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이토록 패턴에 집착하는 것은 아마도 지독한 외로움 때문일 것이다.
03. 슬퍼하는 이를 위한 매뉴얼 -하-
장례식장에 몇 년 만에 오랜 친구들이 모였다.
여기저기 인사하러 다니다가 조금 늦게서야 그들이 앉은 테이블로 가보니 몇몇은 벌써 불콰해진 얼굴로 나를 반겼다. 의자를 끌어다 놓고 어서 앉아 요기라도 하라며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내 앞으로 내민다. 나는 숟가락을 들 힘도 없었지만 일단은 고맙다고 웃으며 그들 앞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꽤 많은 소주병들이 바닥을 보인채 놓여있었다.
- 어차피 우리 모두 언젠가는 겪어야 하는 일이잖아. 슬프지만 네가 우리보다 조금 더 일찍 겪었다고 생각해.
나를 달래고자 하는 그 마음은 알 수 있었으나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나는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앞에 빈 소주잔이 놓이고, 누군가가 잔을 가득 채웠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소주잔부터 기울였다. 소주가 지나가자 입 안은 씁쓸하고 식도는 타는 듯이 아팠다. 지난 몇 주간 엄마의 곁을 지키느라 술을 거의 마시지 못했다.
- 그래도 덕분에 다들 이렇게 얼굴 보네. 이게 진짜 얼마만이야?
나는 갑작스러운 부고 알림에도 바로 광주로 내려와 준 그들이 고마웠다. 학교를 졸업한 뒤로 모두 뿔뿔이 흩어져 일 년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든 사이가 된 지 오래였다. 누군가는 결혼해서 아이들 엄마가 되었고, 소식을 듣자마자 남편과 몇 시간을 내리 운전해 바로 장례식장으로 왔다. 누군가는 다음날 출근을 해야 했기에 새벽 기차를 타고 다시 올라간다고 했다. 나는 오랜만에 그들과 예전처럼 웃고 떠들며 술잔을 기울였다. 마치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처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중 누군가는 엄마에게서 언제 집에 올 것인지를 묻는 전화가 왔고, 누군가는 엄마가 요즘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달라진 것은 나뿐이었다. 나는 바로 전날 엄마의 임종을 지키고 새벽에 광주로 올라와 빈소를 차린 참이었다. 나에게 전화를 걸어줄 엄마는 이제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차가운 몸이 되어 이 장례식장 어딘가에 누워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술을 마신 탓인지 겨우 한 잔 마셨을 뿐인데도 얼굴로 열기가 전해졌다. 통기성이 나쁜 뻣뻣한 상복 아래 추울까 봐 굳이 챙겨 입은 내복이 답답했다. 나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 테이블을 떠났다.
옮겨간 테이블에는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절친하게 지내온 친구 Y와 J가 있었다. Y는 십여 년 전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엄마를, J는 몇 년 전에 심근경색으로 아빠를 잃었다. 그들은 별다른 말 없이 나와 마주 앉아 음식을 먹었다. 그들이 내게 건네는 말은 위로라기보다는 공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들이 모두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나온, 고통스러울 정도로 진실된 것임을 알았다. 그 테이블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곳에만 산소가 더 많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내가 방금 막 새로운 공간에 발을 디딘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새로운 공간이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자들의 방이라는 사실도. 멀리서 바라보며 두려워했던,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던 그 공간에 결국 들어오고만 것이다. 가슴이 에일 듯이 차가운 그 방의 냉기에 나는 몸을 움츠렸다. 이 방에 들어온 이상 여길 떠날 방법은 없다. 나는 이제 이 방의 일부가 되어 평생을 살아가야 하리라. 투명한 얼음벽 너머로 보이는, 아직 이 방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혹은 바깥 세계의 온기와 이 방에 들어오기 전의 나를 그리워하면서.
친구 A가 아이들과 남편을 데리고 집에 왔다.
취리히에 도착한 지 겨우 일주일이 지난 터라 사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A라면 만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의 아버지는 몇 년 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마요르카로 휴가를 떠나기 하루 전이었다. 그의 아내는 이미 마요르카에 도착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도, 비행기가 출발하고 도착할 시간이 되어도 그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의 부인은 남편이 바쁜 일이 생겨 회사에 갔으리라 생각하고 하루를 꼬박 더 기다렸다. 그러나 이튿날 그의 회사 동료가 그녀에게 연락을 해왔다. 업무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는데 그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그녀는 급한 대로 짐을 챙겨 바로 독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서 남편의 시신과 마주쳤다.
A는 그렇게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가 죽기 몇 시간 전 짧게 한 전화통화가 마지막이었다. 통화 내용도 별로 기억에 남지 않을 만큼 그저 시답잖은 일상 대화였다. A의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음날 어차피 마요르카에서 만날 예정이었기에 '아무튼 자세한 얘기는 내일 만나서 해.' 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당시 첫 아이 출산예정일이 며칠 남지 않았던 A는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A와 나는 취리히의 한 신생아 마사지 교실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는 독일인 의사답게 냉철하고 이성적인 동시에 놀라울 만큼 다정하고 유쾌했다. 당시 그녀는 머리가 듬성듬성 빠져 두피가 훤히 드러나 있었지만 나는 그게 그저 임신과 출산 후유증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때 그녀는 지독한 우울증과 싸우는 중이었다. 특유의 꼿꼿한 모습과 미소 뒤에 그토록 커다랗고 깊은 슬픔이 숨겨져 있었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녀의 자세한 사정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뒤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그녀처럼 평정심을 유지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분노 때문에 머리가 돌아버리기 직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분노의 출처도, 타이밍도 알 수가 없었다. 불같은 감정이 지나가면 또다시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들고, 곧 깊은 우울에 빠져 며칠을 허우적거렸다. 언제 갑자기 분노가 찾아올지 몰라 매 순간이 불안했다.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었다. 삶의 이유 또한 상실해버린 지 오래였다.
