,

우리 가족은 짐을 싸는 것보다 지난 시간 쌓아온 마음을 정리하는 게 더 힘들었다.


특히나 학교가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우리 아이들은 한국에서도, 이곳 미시간에서도 비행기를 타기 전날까지

등교를 고집했다.

그 고집 덕분에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인생의 한 장면'을 선물 받았다.


미시간 등교 마지막날,

첫째 아이의 전 담임이자, 둘째 아이의 현재 담임 선생님인 위니키 선생님이 아이들의 전학 소식을 미리 알고 반친구들과 함께 조용히 이별을 준비해 주셨다.




아이들은 전재산과 다름없는 소중한 카드, 스포츠 선수 카드, 심지어 어떤 친구는 같이 같이 찍었던 사진을 프린트해 오기도, 또 마음 따뜻한 친구는 한국어로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사실 미국 학교에서 이토록 깊은 정 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떠나야 하는 시간에 교실 근처로 걸어갔을 때, 복도까지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아쉬워 흘리는 눈물이 아닌, 거의 통곡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순수한 눈물로 범벅이 된 아이들을 보며 '우리 아이들이 이곳에서 정말 사랑받으며 지냈구나'를 몸소 느낄 수 있었고, 평소 눈물 없기로 소문난 남편도 울고, 나도, 다른 반 선생님들 모두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날 내가 느낀 학교의 공기는 온통 젖어 있었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메인 문을 나서는데도 친구들은 끝까지 쫓아와 우리 아이를 끌어안고 울었다.

'너희 가족이 참 잘 지내왔다는 증거야'라며 우리 가족을 다독여 주던 보조 선생님의 말씀도 마음에 깊이 남았다.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나 역시 ESL 선생님, 친구들, 튜터선생님들과 마지막 파티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들과 선생님들까지 함께 울먹였다. 한아름 건네받은 선물과 편지들 그 안에는 단순한 언어교육을 넘어선 사람대 사람의 깊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이웃집 주디 할머니가 우리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맨발로 뛰쳐나오셔서 우리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던 때이다.


미국 사람들은 개인주의적이고 정이 없을 거라는 나의 편견은 그날 완전히 부서졌고,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이별이 이렇게나 슬프고, 정이 무서운 것이구나를 뼈저리게 느낀 하루였다.




우여곡절 끝에 텍사스에 새 짐을 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시간 반 전체 아이들이 하나하나 마음을 담아 쓴 단체 편지가 도착했다. 그 먼 거리를 건너온 아이들의 진심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중에 몇 명과는 손 편지를 지금까지 주고받는다.


미시간에서 마지막 날, 눈물로 보냈지만 우리 가족은 조금 더 성장했을 것이다.


텍사스에서 새로운 시작은 미시간에서 배운 이 뜨거운 정의 힘으로 씩씩하게 해 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