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영국도 아닌 시카고에서 태극기를 펼쳤다.
라인업 발표 1시간 전,
나는 시카고 한복판에서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흥민 선수가 출전하지 않으면 우리는 왕복 여섯 시간을 허비한 셈이기 때문이었다.
손흥민 선수가 미국으로 온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프리미어 리그 중계화면으로나 보던 선수가 이곳으로 온다니.
그건 단순한 이적 뉴스가 아니라 타지 생활 하는 나에게 던져진 선물 같았다.
경기 당일 아침까지도 갈지 말지 정하지 못했다.
출전 여부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비자 승인 속보를 확인하자마자 무작정 출발하기로 결심했다.
"오늘 절대 안 나온다, 시차 적응도 안 됐는데 어떻게 바로 뛰노?"
가는 길 내내 남편은 현실론을 펼쳤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나올 것 같았다.
라인업이 떴다!
선발명단엔 없었지만 교체 명단에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미국에서 야구장은 여러 번 가봤다.
핫도그를 먹으며 여유롭게 즐기는 분위기.
하지만 축구장은 달랐다.
특히 서포터스 존의 열기는 압도적이었다.
90분내내 단 한 번도 앉지 않고 북을 치며 노래하는 사람들.
경기를 '보는'게 아닌, 함께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더 묘했던 건 관중석의 풍경이다.
토트넘 유니폼을 입은 외국인들이 'Son'를 응원한다.
그날 나는 한국선수를 보는 게 아니라, 세계적인 선수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보고 있었다.
가방 안에는 태극기가 있었지만, 괜히 나만 들고 온 것 같아서 망설였는데, 경기장을 둘러보니 곳곳에 태극기가 보였고, 나도 같이 태극기를 펼쳐 흔들었다.
경기 후반부 손흥민 선수가 몸을 풀고 출전했을 때
터진 환호성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남편을 지긋이 쳐다봤고,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그날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갑작스럽게 결정하느라 예약도 못했고,
사실 그럴 엄두도 안 났다.
그래서 왕복 여섯 시간 넘게 운전한 건 남편이었다.
돌아오는 길, 나와 아이들은 잠이 들었고
남편은 캄캄한 도로 위를 묵묵히 달렸다.
별 다른 말은 없었지만, 손흥민 선수를 바라보던 얼굴은 조금 달라 보였던 것 같다.
아마 그날의 환호성이 나만의 위로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타지에서 사는 동안, 우리는 가끔 누군가의 이름으로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그날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손흥민 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