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에서 동트는 것을 보는 것은 아주 낭만적이다. 아주. 이런 수식어를 쉽게 사용해도 될까 싶지만. 후하게 써주지 뭐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만한 아름다움이 있다. 여름에는 보기 힘든, 겨울이라서 가능한 출근 직후 자리에서 맞이하는 낭만적인 풍경이다. 수백 석이 넘는 책상과 의자가 있어도 이 시간을 향유할 수 있는 이들은 열명은 될까 싶다. 즉, 내 시야 안에선 적어도 나 밖에 없는 조금은 공허한 안정감. 그래도 꽤나 묵직하다. 카펫 재질의 바닥 때문일까, 푹신한 소파로 에워싸인 공간 때문일까, 겨울임에도 은은한 포근함이 있다. 이런 날은 일이라는 세속적인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작은 업무들을 시작하기에 너무도 좋은 아침이다.
오전시간은 유독 컨디션을 많이 탄다. 어떤 날은 카페테리아에 나가서 가까이는 우리 팀원들부터 시작해서 멀리는 위층 직원들까지, 한 사람 한 사람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주고받다 보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하다. 하지만 금방 허기가 지는 것을 봐서는 그다지 충전이 아니라 방전일지도 모르겠다. 컨디션이 저조하기라도 하면 카페테리아에 나가는 일조차 피하고 싶어 진다. 어찌 매일 웃으며 인사하겠어, 웃는 것도 에너지 소모인걸. 애초에 처음부터 미소로 일관하는 이미지였다면 몰라, 이제 와서 뭘 바꾸겠어.
“애니, 주말은 어떻게 보냈어요?”라는 물음에 가끔 당황을 하곤 한다. 극도로 루틴화되어있는 삶에서 주말은 그저 독서모임을 나간 뒤 그 인원들과 한주의 회포를 풀고, 데이트로 마무리를 하는 게 끝인데. 저번주도, 저저번주도 같았다. 내게 중요한 건 그 주에 읽은 책이 어떤 영감을 주고 어떤 가치관 확장을, 변화를 주었는지인데, 궁금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삶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어느 순간 내게 스며들었음을 자각해 버렸다. 자각이란 참 무섭구나, 이 간단하고 캐주얼한 인사치레 질문하나에 갑자기 온 세상이 멈춰버린다. 그래, 그럼 집에 온 지금 생각을 해보자. 나는 이 무한한 안정감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까.
마치 정신과 약을 먹었을 때와 같다. 멍하고, 절제된 감정과, 차분함. 내가 약을 먹는 이유가 이를 위해서라면,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게 내가 지향했던 지점이 여야 한다. 왜인지, 그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럼 약은 왜 먹는 건데? 건강하게 살아가려고. 건강함은 무엇인데? 건강함은 남자친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건 건강한 사고방식이 아니야. 그건 건강한 해결방식이 아니야. 건강함이 무엇인데. 지루함. 어째서 처음 떠오른 단어가 썩 긍정적이진 않다. 소리 지르고 주저앉아서 울고 호흡곤란이 오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핑하고 도는 빈혈감이 싫지 않다. 내 주변은 싫어했지 항상. 그냥 이런 사람도 이런 순간도 오는 사람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는 걸까.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