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슬퍼하는 이를 위한 매뉴얼 -중-

나는 왜 그렇게 돌아가신 엄마에게 화가 났을까?

by 헤이욘





02. 슬퍼하는 이를 위한 매뉴얼 -중-





몇 년 전 겨울, 크리스마스가 이틀 지난 아침.


휴가를 맞아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는 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부족한 내 독일어로도 뭔가 나쁜 일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전화통화가 끝나길 기다리며 당시 4개월이었던 아이를 안고 묵묵히 서 있었다. 마침내 전화를 끊은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대."

"할머니가? 갑자기? 우리 나흘 전에 뵙고 왔잖아."


그의 할머니는 90세가 거의 다 된 노모로 식사와 거동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아직 혼자 생활할 정도로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뵈러 갔을 때도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우리와 차를 마시고, 늘 하던 보드게임도 몇 라운드나 했으며 그녀의 증손주를 품에 안고 웃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랬던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엄마가 아침에 찾아갔는데 침대에서 주무시던 상태로 돌아가셨다네."


그녀의 장례식은 1월의 몹시 추웠던 어느 날, 취리히의 한 교회에서 열렸다.

간소하게 진행된 장례식이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모이니 꽤 왁자지껄 했다. 생전 고인이 좋아했던 노래를 틀었을 때엔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보채는 바람에 도중에 교회를 나와 아이의 유모차를 끌며 주변을 거닐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자신을 안아주었던 증조할머니가 이젠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알리가 없는 아이의 동그란 두 눈을 보며.


그녀의 죽음을 두고 모두가 입을 모아 호상이라고 했다. 이제 이만하면 됐어. 충분히 살았어. 살아생전 그녀는 틈만 나면 그렇게 말하곤 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한동안 홀로 네 남매를 키웠다. 손주들도, 증손주들도 제법 보았다. 그녀는 꽤 오랫동안 열심히 살았다. 그러자 언제부터인가 허리와 손이 굽어버리고 식사도 유동식 외에는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됐어, 하고 수없이 생각했지만 죽음이란 그렇게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겨울날, 평소와 다름없이 잠자리에 들었고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단정한 모습으로 본인의 침대에 누워 세상을 떠났다.


본인이 바라던 대로, 게다가 꽤나 평화로운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죽음은 시어머니에게 슬픔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정도면 꽤 장수하셨는데도 그렇게 슬프실까? 나는 시어머니의 슬픔을 어느 정도 이해하려 애쓰는 한편, 이제 할머님이 원하는 대로 편한 곳으로 가셨으니 잘된 일이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버릇없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땐 엄마를 잃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정말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4년 후, 나는 엄마를 잃고 시어머니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한 달 전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 때보다 좀 더 편해 보이는 내 얼굴에 안심이 되는 듯,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직은 시간이 많이 필요할 거야. 나도 그 당시엔 기분이 수시로 바뀌었지. 어떻게 나를 두고 떠나갈 수 있느냐고 엄마에게 마구 화를 내기도 했어."

"그러셨어요?"

"그럼. 아직도 가끔 엄마에게 말을 건단다. 살아 계실 때 했던 것처럼 말이야."


나는 그런 시어머니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모두가 호상이라고 하기도 했거니와 이제 시간이 제법 흘렀기에 그녀에게 아무런 미련도, 슬픔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 물기가 서려있음을 나는 금세 알아차렸다. 덤덤한 말투와 목소리로도 가슴 깊은 곳에 존재한 그리움은 감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때야 알았다. 엄마를 잃는다는 건 나이가 몇 살이든 누구에게든 아주 오래 아프다는 것을. 90세가 거의 다 된 엄마를 잃은 60대의 여인도 이렇게 슬퍼해야 한다면, 나에겐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나는 내가 앞으로 상대해야 할 어마어마한 슬픔의 크기를 살짝 엿본 것 같아 문득 눈앞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엄마에 대한 분노는 생각보다 더 종종, 아주 뜬금없이 나를 찾아왔다.


하루하루 평소와 다름없는 바쁜 일상을 잘 보내다가도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마구 분노가 치솟았다. 그 분노의 대상은 엄마이기도 했고,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현실 자체이기도 했다. 나를 그냥 두고 가버린 엄마. 작년 내 생일까지만 해도 나에게 사랑한다며, 우리 가족 다 같이 행복하게 살자더니 올해 생일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엄마. 가족 단톡방의 없어지지 않는 숫자 1 하나. 남겨진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무엇을 해내고 성취하든 어차피 이제 엄마는 없다는 사실.


그럴 때면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혼자 있을 땐 크게 울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옆에 있는 남편에게 마구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엄마가 항암을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좀 더 적극적으로 엄마를 설득하지 못한 나에게도 화가 났다. 엄마에게 평생 스트레스를 준 아빠에게도, 결혼 후 스위스에 정착해버린 남편에게도 화가 났다. 왜 엄마는 그렇게 죽어야 했는가? 다른 사람들 엄마는 아직도 다 멀쩡히 살아있는데. 심지어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도 여태 살아있는데 말이다. 나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종류의 분노에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바탕 화를 쏟아내고 나면 갑자기 스위치라도 꺼진 듯 마음이 가라앉고, 분노가 사라진 자리엔 후회와 공허함이 밀려들었다. 누구보다 고생하며 살아온 엄마에게 내가 화를 내다니.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인데 왜 화가 났을까? 엄마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엄마는 불쌍하게 암에 시달리다 돌아가셨을 뿐인데. 이제 분노의 화살을 나에게로 돌릴 차례였다. 나는 내가 엄마에게 도움이 하나도 되지 못했음을, 거기에 엄마에게 화까지 냈다는 사실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후회 다음엔 공허함이 찾아올 차례였다. 나는 엄마의 인생이, 또 나의 인생 마저 허무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는 누구보다도 더 행복하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를 지키기 위해 엄마가 했던 노력들을 나열하기 시작하면 아마 하루를 꼬박 새워도 모자랄 터였다. 엄마는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 나는 그런 엄마의 강인함에, 따스함과 지혜로움에 의지해 수많은 나날을 버텼다. 스위스로 이사 온 뒤에도,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엄마랑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일 년에 적어도 두세 번은 한국에 갔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했다. 어쩌면 어떤 예감을 느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와 엄마 앞에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그 노력 덕분인지 아이는 할머니를 좋아하고 잘 따랐다. 하나뿐인 손주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서는 말 그대로 꿀이 뚝뚝 떨어졌다. 어휴, 귀여워. 네 손도 어릴 때 이렇게 생겼었는데.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 엄마가 어린 시절의 나 역시 이렇게 애정 어린 눈으로 보았으려나, 하고 생각하니 마음속에 따뜻한 봄바람 같은 것이 퍼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소중히 쌓아온 추억들이, 사랑이 모두 한 순간에 끝나버렸다.

열심히 노력해서 얻어낸 좋은 시간 끝에 남은 것은 결국 커다랗고 날카로운 상처뿐인 듯 보여, 나는 인생의 모든 것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인간관계도 허무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아름다웠던 삶이라도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결국엔 이토록 괴로운 이별이라면,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할 의미가 있긴 있는 걸까? 차라리 혼자 외롭게 살았더라면 그나마 슬픔 없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모두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어떤 삶을 살았든 간에 누구나 마지막은 똑같다. 나는 내 인생을 지속할 이유를 찾으려 애썼지만 그 질문은 답을 찾지 못한 채 자꾸 어딘가의 벽에 부딪혔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봐야 더 괴롭고 슬픈 죽음을 초래할 뿐이라는 걸 깨달아 버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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