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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메리 Dec 15. 2023

7. 가족사기단

전세사기 피해기록 시리즈입니다


12월에는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몰아닥쳤다.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고 평온하려고 애썼다. 


형사 고소건으로 출석 조사를 받았다. 

담당 수사관도 전세사기를 당한 전력이 있어서 우리의 일이 남일 같지 않았는지, 

성실하고 다정한 자세로 조사를 해주셔서 걱정한 것보다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싶었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계약을 체결했던 부동산이 다른 구에 있었기에 

다른 구 관할이라고, 그곳의 경찰서로 사건이 넘어갔다고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어느 평범했던 평일 날 저녁에 사건을 배정받은 다른 형사분께 연락이 와서

우리는 이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설명을 해주면서 형사고소 초반에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몸으로 체감했다. 떠올려도 기분이 좋지 않을 이야기를 '두 번'이나

반복해서 설명하는 게 제법 힘도 들고 에너지도 낭비 됐다.


형사분은 계약을 할 때 당시 질문을 많이 하셨는데 아무리 돌이켜보아도 우리 입장에서는 

'임대인이 작정하고 사기를 쳤는지'를 풀어헤쳐 볼 단서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계약 당시에 잠깐 얼굴을 보았을 뿐, 

부동산 중개인과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연락을 했기 때문에.

하지만 부동산은 이미 사라지고 연락도 할 수가 없어서 우리 입장에선 답답할 뿐이었다.


이쯤 돼서 또 한 건의 이야기가 추가되는데, 

이도 예상했던 바와 다르진 않지만 우리 속을 뒤집는 사건 중 하나였다.

피해자 모임에 가입한 피해자가 늘었는데 이전까지와는 유형이 좀 달랐다.


임대인의 배우자도 전세사기를 동시에 저질렀고 그 배우자에게 피해를 받은 사람이었던 것.

그리고 배우자의 전적은 그 시기가 우리보다 과거였다.

보증보험을 들어서 받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못 받은 사람들도 있을 터.

그중 한 명이 이를 갈고 우리 피해모임에 들어온 것이었다.


과거에 배우자의 '피해자모임'이 존재했더랬다.

관련 전화나 업무나 뒤처리를 전부 부부의 자녀가 처리했다고!


'전세사기범'의 배우자도 '전세사기범'이라니!

이게 웬 사기 부부단인가? 아니, 웬 가족사기단인가?!


우리는 아파트 청약을 취소하면서 피눈물을 흘렸다. 

이 일만 아니면 봄에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가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웠을 텐데.

어떤 음식도 어떤 위로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헛헛하고 힘든 시기인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남편은 매일 출근할 수밖에 없고, 나는 친구도 가족도 없고 연고도 없는 곳에서 

재택으로 일했기 때문에 유독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안 좋은 시기가 빨리 지나가길 빌었지만 그렇지 않은 법이었다. 고통스러운 나날들.

나는 극단적 선택, 죽음에 관해 많이 떠올리게 되었고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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