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할 때
04. 산다는 게 잔인하게 느껴질 때
돌이켜보면 그날 새벽은 조금 이상했다.
새벽 1시쯤 별안간 아이가 큰 소리로 우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고, 겨우 아이를 다시 재우고 침실로 돌아와 보니 새벽 2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피곤한 눈으로 확인한 핸드폰에는 동생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언니 일어나면 연락 줘.'
그 메시지를 본 나는 바로 한국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알아차렸다. 새벽에 오는 이러한 짧은 메시지들은 대개 나쁜 소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이었다면 나는 필시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겼겠거니 하고 바로 답장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엄마를 잃은 후였고, 엄마가 돌아가신 것보다 더 나쁜 소식은 당분간 내게 없을 터였다. 나는 몇 초간 고민하다가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눈을 감았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동생에게 연락해야지, 생각하다 이내 잠이 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새벽에 잠이 한 번 깨면
도통 잠이 오질 않아 다시 잠을 청하기가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새벽엔 이상하리만치 빨리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나는 아침 8시경까지 아주 깊은 잠을 잤다. 한국에 뭔가 일이 생겼다는 나쁜 예감을 마음 한 구석에 눌러둔 채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며 꾸역꾸역 늦잠을 잤다. 어쩌면 또 다른 비극이 생겼다는 걸 깨달은 무의식 속의 내가, 당분간 다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될 나를 어떻게든 보호하려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밖에서 아이가 남편과 소란스럽게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핸드폰에는 '누나, 일어나면 정신없을 것 같아서 카톡으로 전해요.'로 시작하는 제부의 긴 메시지가 와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내 예감이 정말로 맞았구나. 메시지를 다 읽기도 전에 벌써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메시지를 끝까지 읽었다.
그것은 야속하게도, 새벽에 갑자기 세상을 등진 사촌동생의 부고를 알리는 메시지였다.
내가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큰 소리로 우는 내 목소리에 놀란 남편과 아이가 침실로 뛰어들어오고, 내가 남편에게 무슨 정신으로 사촌동생의 부고를 알렸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저 놀란 아이의 동그란 두 눈과 그 얼굴만은 생생하다. 누구? 누가 죽었어 엄마? 나는 그렇게 묻는 아이에게 대답조차 할 수가 없었다. 지겹다. 지겨워. 죽음이라면 지긋지긋하다.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와중에도 문득 아이가 아침식사를 거를까 봐 걱정되어 남편과 아이를 다시 주방으로 내보냈다.
울음을 그친 뒤에도 나는 한참을 어두운 침실에 혼자 누워있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어제 그 시간에 나는 무얼 하고 있었지? 아마도 지극히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늘 저녁은 뭘 먹을지를 고민하던 그 순간에 또 다른 누군가가 내 곁을 영원히 떠났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애써 가라앉혔던 우울감과 공허함의 그늘이 다시 나를 서서히 덮쳐오는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두려워져 어두운 침실을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가까운 공원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딱히 내 기분 전환을 위해서 나선 것이 아니라, 집에 있으면 아이가 지루해하고 보채기 때문이었다. 만 네 살인 아이는 엄마에게 방금 아주 슬픈 일이 생겼고, 엄마가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바로 몇 달 전에 할머니의 죽음을 경험했지만 아이는 죽음과 슬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죽는다는 건 하늘로 가는 것. 살아있는 사람들과 더 이상은 만날 수 없지만 고통도 없고 힘든 일도 없는 하늘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 아이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바람도, 무지개도 모두 할머니가 만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죽어가는 할머니의 손에 입을 맞추고, 사흘 뒤에는 할머니의 유골 위에 작은 손으로 흙을 뿌렸다. 그리고 바로 곁에서 우리 모두가 슬픔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도 보았다. 작아 보여도, 우리처럼 슬퍼하지 않더라도 아이는 죽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놀이터 옆에 위치한 매점 테라스에 앉아있으니 남편이 맥주를 사 왔다. 아이는 옆에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며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봄의 햇살이 따뜻하게 부서져 내리고, 테라스는 저마다 맥주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화기애애하다. 바로 옆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들며 신나게 놀고 있다. 벌써 그릴에 구운 소시지도 판매하는 모양인지 맛있는 냄새가 봄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졌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남편이 사다 준 맥주를 몇 모금 마셨다. 목을 타고 내려간 시원한 맥주가 가슴 언저리에서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소시지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계속 냄새를 맡고 있으려니 배가 고팠다. 나는 입가에 잔뜩 아이스크림을 묻힌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얼마나 끔찍할 정도로 잔인하고 한가로운 오후인가.
슬픔의 가운데에 우뚝 자리하고 선 행복감의 그 당당한 얼굴에 나는 기가 질렸다. 어쩌면 이다지도 뻔뻔할까. 나는 몇 달 전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엄마를, 그리고 새벽에는 아끼던 사촌동생을 잃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오고,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이 너무나 맛있고, 심지어 눈치 없이 배가 고팠다. 곧 그러면 안 된다고 꾸짖기라도 하듯 불쑥 슬픔이 찾아왔고, 봄 햇살이 가득했던 가슴은 순식간에 서늘한 냉골이 되었다. 슬픔의 냉기에 마음이 움츠러드는 것을 느끼며, 나는 여전히 여기 있었다. 엄마! 하고 부르는 아이에게 웃어주고, 태평하게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며 남편과 담소를 나누었다. 오늘 봄 내음과 햇살이 참 좋다고 길게 심호흡하면서, 마음속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은 가증스러울 정도로 평범하게 계속된다.
어제 누군가가 죽었어도 오늘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하고, 화장실에도 가고, 웃긴 일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살아있는 게 죄스럽고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마음이 안절부절못하고 이리저리 날뛰는 것 같다. 감히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가? 하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고문하면 마음이 좀 편해질까 싶지만, 행복한 순간들은 뻔뻔하게도 계속 찾아온다. 물론 사람에 따라 누군가는 더 긴 시간을, 또 누군가는 짧은 시간을 슬퍼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은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는 아직 살아있고, 결국엔 모두가 행복해도 된다는 점이다. 비록 가슴이 오싹해지는 슬픔의 냉기를 안은 채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할 지라도.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우울증으로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기고 세상이 끝난 듯 슬퍼하는 선아에게 동석이 이렇게 말했다.
"슬퍼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야.
슬퍼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러다가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어쩌다 웃기도 하고, 행복도 하고."
죽음을 겪은 이에게 하는 위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슬픔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보다 더 나은 지침은 없으리라. 어차피 우리는 이 지긋지긋한 죽음도, 상실감과 허무함도, 하물며 슬픔도 평생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몇십 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이 죽음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시리고 눈물이 날 것이다. 남겨진 삶의 무거움이야 결국 아직 살아있는 우리 몫이니, 이렇게라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하루하루 슬퍼하고, 밥도 먹고, 행복했다가 또 슬퍼하면서.
보고 싶고 미안한 내 사촌동생 S가 그 곳에서는 걱정 없이 편안하고 행복하길.
착한 우리 엄마가 예뻐하던 조카이니 잘 돌봐주고 계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