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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사벨라 Dec 05. 2023

삼대가 음식으로 연결되면

세 번째 이야기_아들이 끓여준 굴 미역국

 새벽 4시 50분, 모닝 챌린지가 있어서 줌을 켜기 전에 차를 한 잔 마시며 여유를 가졌다. 드디어 챌린지가 시작되고 몰입하려는 찰나 어디선가 핸드폰 알람 소리가 들린다. ‘뭐지?’ 그러나 잠잠하다. ‘잘못 울렸나?’ 아무튼 조용해져서 다행이다. 다시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집중 모드에 들어갔다. 근데 또다시 알람이 울린다. 남편은 늘 6시 30분에 일어나니 아닐 테고, 딸은 직장인으로 아침잠 5분이 아쉬운데 쓸데없이 알람을 맞출 일이 없다. 그렇다면, 아들인데 왜 알람을 맞췄을까? 무슨 시험이 있나? 알람 맞춰 놓고 못 일어나면 깨워줘야 하나? 잠시 갈등하고 있는데 아들의 방문이 열린다.


  잠이 덜 깨서 눈을 감은 채 걸어 나온 아들이 부엌 불을 켠다.

 “왜 그래?”

졸음에 취해서 고개만 잠깐 숙여 인사하고 대답도 못 한다. 부엌 베란다 문을 열고 부스럭부스럭, 냉장고 문을 열고 한참을 비닐봉지 소리를 내며 서성인다.

 ‘아! 그거였어? 어젯밤에 뭔가를 사 와서 숨기듯 넣더니…….’

 까맣게 몰랐다. 며칠 전, 올해엔 할머니께서 엄마 생일 미역국을 끓여주신다고 아이들에게 분명히 말해 뒀었다. 게다가 엊저녁에 남편이 정성이 듬뿍 담긴 어머니표 소고기미역국과 반찬 몇 가지를 가져와서 아들이 따로 움직일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아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엄마 생일에 종종 미역국을 끓여줬다. 특히 바다 소녀 엄마를 위해 소고기미역국은 기본이고 조개 미역국, 굴 미역국 등 다양한 미역국을 제대로 끓여냈다. 자기 용돈으로 산 수비드 기계를 이용해 갈비찜까지 해낼 정도로 음식에 진심인 아이다. 엄마를 위해 생일상을 계획하고 시장을 보고 새벽잠을 포기한 아들의 마음에 뭉클해졌다. 비록 새벽에 일어나 있는 엄마 때문에 서프라이즈 생일상은 안 되겠지만 아들은 계획된 요리를 하고 나는 다시 책 속으로 빠져든다.


“엄마, 전분 가루 어디 있어요?”

 오디오는 꺼놨어도 소리 지르는 건 안 될 것 같아 일어나서 찾아준다.

 “또 필요한 건?”

 “없어요.”

아들도 나도 다시 몰입한다.

“엄마, 조선간장 어디 있어요?”

 기꺼이 일어나 직접 꺼내주고 온다. 덤으로 소금과 연두까지 내어 주고 자리에 다시 앉는다.

 “엄마, 죄송한데 식초는 어디…….?”

 다시 일어난다. 도대체 뭘 그렇게 차리려고 이럴까? 식초를 꺼내 주며 흘깃 보니 이것저것 늘어놓은 부엌에선 지글지글 보글보글 난리가 났다. 비록 새벽 시간 집중을 방해받긴 했지만, 대학교 3학년 아들이 엄마의 생일상을 차리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연거푸 찡했다. 전분 가루와 식초는 항정살 탕수육을 위한 것이고, 조선간장은 역시 굴 미역국 때문이었다.

 겨울이 제철인 통통한 굴을 소금물로 깨끗이 씻어 놓는다. (소금물보다 무를 곱게 갈아서 굴을 씻으면 불순물이 거의 제거된다) 잘 불린 미역에 조선간장을 넣고 살짝 볶아준다. 타지 않게 물을 조금 더 부어 볶는다. (굴 미역국의 핵심은 담백한 맛이기에 참기름은 쓰지 않는다) 끓으면 미역 양에 맞춰 물을 더 붓고 끓인다. 마지막으로 씻어놓은 굴을 넣고 마늘을 적당량 넣어 한 번 더 끓인다. 이렇게 아들은 굴 미역국을 끓여냈을 것이다.


 아들이 차려준 생일상을 받고 ‘고마움’ 이상의 감정이 들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우직하게 헌신하는 삶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그건 우리네 부모님 이야기일 것이다. 존재만으로 선물인 자식들이 그런 부모님을 위해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를 해드린다. 용돈을 아껴 선물하는 건 부모님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게다가 특별한 날 음식을 차려준다는 것은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이다. 엄마의 음식을 먹고 자라면서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다가 스스로 엄마께 음식을 대접한다? 음식에는 크든 작든 정성이 들어간다는 것을 바로 깨닫게 된다.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걸 자식도 분명 알게 됐을 것이다. ‘굴 미역국’은 아들이 엄마도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 음식을 그리워한다는 것에서 출발해 준비한 음식이다. 마음을 읽어내고 끓여낸 아들의 굴 미역국은 내 엄마의 미역국처럼 맑고 향기 가득한 것이었다. 맛을 보고 “와!” 감탄하며 엄지척하자 아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더니 도리어 감동한 눈빛이 된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바쁜 세상 속 자식들 일에 방해될까 두 분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먼저 전화하시지 않았다. 안부 전화를 드려도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자식들 걱정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생일날 아침은 달랐다. 먼저 전화를 주셔서 “미역국은 먹었남?” “추운디 감기 조심혀.” 엄마가 해 주시던 인절미(생일마다 해 주시던 떡)를 먹고 싶다는 말에 “먹고 싶으먼 한번 내려와.” 마지막엔 투박하지만, 애정이 듬뿍 담긴 음성으로 “생일 축하헌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자식이 정성껏 차려낸 생일상은 엄마에게 올해도 잘 잘 살아오셨다 위로하고 내년에도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멋지게 살아가시라 지금은 안 계신 부모님 몫까지 더해서 용기를 준 것이리라. 부모님과 나, 자식이 음식으로 연결될 때 위로받는 사람은 물론이고 위로하는 사람도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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