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 친구의 전화다.
십여 년만이다.
공중으로 떠다니는 목소리는 늙지도 않고 어젠 듯 여전하다.
딸아이 결혼 소식을 전하며 우리들 지난 얘기를 푼다.
까마득한 일들이 친구의 입을 통해 끌려 나온다.
세상에, 그걸 다 기억해? 나의 십 대를 기억하는 친구에게 물었다.
어째선지 어제 일은 기억이 안 나도 예전 일은 그렇게 밝네….
너 대학 때 보낸 편지 수십 통도 아직 있는걸.
나는 일천구백팔십육 년에 친구가 써준 유안진 에세이
'우리를 영원케하는 것들' 달랑 하나 남아있는데.
카톡이나 문자, 이메일의 시대엔 꽤 답답하고 무척 느린 편지
쓰는 마음이나 받는 마음은 기다림이 필요한 일.
메일이나 카톡으로 보낸 문서는 기한이 있어도
아, 우체통이 져 나른 앳된 마음엔 유통기한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