- 좀 어때? 괜찮아?
그렇게 묻는 A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밝았지만 그녀의 커다란 두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A라면 내가 이 터널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 실은 엄마에게 자꾸 화가 나. 왜 화가 나는지 모르겠어. 엄마는 잘못한 게 없잖아. 그런데 너무 화가 나. 화를 내고 나면 마음이 너무 슬프고 괴로워. 요즘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나는 A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광주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음성메시지 만으로 나를 울렸듯, A의 위로는 언제나 진실되고 따뜻했다. 아니면 위로는커녕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암으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엄마에게 화를 내는 이런 정신 나간 딸이 어디 있겠는가. 그녀의 반응이 뭐가 되었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내겐 이 고통스러운 터널에서 빠져나갈 힘이 없었고,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황은 변하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침착하게 내 이야기를 듣던 A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탄식도, 공감의 빛도 아닌 잔잔한 미소였다. 그녀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 너는 지극히 정상이야.
정상이라고?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엄마에게 화가 나는데 그게 정상일리 없다. 나는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 그녀에게 곧바로 물었다.
- 어떻게 이게 정상이야? 돌아가신 엄마에게 화가 나. 야속하고 미운 마음까지 든다니까.
- 정상이야. 너는 지금 아주 잘하고 있는 거야. 그대로 하면 점점 괜찮아질 거야.
The 5 stages of grief.
여전히 어안이 벙벙해 있는 나를 보며 그녀가 말했다.
- 분노는 슬픔의 다섯 단계 중 하나야. 너는 나쁜 딸이 아니라, 분노 단계를 겪고 있을 뿐이지.
- 슬픔의 다섯 단계?
- 그래.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잃고 슬퍼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껴. 그중 가장 대표적인 감정 다섯 가지를 '슬픔의 다섯 단계'(The Five Stages of Grief)라고 해.
그 다섯 가지 감정이란 바로 부정 -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으로, 각 감정에 따른 마음 상태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단계는 부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슬픔과 충격에 빠진 상태에서는 당연히 현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게 더 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은 돌아올 수 없고,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쯤 세 번째 단계인 분노가 찾아온다. 분노의 종류는 다양하다. 왜 하고많은 사람들 중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왜 이 사람은 나를 두고 죽어야 했는가? 등 온갖 분노가 마음을 휩쓸고 지나가면 네 번째 단계인 협상이 시작된다. 협상 단계는 현실 부정과 분노가 섞여 괴로운 가운데 여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에서 비롯된 감정으로,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뭐든 할 텐데.', ' 하느님, 이 사람이 살아서 돌아올 수만 있다면 평생 죄를 짓지 않고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등 어떻게든 현재 상황을 바꿔보고자 실현 불가능한 일들을 흥정에 부치는 것이다. 이 단계를 거치면서 우리는 인간이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실감하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걸 깨닫는 순간 네 번째 감정인 우울이 찾아온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현실 부정도, 협상도 소용없다는 걸 인정하며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현실을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그리움과 공허함이 커져가고, 이는 더 깊은 슬픔과 우울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의 폭풍우를 거치고 나서야 마침내 수용의 단계가 찾아오는 것이다.
물론 이 슬픔의 다섯 단계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 자체는 누구에게나 똑같지만, 굳이 따지자면 죽음도 철저한 개인적 경험이기에 슬픔 역시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나에게 있어 엄마의 죽음은 이 세상 그 어떤 비극과도 견줄 수 없는 최악의 사건이었지만, 이 죽음이 다른 이들에게도 똑같은 슬픔의 무게를 가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죽음은 우리가 태어나 겪는 사건 중 가장 필연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기에 무겁고, 모두에게나 평등하기에 가볍다. 그렇기 때문에 무게를 재는 것은 불가능하다. 죽음은 그저 죽음일 뿐이다.
하지만 '슬픔의 다섯 단계'는 나에게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고 매일 비바람이 불던 밤바다에 나타난 작은 등대 불빛처럼, 적어도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딘지는 보여주었다. 내가 엄마에게 느끼는 분노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깨닫자 나는 점점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쁜 딸내미는 더더욱 아니었다. 나는 그저 누군가를 잃고 슬픔을 겪는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가 찾아오는 횟수가 신기할 정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예기치 못한 분노는 아직 이따금 나를 찾아왔지만, 적어도 빠르게 다른 감정들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더 감사한 점은 내가 지금 슬픔의 망망대해에서 어디에 있는지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우울 단계를 겪는 중이다. 지도 하나 없이 길을 잃고 떠도는 것 같았던 마음속 안개가 조금은 걷힌 기분이었다. 엄마를 잃은 지 약 4개월 만의 일이었다.
반복되는 패턴, 다수에 의해 증명되고 정형화된 단계와 법칙, 진리. 이 안에 머무르는 한 인간은 편안하고 안전하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기대어 불확실한 삶을 구축하고 이어나간다. 누구든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두려우나 그것 때문에 매일 죽음만 기다리며 폐인처럼 살 수는 없다. 내일도 내 방, 내 침대에서 눈을 뜰 가능성이 더 많기에 오늘을 준비해야 한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다. 삶이란 이토록 단순하고도 복잡하다.
인간이 이토록 통계학에 집착하는 것은 아마도 지독한 두려움과 외로움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