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은 흉내 낼 수 없는, 사람을 중심에 두는 서점들

한국과 미국, 내가 사랑한 서점들

by 사이의 삶

한국에서 기억에 남는 독립서점은 경주에서 우연히 들렀던 작은 책방이었다.

그곳은 조용했고, 책들은 정갈하게 놓여 있었으며,

나는 서점이란 당연히 '방해받지 않는 친절'이 흐르는 곳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 미시간에서 만난 독립서점

'더 북맨(The Bookman)'은 서점에 대한 나의 정의를 바꿔놓은 곳이다.

이곳의 주인은 내가 미국에서 만난 나의 첫 번째 영어 선생님이었다.

찾는 책이 없으면 "없다"라고 말하는 대신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찾아 주던 곳.

책을 파는 일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먼저인 공간이었다.


주말이 되면 서점은 아이들의 놀이공간으로 변했다.

동화책을 읽어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리고,

이야기가 끝나면, 만들기 수업도 열렸다.

미국의 기념일마다 그에 맞는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이어졌다.


지역사회와 함께 열린 '분필 그림 대회' 날 에는

어른아이들 할 것 없이 참여해

서점 근처 인도에는 분필로 가득 찬 그림들이 캔버스 삼아 화려하게 펼쳐졌다.

분필 그림 대회에선, 우리 딸은 초등부문에서 수상해 지역 문구점 쿠폰도 받았다.


여기 미시간 서점은 동네사람들에게 조용히 해야 하는 서점이 아닌 참여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손을 잡고 서점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 갈 때마다 아이들과 약속을 하나 했다.

부모가 선택해서 주는 전집 세트 대신, 오늘 가장 읽고 싶은 책 딱 한 권을 스스로 고르면 선물해 준다는 약속.


서점은 내가 읽고 싶은 세상을 스스로 고르고 선물 받는 공간으로 아이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더 북맨은 더욱 특별한 장소가 되었고, 아이들을 환대하는 서점이라

더 마음이 갔는지도 모른다.




선생님과 나는 책이라는 공통 언어로 국경을 넘나들기도 했다.

내가 독립서점을 바탕으로 한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라는 책을 추천하면, 선생님은 나에게 아직 출시 전 한국소설 번역책도 구해서 선뜻 선물로 주셨다.



내가 추천한 'H마트에서 울다'를 읽으며,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셨다.

또 '배움의 발견'이란 책을 두고 교육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토론 한 날도 있다.


선생님은 노련한 오너였고, 나는 이방인이었지만 책을 통해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람 중심의 온기는 이제 작은 동네 서점을 넘어 대형 서점으로 번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 대형 서점 체인인 '반스 앤 노블(Barnes & Noble)'이 다시 부활하여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스템과 알고리즘대신, 지점마다 직원들이 직접 읽고 추천하는 책들에 정성 어린 손글씨 쪽지를 붙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본사의 지시가 아니라 현장 직원의 취향과 진심이 담긴 '추천 권한'이 독자들의 발길을 다시 돌린 것이다.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한국의 대형 서점들과도 닮아 있다. 거대한 규모 속에서도 누구든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커다란 테이블을 내어주는 넉넉함 같은 것.


결국 내가 사랑한 모든 서점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국의 고즈넉한 독립 서점이든, 미시간의 동네 책방이든, 혹은 변화를 선택한 대형 서점이든,

그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는 곳이 아니다. 동네를 키우고, 아이를 꿈꾸게 하는 다정한 연습장이다.

지금도 서점을 떠올리면 책장 너머로 종이 냄새와 온기가 먼저 생각난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사람의 진심이 묻어난

페이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