께꾹지
요리 경연 프로그램을 보다가 반가운 음식 이름을 들었다. 100명의 요리사 중 마지막 top 8이 남았을 때 “자신의 인생을 표현한 요리를 선보여라.”라는 미션을 줬다. 그 중 한 사람이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게국지를 그의 요리 장르인 이탈리아식 파스타에 풀어냈다.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게국지에 대한 추억을 감성적인 스토리로 만들어 낸 것. 게다가 그 특유의 쿰쿰한 향까지 맛깔스럽게 표현하였다며 그의 요리에 심사위원들은 높은 점수를 줬다. 서산이 고향인 사람으로서 게국지 파스타의 맛이 무척 궁금했다.
‘짜장면’이 ‘자장면’으로만 표기되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는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지만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발음하는 순간 먹고 싶은 욕구가 한 단계 감소하는 느낌이다. 서산 사람들에게 ‘게국지’가 그렇다. ‘게국지’는 ‘께꾹지’로 발음할 때 비로소 고유한 젓갈 냄새와 폭 지져진 께꾹지 상태를 떠올리며 입안 가득 군침을 삼키게 된다.
서산 지역에서는 늦가을 김장을 하면서 께꾹지를 꼭 담갔다. 김장하다가 남은 초록 배추겉잎, 무와 무청, 아무 데서나 잘 자라 흔하디흔한 늙은 호박을 썰어 넣고 능쟁이, 농게, 박하지, 꽃게장을 담갔던 게장 국물을 넣는다. 잘 삭은 밴댕이젓, 곤쟁이젓, 새우젓 등 구하기 어렵지 않은 젓갈을 넣고 소금을 더해 짭짤하게 간을 한다. 그렇게 담은 께꾹지는 주로 항아리에서 숙성했다.
께꾹지는 뚝배기에 덜어 끓이는데 그날은 젓갈의 코롬코롬한 향이 온 집안에 퍼진다. 식사 후 방 안 가득한 께꾹지 냄새는 환기해도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우리 동네에서는 겨울철이면 기본값으로 방안에 께꾹지 냄새가 안 나는 집을 찾기 힘들었다. 다른 지역에서 흔히들 먹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처럼 께꾹지는 서산 지역의 생활밀접형 음식이었다.
김치는 반찬으로 먹고 찌개로도 먹지만 게국지는 생으로 먹지 않는다. 오로지 국물 자작하게 지져 먹는 음식이다. 뚝배기에 덜어 은근하게 지지듯 끓여내면 흐물흐물 부드럽게 익는다. 짭짤하면서 감칠맛이 굉장해서 하얀 쌀밥을 부른다. 타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서산 지역 음식인지라 상경했던 가족이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찾던 것이었다. 그만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기도 했지만, 맛으로도 중독성이 강했다.
이번에 김장하면서 께꾹지를 소량 담가봤다. 김장하고 남은 배추 푸른겉잎, 김장소를 하고 남은 무, 늙은 호박을 썰어 넣었다. 거기에 지난가을 꽃게장을 담가 먹고 남은 게장 국물을 적당량 붓는다. 께꾹지의 짭짤한 맛을 위해 곰삭은 새우젓(엄마는 밴댕이젓과 곤쟁이젓을 많이 넣었다)을 넣어 버무렸다. 잘 익으면 뚝배기에 넣어 은근한 불에 지져 낸다.
께꾹지는 사계절 흔한 음식은 아니다. 김장철에 김장하고 남은 부산물을 버리지 않고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지금 판매되고 있는 꽃게가 떡하니 들어간 ‘게국지’는 본래 서산 지역의 께꾹지와는 결을 달리한다. 바닷가라서 흔했던 젓갈과 게장 국물을 이용해 김치 식재료와 늙은 호박을 더해 버무려 만들어 낸 ‘알뜰함’을 담은 것이 께꾹지의 전통이다. 흔한 재료로 만들었다고 결코 하찮은 음식은 아니다. 독특한 맛에 중독되어 지금도 정말 먹고 싶은 고향 음식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께꾹지는 희소성이 있는 음식이다. 김장철에 담가 한겨울에만 먹을 수 있고, 김장 김치에 비해 적은 양이어서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고향이라도 떠나는 날부터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음식이 돼 버린다. 어쩌면 쿰쿰한 냄새 때문에 대중성하고 거리가 먼 음식이기에 꽃게를 넣고 포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식재료를 쉽게 버리지 않고 지역의 고유한 음식으로 만들어냈던 엄마들의 께꾹지가 그립다. 정체성을 잃지 않은 쿰쿰한 냄새가 나는 그 께꾹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