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사이엔 고작 커튼 한 장 정도의 경계가 있을 뿐
집으로 오는 길 문득 위를 올려다보니 우리 아파트 4층 창문에 얇은 커튼이 드리워진 게 보였다.
4층은 우리 집 바로 윗층으로, 얼마 전까지 100살이 다 된 할머니가 혼자 살던 집이었다.
그 집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던 할머니는 백 살을 앞둔 어느 날 세상을 떠났다.
나는 4층 할머니가 병원으로 실려가던 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9월이었던가. 아직 날이 따뜻해서 우리는 발코니에 앉아 있었고,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 내다보니 앰뷸런스가 와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들것에 할머니를 싣고 막 아파트 공동현관을 나서던 참이었다. 의자 형태의 들것에 실려있던 그녀는 의식이 뚜렷해 보였고 기운도 있어 보였다. 그래서 가벼운 낙상사고인가, 생각했을 뿐이었다.
4층 할머니의 부고를 전해 들은 건 엄마의 기일을 맞아 잠깐 한국에 가 있었을 때였다.
예상대로 낙상사고는 맞았으나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고, 그녀는 결국 수술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했다. 남편은 아파트 단지 주민들과 함께 장례식에 갔다. 같은 집에서 백 년 가까이 살아온 사람답게, 정말 많은 사람이 장례식에 왔다고 했다.
9년 전, 취리히로 이사를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계단에서 4층 할머니와 마주쳤다.
그녀는 90세라는 나이가 무색하도록 키가 크고 자세도 꼿꼿했다. 단정히 묶은 하얀 머리에 긴 스커트를 입고 내게 독일어로 조곤조곤히 인사를 건넸다. 아이가 태어났을 땐 할머니가 직접 뜬 아기양말을 선물로 받았다. 자주 왕래하진 않았지만 계단에서 만나면 항상 미소로 인사를 대신하곤 했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가끔 바로 앞집에 사는 아들과 함께 교회에 가는 모습이 보여 안심했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그녀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몇 년 사이에 거동이 점점 힘들어진 할머니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아들 내외가 곁에 있고 친지들이나 가정방문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손님들이 많아서인지 외로워 보이진 않았다. 금요일이나 주말 저녁, 그녀의 거실에서 사람들이 왁자지껄 웃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크리스마스 무렵엔 매년 창가에 촛불과 별 모양 조명이 켜져 있었고 다같이 캐롤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런 나날들이 있었다. 커튼 너머에 환하게 불이 켜져있고 누군가가 왔다갔다하는 실루엣이 보이는. 웃고 떠드는 소리와 부산하게 걷는 발자국 소리, 쿵 하고 무언가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리던 나날들. 고막을 찢을듯한 아기의 울음소리부터 싸우는 소리, 혹은 잠이 든 주인 앞에서 혼자 떠드는 티비 소리가 커튼 너머에 존재하던 나날들. 냄새는 또 어떠한가. 고약한 냄새, 방금 끝낸 요리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 방금 빨래한 이불 냄새, 누군가 사온 꽃 냄새. 그런 모든 나날들.
그 때 할머니의 커튼 너머에 있었던 건 삶이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녀의 창문엔 항상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져 있지만, 지금 커튼 너머엔 아무런 불빛도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삶이 이 곳을 떠났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제 커튼 너머를 들여다봐도 거기엔 아무것도 없으리라. 그녀의 아들이 유품을 정리하느라 바쁠 뿐, 촛불도 대화소리도 없다. 얇은 커튼이 쳐진 아주 평범한 창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면 저 집의 주인이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그녀의 부재를 강하게 느꼈다. 커튼 너머 소리없이 서 있는 어두움, 그건 죽음의 형태이자 무게였다.
이런 저런 죽음을 겪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가 아주 얇다는 건 이미 알게 되었지만, 그녀의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을 올려다보며 나는 한동안 걸음을 떼질 못했다. 곧 저 커튼은 사라지고 새로운 삶이 창문 너머에 불을 밝힐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셀 수 없이 많은 집, 수 많은 창문들, 그 커튼 뒤에 있는 건 죽음일까, 삶일까? 커튼을 걷어보기 전 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죽음일 수도, 삶일 수도 있는 것.
나와 죽음 사이엔 얇은 커튼 한 장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