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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포트 Jan 26. 2024

내 사랑 여름


 


겨울만큼 뜨거운 여름을 그려보기 좋은 계절도 없으리라.

호호 불은 손 주머니에 넣고

발 밑에 하얗게 깔린 눈을 뽀득뽀득 밟으며,

그와는 대조적인 따가운 햇살과

하늘 높이 솟아 오른 울창한 숲을 그리고 있자니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 누웠다.





쑥 캘 곳을 찾다가 이르게 된 나의 작은 숲은, 이내 내가 매일 찾는 쉼터가 되었다. 번역을 하다가 안 풀리는 문장을 만날 때면 지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곧장 숲으로 뛰쳐갔으며, 마음속이 온갖 잡다한 소음으로 가득 찰 때에도 숲을 제일 먼저 찾았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음속 혼잡한 소음은 잦아들고, 그 속이 다시 바람 소리, 나뭇잎 소리, 까치 소리, 매미 소리로 대신 채워졌다. 그렇게 숲과 함께하면 할수록 덩달아 나도 숲을 닮아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착각이라도 마냥 좋아서 도서관을 갈 때에도, 미리 주문해 놓은 음식을 가지러 갈 때에도 잘 닦인 아스팔트 길 대신 울퉁불퉁 숲길을 통했다.


그날도 나는 도서관을 가기 위해 숲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여름 숲에는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한창 독이 오른 뱀이다. 하루에 한 번 꼴로 조심하라 일러주시던 우리 엄마 덕에 그날도 나는 땅을 유심히 살피며 걷던 참이었다. 그런데 숲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쯤, 무언가 내 정수리를 톡톡 건드는 것이 아닌가. 나무에서 뱀이 떨어진 줄 알고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웬걸 새하얀 꽃뭉치가 내 눈앞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안녕!' 인사하고 있었다. 나는 그 정체를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솜뭉치처럼 폭닥하게 모여있는 그 모습과, 새하얀 순백의 우아한 자태 하며, 은은하게 뿜어내는 향기로움까지. 너무나도 극명하게 그것이 그것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아카시아의 계절이 왔구나.'

어느덧 나의 숲에도 여름이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나는 잠깐 가던 길을 멈춰 아카시아 꽃 내음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언젠가 영화에서 본 아카시아 꽃튀김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아카시아 꽃을 튀겨먹으면 무슨 맛이 날까? 나는 궁금해졌다. 그날 나는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카시아 꽃 두 송이를 따다가 집에서 튀겨먹었다.


봄과 마찬가지로 여름의 숲 역시 먹을 것으로 가득하다. 그중 아카시아는 단연 최고의 간식거리다.


아카시아 꽃 튀김은 정말 맛있었다. 향긋하고 상큼한 맛만 날 것 같았지만 감자와 같은 감칠맛도 났다. 어찌나 바삭하고 맛있는지 벌써부터 내년 초여름 날의 아카시아 꽃튀김이 기다려졌다.





나는 원래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태양은 뜨겁고 습도는 높아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것은 둘째 치고, 땀 냄새를 맡고 달겨드는 모기가 두려워 나는 항상 여름이 오는 것이 짜증스러웠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또 어떤가. 축축해진 우산을 들고 지하철에서 다닥다닥 붙어 나의 땀냄새인지 남의 땀냄새인지 모를 것을 맡으며 출퇴근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나의 숲과 함께 여름을 보내고 난 이후로는 매번 그렇게 여름을 단편적인 모습으로만 그려낸 것이 큰 오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알던 여름의 모습 이면에는 푸르르고 무성한 생명의 요람이 있었다. 끝 모르고 치솟아 오르는 풍요로움이 있었다.


불볕더위에도 꿋꿋한 숲의 청량감,

비 오는 날 숲의 고요,

비 온 다음날 한층 더해진 숲의 활기를 나는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 여름은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여름일 수가 없었다.



아카시아 꽃이 지고 난 후 바통을 이어 받은 찔레꽃




* 다음 글: <나의 작은 숲과 사계절 – 가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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